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 조수미의 삶에서 지키고 싶은 태도에 대하여

2021-02-16 17:29
  • 글자크기 설정
지난 1986년, 척박한 타지에서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을 비롯해 많은 클래식 거장의 러브콜을 받으며 세계가 사랑하는 성악가로 거듭난 조수미. 그는 어머니의 못다 이룬 성악가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방안에 갇혀 하루 8시간 이상을 연습해왔다.

꾸준한 노력 끝에 꿈을 이룬 그는 '천상의 목소리', '세계 최고의 소프라노' 등 다양한 수식어와 함께 세계 무대에서 자유로움을 표현하며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하고 있다. 성악가 조수미와 함께 
삶에서 지키고 싶은 태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SMI엔터테인먼트 제공/ 성악가 조수미]


Q. 한 분야에서 30년 이상 일을 해보니 어떤가요?
A. 우리에게 잘 알려진 TV 프로그램 ‘달인’이 갑자기 생각나네요. 그 프로그램에 나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일한 분야에서 10년을 훌쩍 넘겨 일을 해 오신 ‘달인’이었어요. 일반적으로 같은 환경에서 한 가지 일로 오랜 시간을 보낸다는 가정이 기본적으로 깔리는 것 같은 분야예요. 만약 매일매일 다른 환경에서 일한다면 그 만큼 ‘달인’이 되는 조건은 힘들어지겠죠. 세계 무대에서 노래한다는 것은 매번 다른 연주자, 다른 지휘자, 다른 환경에서 일한 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매번 적응해야 하는 게 항상 힘들어요. 하지만 저와 함께 일을 하는 상대방이 저보다 경험이 적다면 아무래도 조금 유리한 입장이 될 수 있죠. 세계 오페라 무대와 공연 무대에서의 30년은 정말 화살처럼 흘러갔고 그 많은 기억들을 간직하게 됐어요.

Q. 삶에서 지키고 싶은 태도는 뭔가요?
A. 제가 믿고 있는 것에 대해 지속적으로 확신을 하는 것이에요. 때론 환경적인 요인에 의해 의욕이나 흥미를 잃는 경우가 있지만 저의 경우는 그럴 때면 늘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 집중하고 배워가면서 무기력한 느낌을 이겨내곤 해요. 무기력이나 허탈감, 우울한 느낌 그리고 자신감을 잃는다는 것은 늘 자기 자신과의 문제에서 발생하는 것 같아요. 분위기를 확 바꾸거나 새로운 노래를 시도하거나 무엇인가 나의 마음에 큰 변화를 줄 수 있는 것을 찾아 하는 편이에요.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무기력한 마음에서 벗어나게 돼요.

Q. 인생에서 최고의 타이밍은 언제였나요?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했나요?
A. 공부하는 학생 신분에서는 매일매일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죠. 언제 이런 기회가 다시 올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그렇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어쩌면 타이밍이라는 것은 내가 조절할 수 있기 전까지는 절대 최고의 타이밍을 가질 수 없는지도 모르겠어요. 때론 잘 준비된 사람들에게만 좋은 타이밍이 온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늘 준비하고 연습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아마 지금도 그것이 당연하다고 믿고 있고 그렇게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오랜 시간의 경험은 나쁜 타이밍도 좋은 방향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능력을 갖게 하죠. 흘러가는 대로 놔두고 지켜보는 여유도 가끔은 의미가 있습니다. 여유에서 오는 적절한 타이밍이 있기 때문이죠.

Q. 발성 연습은 어떻게 하세요?
A. 저만의 발성을 갖게 된 이후부터 그 능력을 곡에 가장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연습했어요. 저의 경우도, 벨칸토 창법에 근거한 발성법을 이해하고 적용하는 순간부터 그 방법을 적절하게 노래에 적용하는 기술을 터득하게 됐죠. 때에 따라서는 노래 종류나 장르에 따라서 자신의 목소리에 변화를 줘야 하는데, 실제로 목소리에 변화를 주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에요. 예를 들어 우리나라 전통 민요를 공부한 사람이 성악적 발성으로 오페라 아리아를 노래하긴 쉽지 않죠. 발성은 그렇게 다양한 발성법 중 자신이 훈련한 발성법을 습득하고 곡에 맞도록 적용하는 기술이에요.
 

[사진= SMI 엔터테인먼트 제공]



Q. 한결같은 목소리를 유지하기 위한 비결이 있나요?
A. 저의 경우는 좋은 제 목소리의 상태를 좋게 유지하기 위해 가장 일반적인 방법을 택하고 있어요. 가장 기본적으로 목소리에 무리가 되는 노래나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죠. 성악가에게는 때론 자신의 목소리에 적합하지 않은 노래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가능하면 그러한 환경을 피하는 것이 가장 좋은 목소리 유지법이에요.

Q. 목소리의 어떤 부분을 좋아하세요?
A. 저는 제 목소리의 특징 중 얇고 투명하게 쭉 뻗어나가는 성질을 좋아해요. 이런 목소리의 특성은 일반적인 소프라노들이 부를 수 없는 영역의 아리아를 부를 수 있도록 해주죠.

Q. 오페라에서 노래를 잘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A. 목수에게 집을 잘 짓는 방법을 묻는다면, 설계가 잘 되어 있어야 하고 좋은 재료가 준비돼야 하고, 나무를 다루기 위한 적절한 기술이 필요하다고 하겠죠. 큰 집이라면 함께 일할, 손발이 잘 맞는 팀도 있어야 하겠고요. 오페라는 단순히 성악가들이 모여서 노래를 하는 것이 아닌 극과 의상, 연출, 세트 등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가미된 종합 예술입니다.

이러한 종합 예술이 잘 만들어지려면 좋은 목수가 좋은 집을 지을 때의 모습과 마찬가지로 오페라 제작의 모든 영역에 하모니가 있어야겠죠. 그러한 환경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마 가장 노래를 잘 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성악가가 자신이 맡은 파트를 잘 준비해야 함은 더 말할 나위가 없겠죠. 같은 실력이라면 오페라 제작 환경의 팀워크가 잘 갖춰져 있을 때, 무대에 선 성악가가 관객들께 더욱 좋은 노래를 선사할 수 있습니다.
 

[사진= SMI 엔터테인먼트 제공]


Q. 성악가로서 행복했던 순간과 괴롭고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A. 대부분의 성악가에게 묻는다면 가장 행복한 순간은 노래할 때라고 말할 것입니다. 저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고요. 노래 부르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고 함께 노래를 하거나 연주하는 음악가들과의 호흡이 나와 잘 맞을 때 행복합니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성악가의 표현이 더욱 정교하고 감성적으로 표현되죠. 힘든 순간은 물론 이와 반대일 때입니다. 노래를 못 부를 상황에서 가장 불행하다고 느끼죠. 노래를 부를 수 있지만 환경적 요소가 적정하지 않을 때 노래를 부르기 매우 힘듭니다.

예를 들어 지휘자가 제가 부른 노래를 잘 이해하고 있지 않다면 성악가의 호흡이나 발성에 대한 배려없이 자신이 해석한 방식으로 연주를 하게 됩니다. 이럴 경우 성악가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 공연 전에 충분한 리허설을 해야 합니다. 슬럼프가 있을 수 있지만 저의 경우 삶에 대한 태도가 비교적 긍정적이라 슬럼프를 심하게 고민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좋아질 수 있는 환경에서 가능하면 많은 휴식을 취하는 편입니다. 그러면 다소 기분 전환이 되어 자연스럽게 일상적으로 상태로 돌아오곤 합니다.

Q. 삶에서 특별히 중요한 인연과 우연이 있었나요? 그것들이 어떤 영향을 줬나요?
A. 가장 중요한 인연은 마에스트로 카라얀과의 만남이었어요. 정말 마법 같은 매력을 가진 분이었죠. 당시 고령으로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오페라 작품에 출연할 성악가를 직접 오디션했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생각을 나눌 수 있었어요. 때론 어린애와 같은 마음이 제게 순수함을 느끼게 했어요. 그분의 조언들은 지금도 대부분 잘 지키고 있고, 제가 다른 후배들에게도 늘 조언해 주곤 해요. 한 사람의 위대한 예술가가 미치는 영향은, 전 인류에 큰 도움을 줄 만큼 과학적 성과를 낸 과학자의 공로와 동등하다고 생각해요. 그러한 위대한 예술가의 모습을 간직하고, 또 그렇게 되기 위해 늘 노력해요.

Q. 동료들과는 어떤 고민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나요?
A. 직장에서 함께 일하는 사이를 동료라고 한다면 사실 성악가는 홀로 준비하고 공연하는 경우가 많아서 특별히 동료라는 존재가 없는 편이에요. 다만 한시적이라도 함께 무대에 서는 음악가들을 동료라고 한다면 비교적 짧은 시간을 함께 보내기 때문에 특별히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적어요. 어떻게 생각해보면 철저히 외톨이인 셈이죠. 제게 동료는 음악을 함께 만들어 가는 동반자와 같은 존재들이라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인생을 함께 음미하고 즐길 수 있는 친구들은 극히 제한적인 편이에요.
 

[사진= SMI 엔터테인먼트 제공]



Q. 요즘 오페라 시장은 어떤가요? 
A.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환경에서 전 세계의 공연 예술이 큰 타격을 받고 있는 상황이에요. 오페라 프로덕션 자체가 무대에 올라갈 수 없기 때문에 암흑기와 같습니다. 오페라와 같이 오랜 제작 기간과 연습 그리고 많은 수의 뮤지션과 제작 파트 엔지니어를 필요로 하는 예술 분야는 이러한 팬데믹 환경에서 점진적으로 그 기회를 잃게 되죠. 팬데믹이 길어지면 사람들의 삶 속에는 오페라 장르가 더욱 낯설어져서, 팬데믹이 끝난 이후에도 이미 변화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관객석에 앉히기 어려워요.

코로나19는 세계사적인 의미로 본다면 한 시대에 큰 영향을 끼친 문화적인 충격이며 이 역시 사람이 살아가는 역사 속 문화의 하나로 남을 것입니다. 어쩌면 이러한 팬데믹이 오래 지속될 경우 그 속에서 적절한 문화 형식이 생겨날 것이고 오페라와 같이 전통적인 개념의 문화 형식이 더 이상 주목 받지 못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오페라는 오랜 시간 동안 사람의 문화적 활동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영역으로 여러 사람들이 그 형식을 보존하고 즐거워하는 문화의 한 형식으로 지속될 거예요.

Q.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A. 요즘은 특히 음악 분야에서 다양한 장르가 융합되고 있고, 여러분은 그런 환경에서 노래를 공부하고 활동하고 있어요. 제가 처음 클래식이 아닌 크로스오버 형식의 노래를 공식적으로 부르고자 했을 때 많은 우려가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성악가는 성악만 해야 한다는 사람들의 통념이 지배적인 때였기 때문이죠. 아마 지금의 젊은 예술인들은 그리 멀지 않은 시점에 대중가수와 노래를 했다고 해서 함께 노래한 성악과 교수에게 불이익을 준 사실에 대해 알지 못할 거예요.

음악은 시대의 산물입니다. 여러분들이 하시는 음악은 이 시대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어야 하며 그에 앞서 노래를 하는 본인의 마음이 우선적으로 편해야 돼요. 현실적으로 줄어드는 공연 기회가 때로 마음을 답답하게 하지만 좀 더 많은 기회를 얻기 위해 예전에 비하여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제는 선택을 해야 할 때로, 그러한 선택에 직면한 여러분들은 매우 현명한 선택을 해야만 하죠. 어떠한 선택을 하든 중요한 것은 그 선택이 헛되지 않도록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거예요. 노력하는 자에게만 기회가 주어진다는 진실은 변하지 않아요.

Q. 어떤 이야기를 전하는 성악가가 되고 싶으세요?
A. 이름 앞에 붙이는 수식어는 제가 만드는 것이 아니고 저를 바라보는 분들이 불러 주시는 것이겠죠. 30여년간 오페라 가수로서 가진 무대 경험은 음악적 영역과 음악 산업적 영역에서 많은 경험과 함께 깨달음을 줬어요. ‘어떤 음악가가 바람직한 음악가인가’와 같은 아주 직설적인 의구심뿐만 아니라 어떤 방법이 좋은 음악가를 만든 길인가와 같은 현실적이고 교육방법론적인 내용도 이해하게 됐어요. 무엇보다도 가장 바람직한 깨달음은 어떻게 하면 여전히 좋은 음악을 만들고 부를 것인가예요. 아울러 나의 생각과 철학을 잘 전달할 수 있는 성악가가 되는 길은 아직도 멀어요. 2021년은 제가 세계 무대 데뷔 35주년을 맞이하는 해이지만 새로운 각오로 지금까지 경험한 많은 느낌을 무대에서 보여주는 성악가가 되고 싶어요.
 

[사진= SMI 엔터테인먼트 제공]


Q. 조수미의 꿈은 뭔가요? 성악가 외에 무엇에 도전하고 싶으세요?
A. 지난 35년의 세월도 꿈을 이뤄가는 여정이었죠. 아직 많은 날들이 다가올 것이고 아직 다 이루지 못한 아름다운 도전들(beautiful CHALLENGE)들을 해나갈 생각이에요. 예전과 다른 점이라면, 예전의 나는 음악에 모든 승부를 거는 승부사의 마음가짐이었다면 지금은 나의 가치를 알리고 사회에 환원하려는 기쁜 생각들을 가졌다는 거예요. 이러한 마음가짐은 단순히 음악을 통해 받은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해요.

Q, 마지막으로 성장하고 싶어 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A. 사람들은 자신의 연령이나 경험과 관계없이 늘 더 나은 자신을 위하여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 하죠. 나아간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변화를 추구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인가 지금과 다른 미래, 희망적으로 말하자면 무엇인가 더욱 즐겁고 보람차고 의미있는 무엇인가를 원하는 것이겠죠. 이러한 변화는 상당히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것이고 약간의 노력을 들인다면 생각보다 큰 변화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최소한 저만 해도 그러한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늘어지지 않고 주저앉지 않고 늘 앞으로 향해 무엇인가를 꿈꾸고 변화하려고 노력한다면 여러분들의 미래는 지금보다 더욱 밝고 긍정적으로 변할 거예요. 마지막으로 코로나 시기에 오랜 기간 동안 참아오고 신경써가면서 제약된 삶을 살아왔는데 이제 그러한 어려움도 곧 걷힐 거예요. 여러분의 생각과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시기 바랍니다. 건강하세요.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