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이 강제징용 피해 배상 문제, 위안부 피해 배상 판결 등으로 해결 과제가 산적한 가운데 연초부터 배타적경제수역(EEZ) 침범 문제로 갈등 수위를 높이고 있다.
양국은 최근 제주 동남쪽 해역에서 벌어진 일본 해양보안청 선박의 측량 활동으로 며칠간 대치 국면을 이어왔다.
동맹 중시 기조의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을 일주일 앞두고도 양국이 엉킨 실타래를 풀기는커녕 갈등 요소를 더욱 늘려가는 모양새다.
그러나 일본 측이 "우리 EEZ에서의 정당한 조사활동"이라고 주장하며 한국 측 요구를 거부, 한국 해경선과 일본 측량선이 한때 대치를 벌였다.
일본 정부 대변인 격인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일본 관방장관은 12일 기자회견에서 "(일본의) 해양보안청 측량선은 이번 해양조사는 우리나라의 배타적경제수역에서의 정당한 조사라고 응답하고 예정대로 조사를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토 장관은 또 "외교 경로를 통해 한국에 해당 조사는 우리나라의 배타적경제수역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한국 측의 중지 요구 등은 수용할 수 없다고 전달했다"고 강조했다.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 역시 같은 날 오후 정례브리핑에서 관련 질의에 "관계기관에 따르면 이번 일본 측 선박의 조사활동 수행 위치는 우리 측 배타적경제수역 쪽에 해당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정부는 국제법 및 관련 법령에 따라서 정당한 법 집행 활동을 상시적으로 수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 측량선에 대한 해양경찰청의 퇴거 요청이 정당한 법 집행이라는 뜻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일본 정부가 외교채널을 통해 항의해 온 사실이 있다면서 "우리는 일본 측에 우리 관할 수역이고 (해경이) 정당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는 점을 밝혔다"고 전했다.
아울러 "우리 측에 사전 동의를 득하지 않은 일본 측 해양조사는 즉각 중단돼야 한다는 요구를 분명히 했다"고 부연했다.
양측이 대치한 해상은 한국과 일본의 양쪽 연안에서 200해리 범위에 있는 제주 동남쪽 해상으로, 한·일 양국 EEZ가 겹치는 수역이다.
이 경우 양국 간 상호 협의로 수역을 정해야 하지만, 한·일 양국의 경우 독도 영유권 문제 등으로 끝내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정부가 내달까지 측량 조사를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혀 한·일 관계 악화에 대한 우려를 더한다.
특히 외교가에서는 일본 정부의 이번 조치가 지난 8일 위안부 배상 판결 직후 발생했다는 점에서 일본 정부의 의도를 주목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김정곤 부장판사)는 8일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에게 1인당 1억원씩을 위자료로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대상으로 한국 법원에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중 판결이 선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더불어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 등 20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두 번째 손해배상 소송의 판결은 당초 이날로 예정됐지만, 재판부는 추가 심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해 오는 3월 24일을 변론기일로 지정했다.
이와 관련, 가토 관방장관은 같은 날 회견에서 한국 법원의 위안부 재판에 대해 "향후 동향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주시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