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언의 베트남 통(通)]베트남은 통화조작국이 아니다?...'인플레이션의 역설'

2021-01-08 07:00
  • 글자크기 설정

대미 무역흑자 확대는 산업구조 변화에 따른 부산물...'장기화' 가능성

베트남의 당면 목표는 인플레이션 조절...코안경제, 금융위기 등 혹독한 기억

베트남 동화의 저환율 기조 전망 속 코로나 이후 '초인플레이션' 우려도

인플레이션과 무역흑자는 대척점 관계...베트남 중앙은행의 딜레마

베트남·미국 국기[사진=베트남통신사(TTXVN)]


“흰소띠의 해가 왔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황금의 미래를 선물하세요("Năm Tân Sửu đã tới. Hãy tặng cho người thân yêu những món quà bằng vàng cho tương lai may mắn).”

베트남 최대 귀금속 회사인 DOJI사의 신년 광고문구다. 베트남은 명절, 결혼식 등 기념일에 금을 선물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비단 기념일이 아니더라도 시내 중심가에는 금은방 가게가 즐비하며 중고귀금속을 사고파는일 또한 많다. 금에 대한 사랑은 흔히 중국을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베트남 역시 이에 절대 뒤처지지 않는다. 지난 2012년 한 통계에 따르면 1인당 금 구매량으로는 베트남이 중국과 인도를 제치고 1위가 됐을 정도다. 요즘엔 코로나19 탓에 잠잠하지만, 베트남의 금 밀반출 사례는 언제나 베트남 세관의 가장 큰 골칫덩이 중 하나였다.
베트남에서 금이 이렇게 인기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문화적 특성들이 존재하지만 가장 먼저 짚어야 할 부분이 바로 인플레이션(inflation)이다. 세계 어디나 금이 안전자산이듯 베트남인들에게 금은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깊게 각인돼 있다. 약 10년 전 베트남은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겪었다. 2008년부터~2011년 사이 평균 인플레이션율은 15%를 상회한 초인플레이션에 가까웠다. 당시 베트남은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고 관련 정책 등을 세계표준화하고 환율정책을 재정비하던 시기였다, 개방에 맞춰 투자가 급속히 유입되고 경제성장률은 10%대가 넘었지만, 뒤따르는 높은 인플레이션은 이를 그대로 상쇄해버렸다. 심지어 2008년 은행의 금리는 20%까지 치솟았지만, 인플레이션이 18%까지 올라 큰 의미가 없었다. 국민들은 너도나도 동화보다는 금과 달러를 찾았고 달러와 금값은 폭등했다.

정부의 대대적인 제한정책으로 최근 시장이 많이 축소됐다지만, 그동안 잠잠하던 베트남 금값이 올해 28%나 뛰어올라 9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베트남 최대 귀금속 회사인 DOJI의 매출액이 여전히 베트남 민간기업 중 5위에 해당하는 점만 봐도 금에 대한 선호현상이 아직도 그대로 나타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美, 베트남 환율조작국 지정에 무역불균형 해소여부 불투명
대미 주요수입품폭 다변화 과정...산업고도화에 대체재도 늘어나

[아주경제 그래픽]

최근 미국이 스위스와 함께 베트남을 사상 처음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면서 베트남의 환율정책과 거시경제 전반에 대한 관심이 재차 모아지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12월 주요 교역국 거시경제 및 환율정책 보고서'를 통해 베트남을 새로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환율조작국은 1년 동안 200억 달러를 초과하는 대미 무역흑자 혹은 국내총생산(GDP)의 2%를 초과하는 경상수지 흑자를 거두고, 같은 기간 동안 외환시장에 GDP의 2% 이상 개입할 경우에 해당한다. 베트남은 지난해 6월 기준 직전 1년간 580억 달러의 대미 무역흑자를 기록했으며, 외환시장 개입률도 5%를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미국은 환율조작국 지정 이후 1년 동안 수치가 개선되지 않으면 베트남에 투자제한 등 추가 보복 조치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베트남 정부는 즉각 반박에 나섰다. 베트남 중앙은행(SBV)은 환율조작국 발표 이후 성명에서 "최근 수년간의 환율 관리는 거시경제를 안정화하고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지, 국제 무역에서 불공정한 우위를 점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또 "미국 무역흑자와 경상수지 흑자는 베트남 경제의 특성과 관련한 다양한 요인에 따른 것"이라며 "환율을 유연하게 관리하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경제성장을 지원하면서 거시경제를 안정시키는 동시에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금융 정책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베트남 정부는 무역흑자와 인플레이션 중에서 어디에 더 방점을 찍을까. 물론 답이 한 방향으로 정해지는 문제는 아니다. 대외무역수지와 인플레이션은 대척점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저환율은 무역흑자폭을 늘리는 데 기여하고 경제성장의 밑받침이 된다. 반면 저환율 정책이 지속되면 수입물가가 상승하고 소비자물가가 덩달아 오르면서 인플레이션이 유발된다. 각국 정부는 인플레이션을 적절히 유지하면서도 무역흑자를 통해 경제달성에 기여하고자 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향이다.

지난해 베트남 경제는 코로나19 여파에도 호성적을 거뒀다. 평균 잠정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92%로 전 세계 국가들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가운데 최고수준이다. 무역수지도 약 191억 달러에 달해 5년 만에 최대치를 달성했다. 평균 인플레이션은 3.9%를 나타냈고 소비자물가지수(CPI)는 3.23%다.

주목할 건 베트남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된 가운데 대내외 여건상 당분간은 저환율 기조를 벗어나기 힘들다는 전망 때문이다. 베트남이 달러 대비 동화의 평가절상 정책을 내세운다고 해도 변수는 오히려 저평가가 지속될 요인이 훨씬 많다는 지적이다.

우선 환율조작국이 되면 단기적으로는 오히려 일부 투자금이 환위험 헤지(회피)를 통해서 달러가 빠져나가는 현상이 나온다. 이를 통해 상대국 통화는 오히려 환율이 평가절하된다는 것이다. 또 올해 베트남은 코로나19 각종 지원을 위해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해왔다. 각종 국채·지방채, 지원금을 통해 시중에 풀린 돈은 베트남 정부 1년 재정의 절반에 해당한다. 아울러 시중은행의 불량부채도 지난해보다 2~3% 이상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국민 1인당 가계부채비율은 전년대비 12%나 늘었다. 모두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베트남 동화의 가치를 떨어트리는 주요요소인 셈이다.

여기에 정작 미국과의 무역수지에서도 무역 불균형을 해소할 뾰족한 방법이 없다. 베트남이 올해 최대치를 달성했다고는 하지만 면면을 들여다보면 수출이 크게 늘었던 것이 아니라 수입이 줄었다. 특히 미국과의 수입이 대폭 감소했는데, 이는 그간 미국에서 필요한 수입품목이 대체재가 생기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전통적으로 베트남의 미국수입품목은 기계류, 전자제품과 섬유산업의 원자재인 면화 등이다. 하지만 각종 무역협정으로 기계류·전자제품은 한국, 중국 등으로 수입국가가 다변화되고 면화는 세계최대 면화수출국인 호주에서 수입되는 경향이 가팔라지고 있다. 여기에 베트남 정부가 자체 산업가치사슬 확보에 주력하면서 수출을 위한 원·부자재가 해외보다는 점차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경우가 높아지고 있다. 이미 미국과도 교역 품목이 고착화되고 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품목이나 산업변화가 없는 이상 이 같은 무역역조 현상은 상당 기간 유지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베트남, 개방 초기 인플레이션 위력 절감...정부 핵심목표는 '물가안정'
올해 인플레이션 4%유지 목표...'초인플레이션' 발생 우려도 제기

[아주경제 그래픽]

베트남 정부는 매번 인플레이션 목표치에 대해 강조한다. 총리는 직접 인플레이션에 대해 매주 정부상임위원회를 통해 주간 인플레이션을 발표하고 SBV를 포함해 각 부처는 경제분야 발표에서 인플레이션을 재차 점검한다. 베트남은 역사적으로 인플레이션에 대한 혹독한 경험을 갖고 있다. 2008~11년 인플레이션이 두 자릿수에 달했던 시기를 제외하더도 건국 초기부터 초인플레이션에 대한 강렬한 기억을 갖고 있다.

1970년 당시 도이머이 개혁개방 전 ‘코안(khoan)경제’라는 것이 있었다. 대외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베트남이 1986년 도이머이 노선을 채택하기 전 베트남 정부가 가장 먼저 학습했던 시장경제 제도다. 베트남어에서 코안은 '일을 주고 그 결과에 따라 임금을 지불하다’라는 의미다. 코안 제도를 처음 시행한 건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이퐁과 빙푸 지역에서 처음 시행됐다. 당시의 코안 제도는 생산과정의 일부를 농민에게 자율적으로 관리하게 해 농민이 잉여생산물을 소유하도록 하는 획기적인 실험이었다. 하지만 운영 미숙과 수백 퍼센트에 이르는 물가상승으로 코안경제는 지속되지 못하고 결국 1986년 폐기된다.

시장경제 개념이 미성숙했던 시기 베트남 정부는 단순히 생산량 증대라는 목표에만 골몰하면서 목표는 달성했지만. 가격변동·인플레이션·소유제 전환 등 연계되는 파급효과는 미처 내다보지 못했다.

이후 베트남 정부는 경제성장을 추진하더라도 안정기조의 정책으로 노선을 수정했다. 무역량 증가에 따른 경제발전보다 인플레이션을 잡지 못하면 심각한 국가적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학습효과였다. 이에 따라 베트남은 인플레이션에 직·간접적으로 미치는 품목을 지정해 정부가 관리해왔다. 또 물가안정이라는 본연의 임무 외에도 다양한 권한을 베트남 중앙은행에 주고 힘을 실어주는 계기가 됐다.

베트남 정부는 올해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4%대 이하로 잡았다고 밝혔다. 지난 11월에 임명된 응우옌티홍 SBV 신임총재는 신년사를 통해 올해 물가지수 3% 후반대로 유지하고 신용성장률을 13~14%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또 시중은행의 구조조정을 가속화하며 종합금융전략에 따라 인플레이션 압력이 판단될 경우 기준금리를 인상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사실 이번 베트남 환율조작국 지정을 두고 다분히 신흥국 길들이기로 보는 시각도 많다. 약 15년 전 미·중 무역분쟁이 가시화되기 전 미국이 가한 중국 환율 압력을 그대로 닮았다는 것이다. 당시 사례에도 환율전쟁이라고 표현될 만큼 미국은 위안화 절상을 강력하게 요구하며 통상압력을 가했다. 하지만 환율대비 수출입의 영향은 크게 없었고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는 오히려 더 늘어만 갔다. 무역역조 현상의 장기화 가능성을 볼 때 베트남이 유화 제스처로 미국항공기 등 대형구매계약을 올 하반기 정도에 다시 체결할 수 있다고 점쳐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베트남이 완전한 자본주의적 성격이 아니기 때문에 저환율이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력이 다른 국가와는 다르다는 의견도 있다. 일반적으로 저환율은 인플레이션을 야기하지만 베트남의 경우 국영기업들의 통제 속에서 소비자물가의 절반 이상 품목에 해당하는 식료품목들이 관리·통제가 가능해서다.

한 금융전문가는 베트남의 정작 중요한 문제는 환율조작국 지정문제가 아니라 가격 인플레이션이라고 지적했다. 막대한 유동성이 공급되면서 부동산과 주식은 계속해서 오르지만 소비재, 급여 등은 제한돼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해 코로나 여파에도 베트남 부동산은 전반적으로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베트남 증시는 저점을 회복하고 1000선을 돌파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당장은 아니지만 리플레이션(reflation)을 거쳐 베트남이 수년 안에 초인플레이션을 다시 경험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지난 10년간 베트남은 경제는 성장하지만 인플레이션은 낮은 이른바 골디록스(goldilocks)에 익숙해왔다”며 “국민들이 작은 충격에도 민감해질 수 있다. 가격이 조금만 상승해도 기대인플레이션이 상승해 버블심리가 급속히 확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이후 실업률이 낮아지고 억눌린 소비가 터지면서 인플레이션율이 급격히 상승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