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한국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1위는 무엇일까? 바로 'K팝'이다. 3위는 '드라마'가 차지할 정도로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한국을 대표하는 주요 산업군이자 미래 성장을 위한 핵심 동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 세계에 한류 문화를 이끈 주요 엔터테인먼트의 설립부터 현재, 향후 전망 등을 살펴보며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내일을 전망해본다. <편집자 주>
'K팝'은 더 이상 마이너한 문화가 아니다. 이제 글로벌 팬들과 만나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국가·인종과 관계없이 우리는 그룹 방탄소년단,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 '사랑의 불시착', 영화 '기생충'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열광한다. 그렇다면 '한류'의 시발점은 어디였을까? 국내 아이돌 산업 붐은 어디에서 일어난 걸까? H.O.T.를 시작으로 신화, 보아, 샤이니, 엑소, NCT 등 우리에게 '한류'라는 새로운 문화 개척지를 알린 K팝 명가, SM엔터테인먼트를 톺아보았다.
SM엔터테인먼트는 가수, MC, 라디오 DJ로 활동했던 이수만이 1989년 창립한 연예 기획사다. 사명은 이수만의 이니셜 약자와 '스타 뮤지엄(Star Museum)'의 약자로 알려져 있다.
연예계서 활약했던 이수만은 컴퓨터 공학을 배우기 위해 1981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당시 그의 나이 29살. 미국 팝 문화와 MTV에 큰 감명을 받은 그는 연예 기획자를 꿈꾸게 된다.
4년간의 유학을 마치고 1985년 귀국해 본격적으로 연예 기획사를 설립하기 위해 프로듀서로 전향한다. 미국 팝 문화에 심취했던 그는 한국에 흑인음악을 도입하고자 했고, 1990년 현진영과 와와를 데뷔시킨다. 1집 '뉴 댄스(New Dance)의 수록곡인 '슬픈 마네킹' '야한 여자'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힙합 랩 장르로 세간의 화제가 됐다.
이후 이수만은 1992년 미국 팝가수 뉴키즈 온 더 블록을 참고해 문희준, 장우혁, 강타, 토니안, 이재원을 모아 5인조 그룹으로 데뷔시킨다. H.O.T.는 국내 가요계는 물론 팬덤 문화까지 뒤바꾸었고 이후 다양한 아이돌 그룹 탄생의 길을 열게 된다.
이수만은 국내를 넘어 해외 시장 개척에도 큰 관심이 있었다. 1998년 H.O.T.의 앨범이 중화권에서 첫 발매 되었고 2000년에는 H.O.T.가 베이징에서 한국 가수 최초로 단독콘서트를 개최했다. 중국진출의 초석인 셈이다.
특히 가수 보아는 기획 단계부터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었다. 사랑스러운 외모는 물론 뛰어난 가창력과 춤 실력을 갖춘 보아의 등장에 국내는 물론 일본 연예계도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2003년 일본에서 발매한 2집 앨범 '발렌티(Valenti)'는 100만장 이상을 판매했고 2주 연속 오리콘 차트 1위에 등극했다.
동방신기도 본격적인 아시아 시장 진출을 목적으로 기획하면서 데뷔 직후부터 한국과 일본 활동을 병행했다.
SM엔터 출신 가수들은 일본을 비롯해 아시아권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린다. SM엔터는 'SMTOWN 월드 투어'라는 이름을 내걸고 아시아 중심 투어까지 진행했을 정도다.
◆ 아이돌 시장의 변화…SM엔터, '최초'의 기록들
언제나 SM엔터는 새로운 시스템을 골몰해왔다. 때로는 무모하게도 느껴졌지만 결국에는 국내 가요계 시스템으로 정착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5인조 아이돌 그룹 H.O.T.의 탄생부터 일본 활동을 염두에 둔 보아, 중국인 멤버를 포함해 데뷔한 슈퍼주니어와 에프엑스, 한국 유닛과 중국 유닛으로 나뉘어 데뷔한 엑소 등이 그렇다.
눈에 띄는 시스템 중 하나는 '현지화' 전략이었다. 그가 밝힌 '현지화' 전략이란 한국의 기획으로 중국인 멤버로 된 그룹을 만들고 현지에서 활동한다는 계획. 엑소의 중국 유닛인 엑소-M은 다수가 중국인으로 구성됐다.
음악 제작도 현지화 작업을 거쳤다. 일본, 미국 진출 당시 현지 최고의 작곡가와 협업했고 현지어로 노래 부르는 걸 원칙으로 했다.
아티스트에게 '세계관'을 주입한 것도 SM엔터가 최초였다.
SM엔터는 엑소를 통해 아이돌에게 세계관을 심고 이를 확장해 앨범 콘셉트를 만들어갔다. 이성수 대표는 "세계관은 문화기술의 정점에 있다. 산업이 말이 되게 하는 것이고 팬들에게 공감을 주게 하는 장치이며 IP(지적 재산권)다"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아이돌 그룹의 세계관은 이제 'K-팝'에서 빠트릴 수 없는 중요 요소이며 성장과 스펙트럼 확장의 원동력이다.
SM엔터는 여기에서 한 걸음 나아가 'SMCU'라는 세계관 확장을 꿈꾸고 있다. 소속 아티스트들의 모든 콘셉트가 하나로 이어지는 합동 세계관으로 기존 연예 기획사가 선보인 유닛과는 또 다른 개념이다.
'SMCU'의 시작점으로 보이는 새로운 유닛은 슈퍼엠이다. 기존 SM엔터 소속 가수인 샤이니의 태민, EXO의 백현과 카이, NCT 127의 태용, 마크, WayV의 텐, 루카스 등으로 구성된 연합 유닛이다.
지난 9월 정규 1집 '슈퍼 원'을 발매했고 첫 주 미국 '빌보드 200' 차트에 2위로 진입, 18~24일자 차트에서는 57위를 차지하며 3주 연속 차트인을 기록했다.
◆ 3D 영화부터 클래식까지…'SMCU'를 위한 사업 확장
앞서 언급한 'SMCU'는 IP와 아티스트와 함께 산업화하는 다양한 과정을 의미한다. SM엔터는 가수를 넘어 영화나 버라이어티, 뮤지컬 등 다른 영역으로 진출하며 다양한 크로스오버를 실현하고자 한다. 현재 홀로그램 AR, 게임, 마블과 협력한 콘텐츠도 나오고 있으며 클래식과도 크로스오버한다.
일찌감치 '컬처'와 '테크놀로지'에 관심을 둬온 이수만은 지난 2010년 3D영화 '아바타'의 제임스 캐머런 감독, 삼성전자와 함께 소속 가수들을 출연시킨 3D 콘텐츠를 선보이며 또 다른 가능성을 펼쳤다.
뿐만 아니라 클래식 장르까지 확장된 다양한 융합 콘텐츠를 준비 중인 클래식 레이블 'SM 클래식스'(SM Classics)를 통해 새로운 영역을 확장 중이다. SM 클래식 레이블은 클래식 아티스트들의 활동을 돕는 에이전시 개념으로 음반 기획·발매, 공연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성수 대표는 "K팝과 클래식의 단순한 결합을 넘어서 또 다른 음악을 만들고, 완전히 새로운 문화 산업을 창조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 AI와 비대면…SM엔터가 보는 미래
이수만은 지난 2017년 "미래에는 AI와 가상현실(VR) 기술을 기반으로 한 '초거대 버추얼 제국'이 나타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AI 연예인과 함께 생활하면서 문화 콘텐츠를 즐기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얘기다.
그리고 지난 11월 28일 AI 아이돌 에스파가 데뷔했다. 에스파는 이수만이 강조해왔던 오리지널 연예인과 아바타 연예인으로 구성된 새로운 형태의 아이돌 그룹이다. 해당 그룹은 데뷔 전부터 화제를 모았고 뮤직비디오는 공개 하루 만에 2100만 뷰를 기록했다.
코로나19로 혼란했던 가요계지만 SM엔터는 일찌감치 비대면을 강조해왔던 만큼 누구보다 빠르게 비대면 콘서트인 비욘드 라이브를 선보였다.
이성수 대표는 "올해 말에는 새로운 콘서트와 기존 콘서트를 합치는 방식도 준비하고 있다. 여러 주체와 새로운 문화기술 개발과 시도도 많이 했다"며 뉴노멀을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 가수 관리 미흡·라이크 기획 논란…SM엔터 비판도
현지화 전략과 최첨단 기술 등으로 'K-팝' 명가라는 수식어를 얻었지만 소속 연예인 관리 미흡, 불공정거래 의혹 등으로 논란과 질타를 받기도 했다.
SM엔터 연예인 팬덤은 소속사가 아티스트 관리에 미흡하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대부분의 소속 연예인들이 10대 시절부터 가수 활동을 해오는 데다가 국내외 행사 등을 빠듯하게 소화하고 있어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건강 관리가 원활하지 않다는 우려다.
또 상장된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주주들을 위한 경영이 없다는 점도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해 SM엔터는 3대 주주인 KB자산운용의 주주서한에 성의 없는 답변으로 주주들의 원성을 샀다.
당시 KB운용은 "이수만 회장 개인회사인 라이크기획이 에스엠 영업이익의 46%를 매년 자문료 형태로 빼가 회사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라고 주장하며 SM엔터와 라이크기획의 합병을 요구했다. SM엔터 사외이사를 추천에 경영에 참여하겠다는 내용도 주주서한에 포함됐다.
라이크기획은 이수만이 지분 100%를 들고 있는 회사로 SM엔터의 음반작업과 자문을 담당한다. SM엔터테인먼트는 2000년에 상장한 뒤 19년 동안 라이크기획에 965억 원을 지불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제기해왔다.
하지만 SM엔터는 라이크기획과 합병하라는 요구를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선 그었다. "라이크기획이 법인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법률적으로 성립할 수 없고 강요할 권리도 없다"는 것. 배당 정책에 관해서는 "그동안 성장과 투자에 더 역점을 뒀기 때문에 배당정책을 시행하지 않았고 투자 필요성은 지금도 마찬가지"라며 "주주들의 요구가 늘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미래 성장을 위한 재투자와 회사 이익의 주주환원을 조화할 방안, 예컨대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 등을 검토하겠다"라고 답변했다.
이로 인해 SM엔터는 많은 질타를 받았다. "경쟁사보다 많은 현금을 보유하고 사옥 투자도 마무리되었음에도 배당정책에 구체적 답변을 하지 않은 것이 납득하기 어렵다"라는 반응이었다. 한바탕 논란이 있었지만 SM엔터와 라이크기획 간 협업은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배당 역시 실시하지 않아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