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돋보기] "흙수저에서 카카오 의장까지"... 5조원 사회 돌려주는 김범수 의장 일대기

2021-02-09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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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 절반 사회 환원 약속한 김범수 카카오 의장, 자녀에게 승계 생각 없어

"세상을 바꾸는 것은 기업이다"... 전부터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조

어려운 상황에서 자수성가... NHN·카카오 창업해 국내 3위 부자로

누가 저한테 그랬어요. 웬만한 부자는 자기 힘으로 될 수 있지만, 억만장자는 하늘이 내려 주시는 거라서 그 뜻을 잘 새겨야 한다고. 지나가는 말로 툭 던진 얘기였는데, 저한테는 굉장히 와 닿았어요. 제 노력보다 훨씬 많은 부를 얻었기 때문에 그 이상은 덤인 것 같아요.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지난 2017년 한 말이다. 이때부터 사회 환원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일까.

국내 세 번째 주식 부자인 김 의장이 자신의 재산 절반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약속했다. 9일 기준 약 5조원에 달하는 액수다. 수조원대 자산을 사회에 돌려주는 것은 국내 기업인 중 김 의장이 처음이다.
 

김범수 카카오 의장.[사진=우한재 기자, whj@ajunews.com]

김 의장은 지난 8일 카카오 본사와 계열사 임직원에게 보낸 신년 메시지에서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기부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격동의 시기에 사회문제가 다양한 방면에서 더욱 심화되는 것을 목도하며 더 이상 결심을 늦추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짐이 공식적인 약속이 될 수 있도록 적절한 기부서약도 추진 중에 있다"고 밝혔다.

이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용할지는 이제 고민을 시작한 단계"라며 "카카오가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의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사람을 찾고 지원해 나갈 생각"이라고 전했다.

김 의장은 지난해 하반기 기준 카카오 주식 1250만주를 보유하고 있다. 그의 개인법인인 케이큐브홀딩스의 카카오 주식(994만주)까지 합치면 지분 가치는 약 10조2000억원에 달한다. 주식으로만 최소 5조원 이상을 기부하는 셈이다. 그는 지난해 3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피해 복구에 사용해 달라며 주식 1만1000주(약 20억원 상당)를 내놓기도 했다.
 
작년 말 사회 환원 뜻 굳혀... 기업 승계 안 한다

김 의장은 지난해 말 사회 환원에 대한 뜻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당시 그는 측근들에게 1조원을 사회에 환원할 계획이라며 방법을 알아 오라고 지시했다. 이번 메시지는 사회 환원에 관한 김 의장의 의지가 구체화된 것이다.

김 의장은 지속해서 자녀에게 기업을 승계하지 않고 전문 경영인 체제로 카카오를 운영할 것임을 강조해왔다.

다만 지난 1월 어려운 시기에 자신을 뒷바라지한 가족들에게 보은 차원에서 보유한 카카오 주식 중 33만주(약 1450억원 상당)를 아내·자녀·친인척에게 증여한 바 있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에선 김 의장이 자녀에게 기업을 승계하기 위한 밑 작업을 하는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김 의장은 주식의 절반을 사회 환원하기로 밝히며 기업 승계에 대한 뜻이 없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예전부터 김 의장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ESG)과 '소셜임팩트'를 강조해왔다. 소셜임팩트란 기업이 혁신적 아이디어와 기술을 활용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면서 동반 성장하는 것을 말한다. 그는 "사회를 지속해서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조직은 기업"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지난 2018년에는 사회공헌재단 카카오임팩트를 설립하고 이사장을 맡기도 했다.

IT 업계에 따르면 김 의장은 사회단체 또는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형태로 재산을 환원하지는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그보다는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에 맞춰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전문가를 모으고 이들에게 후원하는 형태로 재산을 환원할 전망이다.

먼저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전문가들의 프로젝트 제안서를 검토한 후 이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공유사무실과 재정적 지원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찾으면 그때 김 의장이 주식을 처분해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전 재산의 절반을 환원할 것이란 설명이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처럼 자선단체를 직접 설립한 후 이를 운영하는 방식도 거론되고 있다.

이번 환원 약속에 앞서 김 의장은 모교인 건국대사대부고, 아쇼카코리아,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 게임인재단, 시프로그램 등에 꾸준히 기부를 한 바 있다.
 

김범수 카카오 의장은 전부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해왔다.[사진=아주경제DB]

 
힘든 상황에서 혈서 쓰며 공부... NHN에서 카카오로 이어지는 창업 신화

김 의장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수성가해 부를 일궈낸 대표적인 인물이다. 전라남도 담양에서 농사를 짓다 상경한 부모님 사이에서 1966년 2남 3녀 중 맏아들로 태어난 김 의장은 어릴 적엔 할머니를 포함한 여덟 식구가 방 한 칸짜리 집에서 살 정도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김 의장은 1986년 건국대사대부고를 졸업한 후 1990년 서울대 산업공학과에서 학사를, 1992년 동 대학원에서 석사를 취득했다. 대학 입학을 위해 재수를 하며 의지가 흔들리는 것을 막기 위해 손가락을 베고 혈서를 써가며 독하게 공부했다. 하지만 한게임·카카오 재직 시절에 김 의장은 직원들에게 자기 뜻만을 강요하지 않는 부드러운 CEO로 유명했다. 남에게는 관대하고 자신에겐 엄격한 '관인엄기(寬人嚴己)'형 인물인 셈이다.

김 의장은 대학에 들어가 어려운 시절에 대한 보상심리로 고스톱, 포커, 당구, 바둑 등 테이블 게임에 몰입했다. 그러나 이것조차 훗날 그가 한게임을 창업하는데 핵심적인 경험으로 작용했다.

그는 석사 취득 후 삼성데이타시스템(현 삼성SDS)에 입사했다. 이곳에서 훗날 함께 사업을 도모하게 될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글로벌투자책임자(GIO)와 남궁훈 카카오게임즈 대표를 만났다.

이후 한국을 강타한 스타크래프트에 빠져들어 한양대 앞에 당시 국내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PC방인 '미션넘버원'을 창업했다. 이곳에서 그는 운명을 바꿀 경험을 하게 된다. 디지털의 선봉에 서있는 PC방이었지만, 이용시간을 수기로 작성하는 등 운영은 여전히 아날로그에 머무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업 기회를 찾은 셈이다.

이에 김 의장은 다니던 회사를 퇴사한 후 PC방 운영은 아내인 형미선씨에 맡기고 자신은 PC방 운영 프로그램 개발에 매진한다. 이후 회사 후배였던 남궁훈 대표와 의기투합해 1999년 게임포털 '한게임'을 설립했다.

한게임은 김 의장의 아이디어인 웹상에서 바로 테이블 게임을 실행하는 기술과 김 의장이 직접 만든 PC방 운영 프로그램을 토대로 설립 1년 6개월 만에 회원 1000만명을 모으며 국내 대표 게임포털로 급성장했다. 남궁훈 대표는 이렇게 만든 게임과 프로그램을 전국 PC방에 알리는 영업총괄을 맡았다.

이후 한게임은 이해진 GIO가 만든 네이버컴과 합병, NHN(Naver·Hangame·eNtoi)으로 거듭났다. 두 사람은 NHN을 공동 경영하며 2002년 NHN을 코스닥에 상장시켰다. 한게임의 지원 사격으로 네이버는 이내 국내 최대 포털로 성장할 수 있었다.

2004년 NHN 대표를 맡은 김 이장은 이후 이해진 GIO와 경영에 관련한 의견 차이를 보이게 된다. 이에 NHN 해외지사를 맡았다가 결국 이해진 GIO와 결별하고 2009년 NHN을 떠나 자녀가 있는 미국으로 간다.

이후 김 의장은 일만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녀들과 함께 전 세계를 둘러봤다. 자녀들과 함께 PC방에서 밤을 새우며 게임을 즐기는 등 아버지로서 역할에 충실했다. 그는 지금도 휴식 기간 최고의 기억은 가족과 함께 블리자드의 게임 '디아블로'를 깬 것이라고 말했다.

휴식을 취한 후 김 의장은 NHN 외부 이사로 재직 당시 설립한 스타트업 '아이위랩' 운영에 힘쓴다. 직원 수 10여명의 스타트업이었던 아이위랩은 4년간 다양한 모바일 앱을 개발하다가 김 의장이 아이폰을 보고 영감을 얻어 개발한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의 성공으로 급성장하게 된다.

2010년 3월 출시된 카카오톡은 출시 하루 만에 가입자 3만명을 모았고, 6개월 뒤 가입자 100만명을 돌파하며 국내 초기 모바일 시장을 선점하는 데 성공한다. 이에 김 의장은 회사 이름을 아이위랩에서 카카오로 바꾸고 본격적으로 모바일 비즈니스에 착수했다.

이후 카카오톡을 토대로 모바일에서 O2O, 핀테크, 모빌리티 등으로 사업을 확대했고, 2014년 10월 다음커뮤니케이션즈를 인수하는 형태로 코스닥 시장에 입성했다.

카카오를 운영하며 김 의장은 직원과 격식을 차리지 않고 편하게 소통했고, 모든 직원이 영어 이름으로 통성명하도록 해 자유로운 기업 분위기 조성에 힘썼다. 김 의장이 만든 이러한 카카오 특유의 기업문화는 이후 카카오가 지속해서 인수·합병을 하고 사업을 확장하면서도 조직끼리 빠르게 소통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김 의장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계열사 간 협업과 소통을 위한 카카오공동체센터를 설립·운영했다.

김 의장은 2015년 8월 임지훈 전 케이큐브벤처스 대표를 카카오 대표로 선임하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카카오 이사회 의장으로서 다양한 카카오 계열사의 미래 방향성을 제시하고 계열사 간 협업 시너지를 끌어내는 일에 집중했다.

임 대표는 회사를 코스피로 이전 상장하고, 로엔엔터테인먼트(멜론)를 포함해 여러 기업을 지속해서 인수·합병하며 카카오의 사세를 키웠다. 다만 계열사 영업이익률이 10% 미만으로 떨어지거나, 적자가 나는 등 카카오의 덩치를 키웠지만 내실은 다지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에 김 의장은 2018년 1월 여민수 광고사업부문총괄 부사장과 조수용 공동체브랜드센터장 부사장에게 카카오 공동대표를 맡겼다. 금융, B2B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한 카카오가 영업이익률 확대, 계열사 상장 등 내실을 다지려면 새로운 리더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이후 카카오는 자산 총액이 10조원을 돌파하면서 2019년 5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대기업 집단)으로 지정됐다. 국내 IT 스타트업이 대기업 집단으로 거듭난 첫 번째 사례다. 김 의장 역시 동일인(대기업 총수)으로 지정됐다. 김 의장은 국내에서 1조원이 넘는 기업 주식을 보유한 사람 가운데 가장 빠르게 재산이 급증한 인물(1조원→10조원)로도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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