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그렇게 그들은 '홍색 자본가'로 길러진다

2021-03-04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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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스타 CEO 청웨이, 탈빈곤 표창

공산당 지원 속 中언론 대대적 선전

기사 8명으로 출발, '디디 제국' 이뤄

위기 때마다 '홍색 마케팅'으로 극복

마윈 몰락 속 공산당 절대 충성 물결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탈빈곤 표창 대회에 참석한 청웨이 디디추싱 창업자 겸 CEO(앞줄 왼쪽에서 둘째)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연설을 듣고 있다. [사진=CCTV 캡처 ]


지난달 2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중국 내 빈곤 퇴치에 기여한 개인과 단체를 표창하는 대규모 행사가 열렸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탈빈곤 사업에서 전면적인 승리를 거뒀다고 선언하며 "역사에 길이 빛날 성과"라고 자찬했다.
탈빈곤과 샤오캉(小康·물질적 풍요로움) 사회 달성은 시 주석이 집권 뒤 지속적으로 강조해 온 최대 국정 과제다.

이날 행사를 중계한 중국중앙방송(CCTV) 카메라엔 객석에서 시 주석의 연설을 경청하는 한 젊은이의 모습이 여러 번 잡혔다.

중국 최대 차량 공유 서비스 기업인 디디추싱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청웨이(程維)가 그 주인공이다.

표창을 받은 1981명 가운데 기업가는 6명. 그중 청웨이는 유일한 30대이자 정보기술(IT) 업계 종사자다.

"탈빈곤 공격에서 전면적 승리를 거둔 위대한 시대에 산다는 게 너무 흥분된다. 조국을 위해 당이 이룬 성과에 자부심을 느낀다"는 청웨이의 발언 내용이 중국 내 각종 매체에 실렸다.

디디추싱을 통해 35만명의 빈곤층이 일자리를 찾고 월평균 5000위안(약 87만원) 이상을 벌게 됐다는 등의 내용도 상세히 소개했다. 도시 지역 대졸 취업자의 초임 수준이다.

"바링허우(八零後·1980년대 출생자)의 자랑", "후생가외(後生可畏·두려워할 만한 후배)", "신(新) 경제를 발전시켜 국가 건설에 보답한다" 등 누리꾼의 칭찬도 이어졌다.

이렇게 중국 공산당이 등을 두드려준 덕에 또 한명의 스타 기업가가 당에 절대적 충성을 바치는 '홍색 자본가'로 변모해 가고 있다.

한 베이징 소식통은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이 공산당에 의해 무너지는 걸 보면서도 많은 젊은 기업가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홍색 자본가가 되기를 자처한다"며 "중국 기업의 지속적인 혁신을 위협하는 요소"라고 지적했다.
 

청웨이 디디추싱 창업자 겸 CEO[사진=디디추싱 홈페이지 ]


◆시골 촌놈, 공유경제 아이콘 되다

중국 차량 호출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 중인 디디추싱. 중국에서 디디추싱 앱이 깔리지 않은 스마트폰을 발견하기란 모래 사장에서 바늘 찾기다.

디디추싱을 창업한 청웨이는 1983년 중국 동남부 장시성의 시골 마을 옌산현에서 태어났다.

베이징화공대를 졸업한 그는 2005년 알리바바에 입사해 지방에서 생산되는 제품을 골라 본사에 납품하는 업무를 맡았다.

능력을 인정받아 2011년에는 최연소 지역 관리자가 됐고, 같은 해 알리페이로 자리를 옮기며 기업·소비자 간 거래(B2C) 시장에 눈을 떴다.

중국의 낙후한 교통 시스템 탓에 차량 공유 서비스 사업에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청웨이는 알리바바를 나와 2012년 6월 디디추싱의 전신인 디디다처를 설립한다.

초기부터 꽃길을 걸은 건 아니다. 일반인 기사를 활용한 차량 공유는 택시 업계의 반발과 함께 불법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청웨이는 우선 택시를 공유하는 모델을 선택했다. 한국의 카카오택시와 유사한 개념이다.

창업 후 한 달간 100곳 이상의 택시 회사를 방문했지만 모두 손사래를 쳤다. 택시 200대를 보유한 베이징 창핑구의 한 회사가 관심을 보여 사업 설명회를 갔는데, 정작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기사는 20명에 불과했다.

우여곡절 끝에 500명의 택시 기사를 확보하고 2012년 9월 9일 디디다처 앱을 출시했는데, 첫날 로그인을 한 기사는 16명에 불과했다. 이튿날에는 8명으로 줄었다.

택시 기사들은 "손님은 안 잡히고 데이터 용량만 축난다"며 볼멘소리를 했다. 청웨이는 기사들에게 매일 5위안의 보조금을 주겠다며 달랬다.

같은 해 11월 처음으로 온라인상에서 100명 이상의 기사가 동시에 활동하기 시작했고 이는 중국 벤처캐피털 업체 GSR벤처스의 300만 달러 투자로 이어졌다.

이후 알리바바와 텐센트, 소프트뱅크, 애플 등으로부터 거액의 투자금을 유치하면서 승승장구했다. 이제는 차량 호출에 택시뿐 아니라 전문 기사 및 일반인 기사도 포함됐고 카풀 서비스까지 제공된다.

2016년 8월 우버의 중국법인을 인수하며 중국 시장을 완전히 석권했고, 글로벌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청웨이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이 선정한 '글로벌 IT 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20인'에 이름을 올리는 등 공유 경제 붐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등극했다.

현재 기업공개(IPO) 가능성이 거론되는 디디추싱의 기업 가치는 최대 1400억 달러(약 157조3600억원)로 평가된다.

◆홍색 자본가의 길로 접어들다

기존에 없던 비즈니스 모델인 데다 성장세까지 가파르다 보니 당국의 견제를 피하기는 어려웠다.

우버 중국법인을 합병할 때는 상무부가 반독점 조사에 나서면서 두 차례 웨탄(約談·예약 면담)이 이뤄졌다. 웨탄은 당국이 문제 소지가 있는 기업을 소환해 질타하며 개선책을 제시하는 절차다.

2018년에는 디디추싱 기사가 여성 승객을 성폭행한 뒤 살해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해 홍역을 치렀다. 당시 디디추싱은 카풀 서비스를 중단했고, 교통운수부는 디디추싱 등 차량 공유 플랫폼에 대한 웨탄을 실시했다.

이 밖에 개인정보 유출 및 오·남용 역시 툭하면 불거지는 이슈다.

지난해부터 중국이 범정부 차원의 빅테크(대형 IT 기업) 규제에 나선 건 새로운 위기다. 알리바바와 앤트그룹을 정조준했던 총구가 다시 어디로 향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다양한 풍파를 겪으며 청웨이는 홍색 자본가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시 주석의 집권 2기가 시작된 2018년 디디추싱은 연봉 24만 위안짜리 당서기 공채 공고를 냈다.

당서기는 경영 활동과 관계 없이 기업 내 당조직 관리를 담당한다. 민영 기업도 당조직을 건설하라는 불호령이 떨어지자 납작 엎드린 것이다.

또 대관 업무를 맡을 직원을 채용하며 '2년 이상의 정부 업무 경력, 공산당원' 등의 자격 조건을 내걸기도 했다.

2019년에는 기사 중 공산당원이 있으면 앱 프로필 사진이나 차량 내 스티커 부착으로 당원임을 알리는 홍색 마케팅을 전개한 바 있다.

한 IT 업계 관계자는 "공산당에 대한 충성도, 이른바 '당성(黨性)'이 가장 약한 분야가 IT 업계라는 비판이 지속돼 왔다"며 "IT 업계에서 조금만 성공해도 당국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디디추싱이 탈빈곤에 기여하기 위해 산시성 포핑현에 기부한 600대의 공유 자전거. [사진=바이두 ]


◆習 역점 사업 탈빈곤, IT 업계 충성 경쟁

표창 대회가 종료된 후 청웨이는 언론 인터뷰에서 "시 주석의 연설을 듣고 가슴이 끓어올랐다"며 "빈곤은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직면한 문제이자 도전"이라고 말했다.

그는 "젊은 IT 기업으로서 탈빈곤에 참여하고 일정 부분 공헌한 데 대해 긍지를 느낀다"고도 했다.

디디추싱이 제공한 통계에 따르면 회사는 2019년 기준 차량 호출 기사로 700만명, 대리운전 기사로 20만명, 공유 자전거 배달 인력으로 1만4000명을 고용했다.

또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활용해 중국 전역의 31개 빈곤 마을에서 38종의 상품을 구매해 소득 증대에 기여했다.

지난해 7월 디디추싱은 다수의 빈곤 마을에 단계적으로 10만대 공유 자전거를 기부한다고 발표했다. 산시성 포핑현에서 600대를 시작으로 허베이·안후이·간쑤성 등지에서 기부 활동이 진행되고 있다.

기부된 공유 자전거를 활용해 창출된 이익은 전액 현지 지방정부의 탈빈곤 사업에 쓰인다.

다른 IT 기업들도 탈빈곤 공헌도를 선전하는 데 여념이 없다.

알리바바는 시 주석이 집권한 뒤 8년간 1조 위안(약 173조7000억원)어치 농산물을 판매했다고 자랑한다.

배달 전문 업체 메이퇀은 지난해 빈곤 지역에서 7억건의 주문이 들어왔고, 이를 통해 348억 위안의 매출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주문 건수와 매출액은 전년 대비 각각 27%, 22% 증가했다.

가전 유통 기업 쑤닝은 탈빈곤 사업에 참여한 공로로 단체 표창을 받았다.

장진둥(張近東) 쑤닝 회장은 "민영 기업으로서 이번의 위대한 전투에 참여한 걸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작은 기업은 개인의 것이지만 큰 기업은 사회와 국가의 것"이라고 언급했다.

기업은 국가의 것이라는 말이 여운을 남긴다. 중국이 표방하는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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