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군부의 1일(이하 현지시간) 쿠데타 공식 선언으로 미얀마 민주주의가 다시 위협을 받게 됐다.
미얀마는 지난해 11월 집권당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총선 승리로 문민정부 2기의 문을 열었다. 새롭게 선출된 미얀마 의회는 이날 처음으로 소집될 예정이나 군부의 쿠데타로 취소됐다.
로이터·AFP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미얀마 군부는 이날 공식 성명을 통해 미얀마 권력이 민 아웅 흘라잉 군 최고사령관에게 이양됐고, 1년간 비상사태를 선포한다고 밝혔다.
묘 뉜 NLD 대변인은 앞서 AFP통신과 통화에서 수치 고문과 윈 민 대통령 등 정부 고위인사가 군부에 의해 구금됐다는 사실을 전하며 자신도 곧 구금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군부 쿠데타 이후 국영TV·라디오방송 등은 ‘기술적 문제’로 인해 방송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페이스북을 통해 밝혔다. 주요 외신들은 미얀마 수도 네티도와 최대 도시 양곤 등의 인터넷 및 전화선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전하며 쿠데타 발생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영국 BBC의 조나단 헤드 동남아시아 특파원은 네피도와 양곤의 거리에 군인이 있다며 현지의 긴장된 상황을 설명했다. AFP 역시 목격자를 인용해 양곤의 시청 청사 바깥에 군인들이 배치됐다고 전했다.
태국 매체 엠타이(MThai)는 트위터를 통해 “1일 오전 8시 현재 미얀마의 상황은 조용하다”면서도 “일부 전화, 인터넷에서 문제 발생이 보고됐고, 라디오와 TV 방송이 취소됐다”고 했다.
이와 관련 미얀마 은행협회는 공식성명을 통해 미얀마 현지 정치상황과 인터넷 문제 등으로 은행을 이날 임시폐쇄하고 모든 금융서비스 제공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미얀마 군부의 이번 쿠데타는 지난해 11월 8일에 치러진 미얀마 총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수치 고문이 이끄는 집권당 NLD는 지난 2015년 총선에서 압승해 1962년 네윈 쿠데타 이후 53년 동안 지속한 군부 집권을 종식하고 문민정부 시대의 문을 열었다. 또 지난해 11월 총선에서도 전체 선출 의석의 83.2%를 석권하며 승리했다.
그러나 군부는 선거 직후 유권자 명부가 860만명가량 실제와 차이가 있다며 부정선거 의혹을 계속해서 제기해 왔다. 지난달 26일에는 선거관리위원회의 조사를 요구하고 쿠데타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당시 군 대변인인 조 민 툰 소장은 기자회견에서 “군부가 정권을 잡을 것이라고 말하는 건 아니지만, 정권을 잡지 않을 것이라고도 역시 말하지 않는다”고 했고, 또 군 책임자인 흘라잉 최고사령관은 “특정 상황에서 헌법이 폐지될 수 있다”며 쿠데타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러나 이후 유엔 및 현지 외교사절단이 공동성명을 통해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자 군부는 지난달 30일 “헌법을 준수하겠다”며 한 걸음 물러서는 모습을 보여 쿠데타 논란이 일단락되는 듯했다.
하지만 군부는 ‘헌법 준수’ 표명 이틀 만에 쿠데타를 일으키며 미얀마 민주주의를 다시 위기에 빠뜨렸다.
유엔, 미국 등 국제사회는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를 일제히 비판하며 수치 고문 등 구금된 문민정부 인사의 석방을 촉구했다.
젠 사키 미국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성명에서 “우리는 미얀마 민주주의 제도에 강력한 지지를 계속 이어갈 것”이라며 미얀마 군부를 향해 “현 상황이 철회되지 않으면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울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부터 이와 관련된 보고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수치 고문은 1989년 군사정부의 탄압으로 첫 가택연금 조치를 당했다. 1995년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6년 만에 가택연금에서 풀려났지만, 2000년 9월 2차 연금조치로 양곤 밖으로의 여행을 금지당했다.
2002년 5월 미얀마 군사정부를 이끄는 국가평화발전협의회(SPDC)가 그의 가택연금을 해제했지만, 미얀마 군부는 NLD 지지자와 친(親)군정 지지자들 사이에 유혈 충돌이 발생하자 2003년 5월 수치 고문을 다시 구금시켰다. 이로 인해 수치 고문은 1989년 이후 몇 년의 휴지기를 포함해 2010년 석방까지 총 15년을 가택연금 상태로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