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 박일환 전 대법관의 이중생활

2021-02-24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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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판사, 변호사, 의사 등 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춘 크리에이터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제는 대법관 출신 유튜버도 나왔다. 어렵고 딱딱한 ‘법’ 관련 지식을 알려주고 있는 박일환 전 대법관. 딸의 추천으로 시작한 유튜브 채널에서 20~30대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전직 대법관’이라는 타이틀보다 ‘실버 유튜버’로서 더 유명한 박일환 전 대법관과 그의 이중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박일환 전 대법관 제공/ 박일환 전 대법관]


Q. 많은 직업 중에 어떻게 판사를 하게 됐나요?
A. 제가 젊었을 때는 우리나라가 아직 많이 발전되지 않아서 직업이 많지 않았어요. 2차, 3차 산업이 제대로 발전되지 않았을 때였기 때문에 전 국민의 70~80%는 농업에 종사하고 20%가 제조업, 나머지 10%가 서비스업에 종사했어요. 더구나 저는 문과를 전공했기 때문에 공무원 외에는 기업 같은 곳을 가기 어려웠어요. 공무원 중에서는 어느 정도 자기 소신을 펼 수 있는 직업이 법관이라고 해서 판사를 하게 됐어요.

Q. 판사의 일과와 업무량은 어떻게 되나요?
A. 판사는 일주일 단위로 업무를 해요. 주어진 요일에 법정에 가서 심리하고 나머지 시간은 심리할 것을 미리 준비하고 결론이 나오면 판결문을 작성해서 선고하고 이렇게 일주일 단위로 시간을 보내요. 가끔 자나깨나 피고인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24시간 생각할 때도 있어요. 그건 남은 알 수 없죠. 책상에 앉아서만 하는 게 아니라 동네를 걸어다니면서 할 수도 있고, 주말에 등산 가면서도 사건을 생각할 때가 있어요. 이건 업무시간이라고 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 할 수도 있는데 항상 머릿속에 잠재되어 있기 때문에 판사의 업무시간을 측정하는 건 불가능해요.

한 사건을 처리하는 데 10시간이 걸릴 수도 있고, 20시간이 걸릴 수도 있거든요. 형량을 어떻게 줘야될까 될지에 대해 답이 안 나올 경우 결국은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하다가 결정하기 때문에 그 양을 물건 만드는 시간과 비교할 수 없어요. 업무는 힘들더라도 늘 있는 일이니까, 잠도 규칙적으로 자려고 노력해요. 10시~11시 사이에 자고 아침 6시~7시 사이에 일어나요. 판결을 다 써야 되는 날에는 밤을 샐 정도로 판결문 작성 작업을 하죠.

Q. 형량을 정할 때 누구와 주로 이야기를 나누나요?
A. 보통은 이전 판결도 참고하고 같은 형사사건을 처리하는 동료 판사들과도 어느 정도 상의를 해서 서로 간의 양형을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지금은 양형 기준이 마련돼서 가이드라인이 있지만 저희들이 젊은 시절에는 그런 기준조차도 없어서 상당히 고심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망설이는 사건들도 상당히 있었어요.

Q. 판사를 하면서 생긴 직업병이 있나요?
A. 육체적으로는 기록을 많이 넘기다 보니까, 제 손을 보면 지문이 거의 없어요. 그래서 지문을 찍으면 잘 안 나와요. 정신적으로는 판사는 아무도 믿지 않는다고 해서 의심병이 있어요. 원고와 피고의 말을 항상 의심을 가지고 점검해보기 때문에 의심병이 생겼어요. 가족, 친구들과 있을 때도 저 사람이 진실을 이야기 하는지, 아닌지를 짐작하면서 얘기를 해요. 논리적으로 안 맞는 말을 해서 직업병이 도지면 그 말이 맞나 하고 따져요. 그러면 대답을 못하기도 하고, 근거를 대기도 하는데 그 근거가 옳은 근거냐 아니냐를 따지면 끝이 없죠.

 

[사진=박일환 전 대법관 제공]


Q. 판사라는 직업의 만족도는 5점 만점 기준으로 얼마나 되나요? 
A. 4.5점 정도예요. 판사로 있으면서 잃어버린 것도 많기 때문에 5점을 줄 수는 없죠. 지금은 로스쿨이 잘 되어 있어서 손자 손녀가 판사를 하고 싶다면 해도 되겠죠. 그렇지만 말리고 싶기도 해요. 그게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젊은 시절에 시험 준비에 올인을 하더라도 된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한번 잘못 판단하면 본인이 힘든 상황에 놓일 수도 있고요.

Q. 판사를 하면서 얻은 것과 잃은 건 뭔가요?
A. 얻은 점이라면 자유롭게 직업을 수행했다는 점에서 자기만족이 있다는 것, 잃은 점은 외부에서 보는 법관의 시각에 맞춰야 되기 때문에 행동의 제약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리고 남편이자 아버지가 판사라는 이유로 가족에게 마음대로 활동을 못하게 하는 구속감을 준 게 직업의 불편함이에요. 저는 우리 애들에게 이른바 '사'자로 끝나는 직업에 대해 이야기한 적도 없고, 애들도 아버지가 판사하는 걸 보면서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에 그쪽 방면으로는 전혀 생각을 안했어요.

Q. 판사로서 맡았던 사건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있나요?
A. 기억에 남는 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제주도지사 선거법 위반사건에서 불법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서 가치가 없다는 판례를 낸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 외에도 형사사건에서 유죄였던 사건을 무죄로 파기한 사건도 기억나는데 구체적으로는 말씀드릴 수 없고, 10년 정도 지나다 보니까 다 잊어버렸어요(웃음).

Q. 판사는 늘 무표정으로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A.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교육을 그런 식으로 많이 했죠. 너무 무표정으로 하다 보니까, 사람이 재판하는 게 아니라 기계가 재판하는 것 같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데 재판은 사람 사는 일에 대한 판단이기 때문에 기계한테는 맡길 수 없잖아요. 그건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외국 법정에서는 웃으면서 하거든요. 
 

[사진=박일환 전 대법관 제공]


Q. 어떻게 해서 대법관의 자리까지 올랐나요?
A. 어떻게 대법관까지 갔는지 제 자신도 모르지만 결국 제 자리에서 열심히 한 걸 평가해주신 덕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동료들한테는 믿음직한 사람이라는 평을 받는 게 제일 좋다고 생각해요.

Q. 대법관은 어떤 직업인가요?
A. 판사라는 직업은 외로운 직업이죠. 다른 사람과 상의해서 결정할 수 없고 자기가 한 일은 스스로 100% 책임지고, 누구 때문이라고 핑계도 댈 수 없거든요. 결론이 금방 안 나는 사건이 많은데 답을 언젠가는 찾아서 내놔야 되니까, 그게 제일 힘들죠. 제일 고민했던 사건은 2년 정도 걸렸어요. 그 중에서 1년에서 1년 반은 심리를 하는 기간이고 할 건 다 했는데 답이 안나올 때가 제일 괴롭죠.

Q. 대법관에게 기록물이란 어떤 의미를 갖나요?
A. 대법관은 어느 누구에게도 간섭 받지 않고 자기 이름으로 판결을 내리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무한의 책임을 지는 거예요. 저에게는 업무지만 그 사건과 관련된 당사자에게는 일생의 큰 사건이기 때문에 판결을 내릴 때는 항상 그걸 염두에 두고 결정하기 때문에 심리적인 압박감이 많아요. 판사 활동 초기에는 한쪽이 불쌍하다고 불쌍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판결이 반복되면 중립적이게 돼요.

​Q. 기록들이 굉장히 많을 것 같아요.
A. 말로 하기 어려운데 건물 101층 같은 큰 사건도 있고, 10평짜리 단칸방 크기 만한 작은 사건도 있어요. 각 사건이 비슷해 보이더라도 당사자와 사연이 다르기 때문에 다 확인해야 되긴 해요. 형사 단독 사건은 일주일에 10건 정도 처리하기도 하고, 민사 합의사건은 일주일에 6~7건 정도 진행하기도 하죠. 다른 사건보다 10배 정도 시간이 더 걸리는 사건도 있고, 10분의 1 정도로 빨리 끝나는 사건도 있어요.

 

[사진=박일환 전 대법관 제공]


Q. 법으로 인해 힘들었거나 원하던 걸 못했던 적이 있나요?
A. 당사자 입장에서는 사정이 딱한데 법으로는 어쩔 수 없을 때가 제일 힘들죠. 그렇다고 우리가 법을 고칠 수 없잖아요. 법이 만들어지면 상황에 따라서 유리할 수 있고, 불리할 수 있는데 유리할 때만 적용하고 불리할 때는 적용하지 않을 수는 없잖아요.

무슨 이런 법이 있냐고 할 수 있겠지만 법을 만들 때 못하게 해놓은 근거가 있을 거예요. 그걸 안 함으로써 얻는 사회적인 이익이 있어요. 법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나는 불편하더라도 다른 사람한테는 편할 수 있고요. 법을 만든 사람의 입장을 존중해야 하는 상황에서 너무 심하거나 약한 판결이 나왔을 때 비난이 쏟아질 수 있는데 그럴 때 법을 집행하는 사람으로서 힘들어요.

Q. 법조인들은 맡은 일을 마치면 왜 대부분 변호사를 하는 건가요?
A. 옛날에는 판검사를 할 수 있는 변호사가 없었어요. 재판할 사람이 부족했거든요. 우리나라에 있는 변호사를 다 데려와도 판검사 수요를 채울 수 없었어요. 그래서 그때는 임시적으로라도 자격을 부여해서 판검사를 많이 시켰어요. 그러다가 그 사람들의 집안형편이 나쁘거나 나이가 많거나 개인사정 때문에 변호사를 하는 시스템으로 30~40년간 유지되어 왔거든요. 그래서 판검사 하다가 변호사 하는 거예요. 그렇지만 지금은 사회가 발전하면서 많이 달라졌어요. 지금은 변호사가 되어 힘든 면도 있고 안 힘든 면도 있지만 변호사는 자유업이니까, 정신적으로 자유로워요.

Q. 내 인생에서 가장 지키고 싶은 법은 뭔가요?
A. 내가 약속한 건 꼭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어요. 내가 한 것은 내가 책임지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한다고 했는데 못하면 상대방이 마음이 아프고 신용도 떨어지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지키려고 해요.

 

[사진=박일환 전 대법관 제공]


Q. 유튜버가 된 계기가 뭔가요?
A. 본래 제가 했던 판결 중에서 괜찮은 내용이나 경험하면서 느낀 법조계의 변화,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사법제도 등에 대해 책을 쓰려고 했어요. 그런데 제 딸이 자서전 같은 거 쓸 생각하지 말고 영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남기면 보는 사람이 많고, 훨씬 효과적일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해서 시범적으로 몇 번을 해봤어요. 유튜브는 짧은 시간 내에 반응이 오는데 책은 한 권 분량을 쓰는 게 오래 걸리고 제 스스로도 쓸 수 있을지 없을지도 잘 확신이 안 되더라고요. 근데 영상을 찍으면서 하나씩 정리가 되어 가니까, 괜찮겠다 싶어서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Q. 유튜브를 하면서 삶이 어떻게 바뀌었나요?
A. 친구들은 유튜브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유튜브를 한다고 했을 때 무관심이었고, 젊은 후배들 중에는 “우리도 못하는데 어떻게 하냐”고 부러워 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지금까지는 법조계 사람들만 만나 왔는데 유튜브를 하면서 새로운 분야의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좋죠. tvN '유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하기 전에는 구독자 수가 4만 5000명 정도 됐는데 출연한 뒤 한 달 사이에 6만명이 늘었어요. 1000명 늘리기도 어려운데 일주일에 만명 정도 늘어난 것이죠.

Q. 콘텐츠를 만들면서 가장 어려운 건 뭔가요?
A. 소재가 안 떠오를 때가 제일 어렵죠. 그래서 새로운 판례가 나오면 그 중에서 고르기도 하고, 내가 옛날에 생각했던 경험담을 올리기도 하고요. “이런 건 어떻냐”는 댓글이 달리면 거기서 힌트를 얻기도 해요. 앞으로도 판례에 대한 설명과 해설들을 담은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요.

Q. 젊은층들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구독자가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뭔가요?
A. 질문은 많이 하지 않고 반응만 보여주는 편이에요. 악플이 없는 청정구역이라고도 하는데 소문이 그렇게 나서 지금도 계속 유지되고 있어요. 악플이 달려도 “그건 잘못됐다”고 자기들이 다 정리를 해주더라고요(웃음). 젊은 세대들에게 소송절차 등의 적용 과정과 앞으로 이렇게 될 것이다 하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재판을 하면 3심제를 한다는 것, 형사재판과 민사재판의 차이 정도는 학교에서 알려줘야 된다고 생각해요. 대학에서도 법을 전공하는 사람은 아니더라도 사회생활하면서 필요하니까 교양으로는 배울 필요가 있죠.

Q. 유튜브를 하고 싶은데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A. 누군가 만나면 ‘당신도 그 분야에서 전문가니까 유튜브를 해보라'라고 하는데 말은 쉬워도 하기는 어렵더라고요. 전문지식뿐만 아니라 유튜브를 만드는 요령도 있어야 되고 콘텐츠 만드는 꾸준함도 필요해서 함부로 권하기는 어렵더라고요.

 

[사진=김호이 기자/ 인터뷰 장면]


Q. 판사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A. 대충하고 넘어가면 안돼요. 의문점이 없을 때까지 끝까지 따지면서 결론을 내리는 게 중요해요. 인간이 문제를 따져도 의문점이 없는 건 없어요. 우리 기억이 희미하기 때문에 과거에 있었던 일을 본인도 잘 몰라요. 제3자한테 알리는 건 더 어렵죠. 그렇기 때문에 재판이라는 것도 진실과 100% 부합하는 재판을 할 수 없어요. 그런 걸 어느정도 감안하고 인간이 만든 제도가 돌아간다는 걸 인식해야 돼요.

Q. 정의란 무엇인가요?
A. 그건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정의의 기준은 다 다르기 때문에 인간사회에서 정의라는 건 정해서 말할 수 없어요.

Q. 우리나라 법정에서 바뀌었으면 하는 것들이 있나요?
A. 지금은 많이 바뀌었어요. 제가 초임 판사 때는 10시에 대법정에 100명 정도의 사람들을 불러서 50건 정도의 사건을 봤었어요. 베이비붐 세대 때 학교에서 2부제, 3부제로 수업을 했던 것처럼요.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한 건 한 건 하려니까 힘들었죠. 지금은 그 사건의 당사자와 다음 사건 당사자만 와서 한 사건당 10~20분 정도의 시간을 두고 심리를 하고 있어요. 그런 면에서 지금 법정 분위기는 180도 바뀌었죠.

Q. 마지막으로 은퇴 후 뭘 해야 될지 고민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A. 우리 인생이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요. 압박감을 가지고 뭔가 하려고 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안하고 시간을 보내면 안돼요. 자기가 잘해오던 것과 새로운 걸 섞어서 하는 게 좋아요. 완전히 새로운 걸 하다 보면 그걸 공부하다가 시간이 다 가니까 반은 내가 아는 것, 반은 내가 모르는 걸 접목해서 살아가면 훨씬 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사진=김호이 기자/ 박일환 전 대법관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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