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금융당국이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리는 금융취약계층을 정책금융으로 얼마나 흡수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법정 최고금리 인하 시 연간 4830억원 금리부담 경감
금융권은 법정 최고금리 인하방안에 따라 캐피탈, 저축은행, 대부업체 등 2금융권을 이용하는 서민들의 금리 부담이 크게 낮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저축은행을 이용 중인 서민들도 금리 인하 혜택을 볼 수 있을 전망이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2018년 ‘저축은행 표준 여신거래기본 약관’을 개정해 소급적용 관련 내용을 신설했기 때문이다.
저축은행 표준 여신거래기본약관 제20조의2는 “저축은행은 채무자와 약정한 금리가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 또는 ‘동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법정 최고금리를 초과하게 되는 경우 개정 법령 시행일로부터 1개월 이내에 약정금리를 법정 최고금리까지 인하해야 하며, 변경된 금리는 인하일부터 적용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같은 규정에 따라 저축은행에서 신규대출을 받은 고객은 현재 24%인 법정금리가 낮아지면 대출금리가 최고금리(연 20%) 이내로 자동인하된다. 가령 저축은행에서 이달 31일 연 24% 금리로 대출약정을 새로 체결했고, 내년 7월부터 최고금리가 연 20%로 내려가면, 이 차주의 대출금리도 4%포인트 자동 인하되는 식이다.
카드사, 캐피탈사의 경우 관련 규정이 없지만, 최고금리가 낮아지면 금융당국이 소급적용을 압박하는 탓에 저축은행을 따라 소급적용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카드사, 캐피탈사, 저축은행들은 법정 최고금리가 연 27.9%에서 연 24%로 낮아졌던 지난 2018년 2월에도 금융당국의 압박에 기존 대출자에게도 법정 최고금리 인하 혜택을 소급적용해 준 바 있다.
◇금융취약계층 대출 절벽 해소 관건
법정 최고금리 인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금융취약계층의 대출 절벽 해소가 관건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법정 최고금리가 인하되면 금융사들이 리스크 관리를 위해 저신용자에 대한 대출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 역시 최고금리가 인하될 경우 기존 연 금리 20%~24%대 차주 중 13%인 31만6000명은 대출만기가 도래하는 향후 3~4년에 걸쳐 민간금융 이용이 축소될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이중 약 3만9000명은 제도권 금융 이용이 불가능해져 불법사금융으로 퇴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위는 햇살론과 대환대출 지원 등 정책금융을 확대해 불법사금융 유입을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먼저, 햇살론 등 서민금융상품 공급 규모를 기존보다 연간 2700억원 이상으로 늘린다. 서민금융상품 공급 시기는 법정 최고금리가 연 20% 낮아지는 내년 하반기 이후다.
불법사금융 근절을 위한 일제단속과 불법광고 차단 노력도 강화한다. 금융위는 '범부처 불법사금융 대응TF'를 활용해 불법사금융 처벌 강화와 불법이득 제한 등 법적 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다. 또 올해부터 시행한 채무자대리인·소송변호사 무료지원 등 금융·법률·복지 맞춤형 연계지원도 홍보를 확대한다.
민간 지원 방안도 마련한다. 금융위는 저신용 서민 대상 신용대출 공급 모범업체에 인센티브 제공 등 검토할 계획이다.
이명순 금융위 금융소비자 국장은 "내년 하반기 법정 최고금리 인하 시기에 맞춰 햇살론, 은행권 새희망홀씨와 같은 정책상품 지원방안을 발표할 것"이라며 "서민금융 대환상품을 출시해 정책상품 공급을 늘리고 규모를 키워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장기적으론 시장금리 연동 방식 도입 지적도
금융당국이 서민의 금리부담을 줄이기 위해 법정 최고금리 인하를 추진하기로 했지만, 장기적으로는 서민들이 민간금융시장에서 원활하게 금융조달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법정 최고금리를 인하할 경우 단기간 서민들의 금리부담을 낮출 수 있지만, 금융사들이 리스크 부담으로 금융취약계층에 대한 대출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대안으로는 프랑스와 독일 등에서 도입한 대출별 금리 상한 차등규제 등이 제시됐다.
프랑스는 금리상한을 시장 평균금리의 1.33배로 설정해 놓았지만 모기지대출, 소비자신용대출, 기관대출 등 범주에 따라 금리를 다르게 적용하고 있다. 모기지대출의 평균 시장금리가 연 4.72%라면 금리상한은 이의 1.33배인 6.28%가 된다. 일정금액 이하의 소액신용대출의 평균 시장금리가 16.22%라면 금리상한은 이의 1.33배인 21.57%다.
독일은 시장 금리의 2배로 대출금리를 제한하고 있다. 다만, 시장 평균금리가 상승할 경우 대출 금리가 치솟을 수 있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시장금리 2배'와 '시장 금리보다 12%포인트 많은 값' 중 작은 수치를 기준으로 대출을 규제하고 있다. 영국 금융감독청(FCA)은 세부 규칙으로 1일 이자 0.8%(연 288%)를 최고금리로 두고 있으며, 총대출 비용이 대출금의 100%를 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처럼 유럽 국가들이 법정 최고금리보다는 시장금리와 연계된 대출 금리 상한선을 도입한 데는 법정 최고금리와 금융사의 시중금리가 괴리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기준금리가 상승해 금융사의 시중금리가 상승했음에도 기존의 법정 최고금리를 적용할 경우 금융사는 상대적으로 리스크부담이 큰 저신용자의 대출을 우선 회수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금융취약계층이 기존 금융사에서 자금 조달을 받지 못해 결국 불법 사금융시장으로 유입이 확대될 수 있다.
아시아개발은행(ADB)도 연구보고서(Impact Of Restrictions On Interest Rates In Microfinance.)에서 서민경제 부담을 덜기 위해서는 금리를 낮추는 방법이 아니라 합리적인 가격에 금융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사 한 관계자는 "일본의 경우 1999년부터 2010년까지 법정 최고금리를 20%로 무리하게 낮추면서 결국 제도권 금융사에서 대출을 받지 못한 금융취약계층이 대거 불법대금업(사금융)으로 유입돼 최고금리 인하가 결국 서민들의 금리부담을 가중시켰다"며 "유럽과 같이 시장금리와 연계한 최고금리를 책정하고 대출별로 합리적인 상한선을 마련해야 향후 금융취약계층의 자금조달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