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3·1절 기념사를 통해 일본에 뚜렷한 화해 메시지를 던졌지만 강제징용 등 난제를 타개할 새로운 제안은 없었다. 한·일 관계가 강제징용 판결과 위안부 판결 등 과거사 문제로 최악의 국면을 맞은 만큼 과거사 문제에 대한 해법이 없이는 경색 국면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뚜렷한 화해 메시지··· 새 제안 無
문 대통령은 "과거의 문제는 과거의 문제대로 해결해 나가면서 미래지향적인 발전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한다"며 "우리 정부는 언제든 일본 정부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눌 준비가 돼 있다. 역지사지 자세로 머리를 맞대면 과거의 문제도 얼마든지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한‧일 양국은 경제, 문화, 인적 교류 등 모든 분야에서 서로에게 매우 중요한 이웃이 됐다"며 "지난 수십년간 한‧일 양국은 일종의 분업구조를 토대로 함께 경쟁력을 높여왔다. 한국의 성장은 일본의 발전에 도움이 되고, 일본의 성장은 한국의 발전에 도움이 됐다"고 강조했다. 또한 "양국 협력은 두 나라 모두에게 도움이 되고, 동북아의 안정과 공동번영에 도움이 되며, 한·미·일 3국 협력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기존에 언급돼 온 코로나 극복 협력, 도쿄올림픽 성공 협력 등을 또다시 한‧일 관계 개선의 지렛대로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한‧일 양국은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바라보며 함께 걷고 있다"며 "올해 열리게 될 도쿄올림픽은 한·일 간, 남북 간, 북·일 간 그리고 북·미 간 대화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한국은 도쿄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는 8월 개최될 도쿄올림픽을 한·일관계 개선의 분수령으로 삼겠다는 계획으로 풀이된다.
◆'투 트랙' 대일 기조 유지한 文대통령
이번 기념사는 역대 연설 중 가장 나아간 유화적 메시지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일 관계가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조 바이든 미국 정부가 연일 '한·미·일 3각 동맹'을 강조하고 있어 우리 정부도 한‧일 관계 개선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문 대통령은 3·1절 기념사를 통해 "미래지향적 협력 관계를 위해 같이 노력하자"고 언급하긴 했으나 대일 메시지의 분량 자체가 매우 적었다. 2019년 3·1절 기념사를 통해 문 대통령은 "친일잔재 청산은 너무나 오래 미뤄둔 숙제"라고 꼬집었다.
다만 문 대통령은 한·일 관계 경색을 불러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및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 문제에 대해 일본정부를 향한 요구나 새로운 해법은 내놓지 않았다. 오히려 문 대통령은 과거사 문제에 대해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을 강조하면서 일본의 태도 변화를 요구했다. 과거와 미래 협력 문제는 분리해서 대응하겠다는 기존의 '투트랙' 기조를 다시 한번 강조한 셈이다.
문 대통령은 "과거의 잘못에서 교훈을 얻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오히려 국제사회에서 존중받는 길"이라며 "한국 정부는 언제나 피해자 중심주의의 입장에서 지혜로운 해결책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일본과 우리 사이에는 과거 불행했던 역사가 있었고 우리는 그 역사를 잊지 못한다. 가해자는 잊을 수 있어도 피해자는 잊지 못하는 법"이라고 말했다. 강제징용,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 문제에 있어서는 종전 입장을 강조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일본 언론도 "새로운 제안은 없었다"고 평가했다. 교도통신은 이날 문 대통령의 주요 발언에 대해 "역사 문제에서 한국에 해결책 제시를 요구하는 일본에 대해서도, 고령인 위안부와 징용공(일제 징용 노동자의 일본식 표현) 당사자에 대해서도 명확한 메시지가 없는 연설로, 사태 타개 전망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요미우리신문도 "문 대통령이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의욕을 보였으나 한·일 간 현안인 징용공과 위안부 문제의 해결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