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근절 위해 엘리트 시스템을 없애야 하는가 [대한체육회장 선거 D-3]

2021-01-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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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강로 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장

#아주경제신문사에서는 제41대 대한체육회장 선거(1월 18일)를 앞둔 상황에서 윤강로(64) 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장을 모시고 4회 이상에 걸쳐 대한체육(大韓體育)의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위한 길을 제시합니다.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사진=윤강로]


◆ 엘리트 스포츠 주도 국제스포츠계 판도와 폭력 정당화 토양

오랫동안 스포츠외교 분야에 몸담아 왔던 필자는 최근 스포츠계 동향을 보면서 지금 시점에서 한국 스포츠계의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담은 일련의 글을 쓰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연재 글을 기획하게 되었다.

오늘은 그다음 주제로, 엘리트 스포츠계의 문제인 폭력 문제에 대해 다뤄 보고자 한다.

한국 스포츠계는 일본강점기의 잔재인 폭력의 문화가 유산으로 남겨지면서 그 폭력을 부추길 수 있는 몇 가지 환경적 요인들을 지녀왔다.

과거 냉전 시대 하 미국·소련 간 군비경쟁과 더불어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은 스포츠계에서도 보이지 않는 전쟁을 이어왔고, 올림픽은 곧 군비경쟁만큼이나 치열한 양 진영 간 전쟁터가 되어왔다.

미국·소련뿐만 아니라 동독, 서독 간에도 메달 다툼이 치열했고, 남북대치상황 하에서 우리나라도 메달 획득을 위해 노력해왔다. 냉전 시대 올림픽 메달을 위한 엘리트 체육 시스템은 생활체육을 국가 스포츠 시스템에서 분리하는 결과를 빚었고, 국가 예산은 전문체육인을 육성하는 데 주력해왔다.

운동하는 학생들은 수업을 듣지 않아도 괜찮았고, 그들을 위해서는 합숙 훈련이 일반화되었다. 합숙소에 들어가면 가정과 차단된 채 운동에 전념해야 했고, 그 결과 부모에게서 떨어져 지내는 선수들은 지도자와 선후배 간 엄격한 규율 속에서 폭력에 노출되어 지내왔다.

특히 미국, 소련, 중국에 비해 인력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각 학교마다 성적을 내지 못하면 팀이 해체되는 일도 빈번하게 있었고, 그 결과 코치진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적을 내는 데 집중했으며, 선수들은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자신의 신체를 관리하지 못하고 단기적인 승부에만 집중해서 운동을 해왔다.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지도자들은 폭행을 정당화해왔다.

가정과 부모로부터 단절된 채 합숙 생활을 하다 보니 그 안에서 성폭행 관련 문제도 자주 일어났다. 자기에게 무엇을 훈련할지를 결정해주는 지도자가 성적인 행동을 하더라도 쉽게 맞설 수 없는 층층시하의 위계질서 속에서 선수들은 오직 승부 지상주의 냉혹한 환경 속에 고립된 채 각종 폭력에 노출되어왔다.

최근에 고인이 된 최숙현 선수의 사례만 보더라도 폭력이 얼마나 우리 스포츠계에 만연되어 왔는지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 엘리트 스포츠와 생활체육 통합

이러한 과거의 관행을 일소하고자 정권은 엘리트 체제 자체를 무너뜨리는 기획안들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생활체육과 엘리트 체육을 통합시켰으며, 스포츠계의 미래 계획안을 그리는 스포츠개혁위원회는 권고안을 통해 선수들도 일반 학생들과 동일하게 수업을 들으면서 지낼 것을 제안했다.

그런데 문제는 엘리트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것이 스포츠계에 만연한 폭력의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안인가 하는 것이다. 엘리트 시스템 자체가 폭력의 근원이요, 악이라고 보는 시각은 수단과 현상을 동일시한 사고방식이다.


◆ 일본의 유럽식 스포츠 클럽 제도의 허와 실

우리와 비슷한 스포츠 문화를 가지고 있었으나 크게 개혁한 사례로 일본 사례가 자주 거론되고 있다. 일본은 2000년 8월 '스포츠 기본 계획의 바람직한 방향: 풍요로운 스포츠 환경을 목적으로'라는 기본계획안을 발표하고, 대대적인 개혁정책을 실시했다. 그 결과 유럽식 스포츠 클럽 제도를 전국에 확산하고, 기존의 엘리트 선수 위주 시스템은 해체되기에 이르렀다.

아마도 우리나라의 개혁안도 그러한 방향성을 일관되게 따르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일본이 성공했고, 일본에 잘 맞았다고 해서 그 방안이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무리이다. 일본은 서양 세계에 대한 동경심이 많은 나라이고, 그들의 법과 체제, 사회 구조를 모방하고 자국에 적용하는데 익숙한 국가이다. 그러나 한국은 한국적 현실이 있고, 한국적 해결방안이 있다.

현세대의 선수들에게 지금 당장 클럽제를 도입할 터이니 엘리트 시스템을 종식하자고 말하는 것은 현세대의 선수들을 희생시키고 대한민국 스포츠의 수준을 단번에 강등시키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은 표현이다. 일본도 20년이 소요되었다.

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엘리트 시스템이 곧 폭력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비체육인들이 흔히 간과하는 문제가 하나 있는데, 클럽제가 활성화된 유럽에서도 소수의 정상급 선수들은 공부를 하지않고 운동에 전념하며 지내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한국의 엘리트 시스템과 비슷한 환경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공교육 틀을 우선하면서 엘리트 선수들을 그 속에 집어넣으려고 애쓰고 있는데, 결국은 뛰어난 선수들이 공적 지원과 도움 없이 사적 자원으로 운동하게 되는 부작용을 낳는 결과를 빚을 것이다.


◆ 현 시스템 내에서 폭력 문제 해결 제3의 방안 6가지 제안

따라서 현 시스템하에서 폭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3의 방안들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에 필자는 아래와 같은 방안들을 제안한다.

1) 엘리트 시스템과 생활체육 시스템은 공존할 수 있다. 엘리트 시스템을 희생해야 생활체육이 활성화되는 것은 아니다.

2) 폭력의 문제는 환경의 문제가 크다. 합숙 문화는 되도록 지양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부모의 거주지와 먼 곳에서 운동을 해야 하는 학생들도 있으므로 합숙은 선수와 부모들이 자율적으로 협의 하에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며, 차차 시간을 두고 없애야 한다.

3) 지도자들에 대한 폭행 예방 교육이 필요하다. 최근 직장인들에게는 성차별문제와 성폭력 문제에 대한 강의가 해마다 진행되고 있다. 스포츠 지도자들에게도 해마다 반복하여 관련 교육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바람직한 코칭법에 대한 연수 제도도 필요하다.

4) 폭력사건이 발생했을 때 일벌백계하는 제도가 시행되어야 한다. 힘이 있는 지도자가 폭행을 저지르면 협회가 나서서 감싸는 것이 그동안의 모양새인데, 이런 형태라고 하면 정부는 물론이요, 국민들의 지지도 받기 어렵다.

5) 이런 문제에 대해서 정부가 나서는 것은 그동안 체육계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체육계가 나서 자정 활동을 펼쳐야 한다. 해당 문제를 위한 조사팀도 필요하고, 발전적인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위원회나 연구 활동도 필요하다.

6) 무엇보다도 상하 위계질서에 의해 촘촘히 묶여있는 스포츠 관행들을 해체해야 한다. 스포츠는 실력으로 겨루는 대등한 장이다. 그곳에선 후배, 나이, 출신지가 선수들에게 압박을 줄 이유가 없다. 이를 위해 보다 대등한 입장에서 의사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는 새로운 문화 형성을 위해 스포츠계 전체가 노력해야 한다.

이상 6가지로 방안을 적어봤는데, 이런 해결책을 도입하기 위해 대한체육회를 비롯해 각계협회들이 공통의 의견을 수립하고 내부적인 자정 노력도 진행하면서 정부와 협상하며 새로운 미래상을 그려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추후 바람직한 미래상을 위한 지속적인 고민을 대한체육회가 나서서 진행해 주기를 기대한다.


윤강로 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장
-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 졸·외대동시통역대학원 수학
- 대한체육회 26년 근무(국제사무차장, KOC위원 겸 KOC위원장 특보)
- 2008년 올림픽 후보도시 선정 한국 최초 IOC평가위원
-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국제사무총장 및 평창2018조직위원회 위원장 특보
- 몽골국립스포츠아카데미 명예박사학위 및 중국인민대학교 객원교수 등
- 세계각국올림픽위원회 총 연합회(ANOC)스포츠외교 공로훈장 한국최초수상
- 부산 명예시민(제78호)
- 저서 7권(총성 없는 전쟁 및 스포츠 외교론 등) 발간

*본 칼럼은 개인의 의견으로 아주경제신문사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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