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중국판 블랙프라이데이'로 불리는 11·11 광군제(光棍節) 온라인 쇼핑 축제 하이라이트는 ‘집’이었다. 중국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새 집 물량을 왕창 쏟아내자 중국인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온라인으로 집을 구매하는 진풍경이 나타난 것이다. 코로나19가 바꾼 중국 부동산 시장의 새로운 트렌드다. 부동산 업계에도 디지털화 바람이 불면서 중국 온라인 부동산중개 시장도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중국 '인터넷공룡'들이 너도나도 뛰어들고 있는 이유다.
◆ "주택 '파값'처럼 싸진다더니···" 알리바바도 뛰어든 온라인 부동산중개업
"앞으로 가장 싼 게 집값이 될 것이다. 8년 후 집값은 파값처럼 싸질 것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3년이 흘렀다. 중국 집값은 내리기는커녕 오르고 있다. 알리바바도 결국엔 부동산 시장에까지 손을 뻗칠 수밖에 없었다.
알리바바그룹 산하 B2C 온라인쇼핑몰 톈마오(天猫, 티몰)는 지난 9월 톈마오하오팡(天猫好房)이라는 온라인부동산 중개 플랫폼을 대대적으로 출범시켰다. 중국 온라인부동산 중개업체 이쥐(易居, 이하우스)와 손잡고 50억 위안(약 8500억원)을 투자해 만든 것이다. 알리바바와 이쥐의 지분은 각각 85%, 15%씩이다. 당시 톈마오하오팡 출범식에는 중국 톱50 순위에 드는 부동산 재벌 중 헝다그룹만 빼고 몽땅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알리바바는 “3년내 이윤 한 푼 남기지 않고 모든 수입은 주택 구매 보조금으로 지원하겠다”고 선언도 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광군제 때 부동산에 대한 관심은 뜨거웠다. 100여개 부동산 업체들은 전국 3000여개 아파트 단지의 80만개 매물을 내놓았다. 구매 할인 보조금 지원액만 100억 위안에 달했다. 톈마오하오팡에 따르면 온라인으로 집을 둘러 본 고객만 5000만명 이상에 달했다. 특히 중난즈디의 경우, 광군제 때 온라인 계약건수만 1만1586건, 거래액이 117억 위안에 달했다. 중국 현지 언론들은 “오프라인 판매로는 상상할 수 없는 전환율”이라고 평가했다.
톈마오하오팡 측은 내년엔 전체 주택 거래액을 2조 위안까지 높일 것이라고도 장담했다. 그러면서 중국 전통 부동산 시장 성수기인 ‘금구은십(金九銀十)’, 즉 '금 같은 9월, 은 같은 10월'에 이어 새로운 성수기인 다이아몬드 같은 11월 11일, 이른바 '찬석쌍십일(鉆石雙十一)'을 만들어낼 것이라고도 했다.
◆ 온라인 부동산 중개시장서 맞붙는 알리바바 vs 텐센트
사실 알리바바가 부동산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건 맞수인 텐센트를 의식한 행보이기도 하다.
텐센트도 이미 2018년부터 중국 신생 온라인부동산 플랫폼인 베이커(貝殼)에 꾸준히 투자했다. 현재 베이커 지분 약 12%를 가지고 있는 텐센트는 베이커 측에 광고와 클라우드 서비스 등도 지원하고 있다.
베이커는 20년 역사의 중국 대표 부동산중개업체 롄자(鏈家)에서 만든 온라인 부동산 중개플랫폼이다. 설립된 지 약 2년 밖에 안됐지만 인공지능·빅데이터를 활용한 부동산 중개 서비스로 무섭게 성장했다. 텐센트는 물론 소프트뱅크, 힐하우스 등도 베이커의 든든한 투자자다.
올 상반기 기준 전국 100여개 도시 4만2000개 부동산 중개업소의 45만6000명 부동산 중개인과 손잡고 확보한 주택 물량만 2억2600만채에 달한다. 3900만명의 월 활성화 이용자수를 자랑하고 있다. 게다가 인테리어, 리모델링, 금융기관들과도 파트너십을 맺어 이들을 주택 구매자와 연결시켜 줌으로써 중국 온라인 부동산 생태계 조성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 5월엔 온라인 전용 부동산 계약 서비스도 출시했다. 실명제 인증, 안면 인식, 전자서명, OCR(광학적문자판독장치)자동식별 등 기술로 부동산 거래에 필요한 대출심사 등 문서 자료를 온라인으로 수집해 주고받고, 화상회의로 계약까지 체결될 수 있도록 한 것. 이를 통해 주택 매매 계약의 시간·공간적 제약을 없앴다.
이번 광군제 행사 기간에도 11월 5~11일 일주일간 베이커 플랫폼을 통해 모두 2만4699채 신규주택 분양 청약이 이뤄졌다. 거래액수만 367억9000만 위안으로 집계됐다. 헝다, 완커, 비자위안 등 중국 전역의 수백개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전국 7000여개 아파트 단지의 100만채가 넘는 새집 물량을 쏟아낸 덕분이다. 베이커는 "전국 주요 신규 분양 아파트단지 90% 이상을 우리 플랫폼에서 만나볼 수 있다"고 장담했다.
베이커의 지난해 매출은 460억 위안이다. 2017년과 비교하면 80% 급증했다. 매출액 기준으로는 중국 최대 온라인 부동산 중개 플랫폼이다. 지난 8월 뉴욕증시 상장 이후 주가는 공모가 대비 3배 이상 올랐다.
연간 거래액은 2조1300억 위안으로, 거래액으로만 따지면 알리바바에 이은 2위 중국 2대 온라인 거래 플랫폼이다.
알리바바가 텐센트와 베이커를 견제해 이쥐와 손을 잡은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알리바바는 베이커가 뉴욕증시에서 상장하기 바로 며칠 전 이쥐에 대한 추가 투자를 단행했다. 이로써 지분율을 기존의 약 5%에서 13%까지 늘려 이쥐의 2대 주주로 올라섰다.
◆'5000조 뭉칫돈' 中 부동산 시장에 부는 디지털 바람
중국 인터넷공룡들이 이처럼 공격적으로 온라인 부동산 중개시장에 뛰어드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중국 헝다그룹 산하 헝다연구소 런쩌핑(任澤平) 수석연구원은 "중국에선 매년 6조 위안어치 주택이 거래되고, 신규 분양되는 주택도 12조 위안어치에 달한다"며 "여기에 주택 임대, 인테리어, 리모델링, 금융서비스까지 합치면 부동산 중개서비스는 매년 30조 위안 거래가 이뤄지는 거대한 시장"이라며 "이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기업 알리바바의 3년치 거래액과 맞먹는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알리바바가 당연히 뛰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매기 후 홍콩 중문대 교수도 블룸버그를 통해 "중국 부동산 시장 성장세가 완만해지더라도 온라인 부동산 중개 서비스 시장 성장세는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사실 부동산은 원래 디지털화 영향을 덜 받는 업종으로 손꼽힌다. 그동안 중국 부동산 시장이 호황이었을 때만 해도 업체들은 온라인으로 집을 파는 걸 꺼렸다.
하지만 올 초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봉쇄령 속 경제활동이 중단된 데다가 당국의 부동산 규제 고삐로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자 경영난에 빠진 중국 부동산업체들이 너도나도 온라인 채널을 뚫어 집을 팔기 시작했다.
그만큼 현재 중국 부동산 업계는 암울하다. 중국부동산정보그룹(CRIC)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로 3분기까지 올해 매출 목표치의 65%도 채우지 못한 부동산 업체가 전체의 30%에 달한다. 이는 최근 3년래 최고 수준이다. 9월 말까지 매출 목표치의 75% 이상을 채운 기업은 달랑 8곳에 불과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베이커도 앞서 보고서에서 중국 부동산 업계 수익성이 차츰 낮아지고 있다고 했다. 최근 100여개 중국 본토증시에 상장된 부동산 기업들의 3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100대 부동산 기업 21곳의 수익성이 낮아졌다. 21곳의 3분기 평균 마진율은 28%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3.5%포인트 낮아졌다.
중국 경기둔화 속 당국이 부동산 규제 고삐를 조이면서 집을 사려는 사람이 차츰 줄어들면서다. 중국지수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1~9월 20개 주요 도시 주택 분양시장에서 주택공급 대비 매매 비율이 0.87배로, 매매보다 공급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