[양승국 칼럼] 본분을 망각한 검사

2021-03-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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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사진=로고스]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며 손해배상 청구를 한 사건에 대해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이 지난 1월 28일 서울중앙지법에서 나왔다. 1999년 전북 완주군 삼례읍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실형을 복역하였던 피고인들에 대한 판결이다. 이들은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자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하였었다.

그런데 이번 판결에서는 당시 수사검사에게도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판결 이유는 당시 수사검사가 범행을 자백하는 진범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며 조사도 제대로 해보지 않고 그냥 풀어주는 부실수사를 했다는 것, 그 바람에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린 이들이 그대로 형을 살게 됐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8일엔 서울중앙지법에서 검사 잘못으로 국가에 손해배상을 명하는 판결이 나왔다. 이전 형사재판에서 전화대출 사기 혐의로 구속기소 됐던 피고인이 결정적인 증거가 되는 수첩을 자신이 작성하지 않았다며 범행을 부인했다. 재판장이 검사에게 수첩 원본을 제출하라고 했지만 검사가 이에 응하지 않자 무죄를 선고했다. 검사는 항소심에서야 수첩 원본을 제출했고, 필적 감정 결과 피고인 글씨가 아니어서 항소심은 1심 무죄를 그대로 유지했다.

이에 무죄를 선고받은 피고인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한 것이다. 법원은 검사가 재판장의 제출 요구에도 피고인 무죄를 입증할 핵심적인 증거를 제출하지 않아 그가 무죄 선고를 받기까지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이라며 손해배상 청구를 받아들였다.

그런가 하면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뇌물수수 사건에 대해 검사가 위증교사를 했다는 충격적인 양심선언도 나왔다. 뇌물을 줬다는 고(故)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가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하자, 검사가 동료 재소자들에게 한만호에게서 뇌물 준 얘기를 들었다는 증언을 하라고 위증교사를 했다는 것이다.

얼마 전 KBS 프로그램 '시사직격'에서 이 의혹을 다루었는데, 믿고 싶지는 않지만 내용을 보면 검사가 위증교사를 했을 거란 합리적인 의심을 들게 한다. 이에 검찰에서 감찰 조사를 벌여 최근 증거 불충분으로 종결되긴 했다.

그렇지만 모해 위증교사로 기소하기에는 증거가 불충분할지 몰라도, 최소한 검사가 한 전 총리에 대한 재판 결과가 뒤집히지 않도록 증인을 회유했다는 의심을 완전히 불식시키기에는 미흡하다.

형사재판은 법정에서 피고인 유죄를 밝히려는 검사와 범행을 부인하는 피고인·변호인이 양쪽 당사자가 돼 재판장을 설득하는 진실 경연장이다. 여기에 몰두하다 보면 검사는 자칫 한쪽 당사자 입장에만 매몰돼 어떻게 하든 피고인 유죄를 밝혀내는 데만 몰두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는 법정에 제출하지 않고, 위증교사 유혹도 느낄 수 있겠다.

그러나 검사는 공소 유지의 한쪽 당사자 이전에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공익 대표자다. 내가 다니던 법과대학 표어는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는 세우라'였다. 무릇 모든 검찰이 처음 임관될 때는 이런 정의감을 가지고 검사가 됐을 것이다. 그리하여 냉철한 이성으로 악인은 철저하게 응징하되, 그 과정에서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살피는 따뜻한 가슴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검사도 사람인지라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일상의 매너리즘에 빠지다 보면 공익 대표자라는 사명을 잊어버릴 수 있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항상 초심이 중요한 것이다.

요즈음 검찰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수사권 폐지 등으로 흔들리고 있는데, 이럴 때일수록 검사들이 초심으로 돌아가 애초 국민이 기대했던 올바른 검찰을 세울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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