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원전수사에 파르르..선 넘는 집권여당

2020-12-08 17:21
  • 글자크기 설정

[임병식 위원]


월성원전 1호기와 관련 집권여당 대응이 거칠다. 감사원과 검찰, 사법부를 노골적으로 겁박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더욱이 공격 주체가 야당이 아닌 집권여당이라는 점에서 지켜보기 민망하다.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은 법원을 향해 “도를 넘었다”고 비난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 2명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직후다. 그는 “사법권 남용”, “인내의 한계를 느낀다”고 했다.

같은 당 윤건영 의원도 지난달 강하게 언급했다. 그는 검찰에는 “심각하게 선을 넘었다”고, 또 최재형 감사원장을 향해선 “민주주의 기본을 모른다”고 폄하했다. 그러면서 “분명히 경고한다. 선을 넘지 말라”고 윽박질렀다. 둘 다 사법체계 근간을 흔드는 위험한 발언이다. 추미애 장관은 곧바로 윤석열 검찰총장을 직무 배제 조치함으로써 엄포를 현실로 바꿔 놓았다.
감사원, 검찰, 법원은 공직사회 사정과 사법정의를 담당하는 독립된 기관이다. 집권여당은 독립성과 중립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할 책무가 있다. 그런데 거꾸로 앞장서 성토하니 어지럽다. 정권에 불편하다는 이유로 중립성과 독립성을 해친다면 자기모순이다. 이 때문에 국민들은 집권여당의 과잉 반응을 불편하게 생각한다. 사실을 왜곡하고 논점을 흐린다는 판단이다.

이들 기관은 탈원전 정책을 반대하지 않는다. 자료를 불법 삭제한 공직자의 일탈 행위에 초점을 맞출 뿐이다. 감사는 국회 의뢰를 받아 착수했다. 또 검찰 수사는 감사 자료가 촉발됐다. 영장 발부 또한 영장청구에 답한 결과다. 저마다 독립된 기관으로서 책무를 수행했다. 특정한 의도에서 시작된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기를 쓰고 비난하니 저의를 의심받고 있다.

상식선에서 생각하면 실체가 가늠된다. 해당 공무원은 휴일 야밤에 자료를 폐기했다. 일상적이라고 보기 어려운 비정상적 행동이다. 그는 검찰 수사에서 “신내림을 받은 것 같다”고 진술했다. 이게 납득이 가는가. 그런데도 우 의원은 “맡은 바 업무에 충실했던 담당 공무원들이 정치적 희생양이 됐다”고 두둔했다. 도둑고양이에 대한 헌사치곤 낯 뜨거운 인식 수준이다.

감사와 수사, 구속영장을 탈원전 정책 반대와 연결하는 것은 전형적인 논점 흐리기다. 언론학에서는 ‘미디어 틀짓기(media framing)’와 ‘점화 효과(priming effect)’로 설명한다. 논점을 이동시키고 연상하도록 하는 것이다. 민주당 의원들의 과민한 반응은 이런 연장선상에서밖에 이해되지 않는다. 석연치 않은 의사결정 과정을 은폐하려는 의도임을 자인하는 셈이다.

정경심 교수 표창장 위조 논란 때도 그랬다. 배후로 자유한국당과 검찰 권력을 지목했다. 또 검찰 수사 행태를 타깃으로 삼았다. 위조 여부는 자연스럽게 증발됐다. <이기적 진실>은 여론이 극단에 끌리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믿고 싶은 사실만 편집해 그것이 사실이라고 착각한 채 믿음을 강화한다.” 진영 내에서 끼리끼리만 소통하면서 허위를 사실로 믿는다는 것이다.

선진국도 예외는 아니다.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에 소개된 사례다. 2016년 11월, 영국 대법원은 테리사 메이 총리에게 이렇게 판결했다. “EU 탈퇴 절차를 밟기 전에 의회 의견을 청취하라.” 그러자 정권에 편승한 '데일리메일'은 “브렉시트 투표자 1740만명 뜻을 저버린 이 판사들은 헌정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공격했다. 판결 내용은 브렉시트를 막자는 게 아니라 법에 따라 국회 동의를 받으라는 것이다. 하지만 팩트를 비틀어 판사들을 공격하는 쪽으로 관점을 돌렸다.

감사원 감사, 검찰 수사, 법원 구속영장 발부를 냉정하게 직시할 필요가 있다. 탈원전 정책 반대가 아니며, 정권을 궁지에 몰아넣기 위한 의도 또한 아니다. 물론 감사와 수사가 불편한 건 사실이다. 권력과 겁박으로 당장은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진실은 언젠가는 거대한 파도로 덮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때는 걷잡을 수 없다. 민주당 정부답게 대응해야 한다.

시대흐름에 비춰 탈원전 정책은 수긍이 간다. 그렇지만 지향하는 목표가 옳더라도 절차적 당위성을 상실하면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대통령은 수치를 조작하고 자료를 폐기하라고 하지 않았다. 일부 공직자들의 과잉 충성과 섣부른 일처리가 화를 불렀다. 이 때문에 탈원전 정책 기조마저 위협받는 상황에 처했다. 명확한 사실 규명만이 사태를 수습하는 지름길이다.

마이클 셔드슨은 <뉴스의 사회학>에서 뉴스(이슈)를 사회적 산물로 규정하고 있다. 구성원 또는 집단의 영향력이 어우러져 뉴스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는 ‘권력의 힘’을 주목했다. 월성원전을 조기 폐쇄하고, 또 계속되는 집권여당의 거친 공세가 권력에 의한 겁박이 아니길 바란다. 이젠 낯 뜨거운 두둔을 멈추고, 상식으로 돌아가자.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