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칼럼-지금·여기·당신] 윤석열 검찰총장의 사필귀정(事必歸政)

2020-10-23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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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총장, 事必歸政 말고 사필귀정(事必歸正)이길



사필귀정(事必歸正), 모든 일은 결국 올바름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그런데 바를 正이 아닌 정치 정을 쓰는 사필귀정(事必歸政)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는 상황이 벌어졌다.

22일 오전 10시 8분 시작해 23일 밤 1시 8분에 끝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 국정감사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사필귀정(事必歸政)이었다. 국감의 모든 게 결국 윤 총장의 정치로 돌아갔다.

정확히 15시간 열린 이날 국감은 윤석열 검찰총장의 ‘원맨쇼’였다. 여야 의원 각각 윤 총장을 공격하거나 수비하는데 화력을 총동원했다. 윤 총장은 아주 철저히, 꼼꼼하게 답변 준비를 한 것으로 보였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을 놓고 “검찰총장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 “비상식적”이라는 말을 썼다. 부하, 비상식이라는 두 단어는 윤 총장이 미리 생각해 놓은 핵심 키워드였고, 그는 국감 초반 이 말을 작심하고 터트렸다.

국감 시작 5분 전 박순철 서울남부지검장이 쓴 사퇴의 변(辯) “정치가 검찰을 덮었다”라는 말을 그대로 빌리면 부하가 국감을 덮었다.

정부조직법 제32조(법무부) 1항 법무장관은 검찰·행형·인권옹호·출입국관리 그 밖에 법무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

검찰청법 제8조(법무부장관의 지휘·감독) 법무장관은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


이렇게 법이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의 상하관계를 정해 놨음에도 소모적이고 어리석은 부하 논쟁으로 소중한 국정감사 시간을 허비했다.

어찌 보면 윤 총장의 ‘부하 프레임’에 여야 의원들이 속절없이 넘어간 셈이다.

그런데 정작 국감의 하이라이트는 국감 막판 밤 12시 50분쯤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의 질문에서 시작했다. 아래 일문일답 중 윤 총장의 발언은 탄식, 숨소리 등 의성어도 담았다. (박하늘 인턴 정리)
 

[23일 새벽 국회 법사위 국감 질의응답 장면. 사진=국회방송 캡처]


김도읍 의원(이하 김)= 지금 대검 주변에 소위 총장님 응원하는 화환들이 몇 개 쯤 있습니까?

윤석열 검찰총장(이하 윤)= 글쎄 뭐아침에 저어… 보니까 많이 있는 것 같던데 세어보진 않았습니다.

김= 일설에는 150개 정도 있다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이하 질문에만 마이크 꺼짐)

윤= 뭐, 하여튼…그분들 쩝…제가 그 뜻을 생각해서 해야 될 일 열심히 하겠습니다.

김= 오늘 이 국감장 안에 의원이 18명이 있어요. 여기에 민주당 의원들 대부분이 포함되어 있는데 일곱 분이 6월부터 지금까지 줄곧 “사퇴하라. 윤석열 총장 사퇴하라. 거취 결정하라” 이렇게 주장했던 분들 사이에서 어제 아침 10시부터 익일 1시 정도까지 국정감사 받는다고 수고는 많이 하셨습니다. 대통령께서도 소임을 다하라고 하셨고 그래서 사퇴하지 않겠다고 하셨는데 지금 언론에서는 대통령 후보로 여론조사까지 되고 있거든요? 퇴임하시고 나면 정치 하시렵니까?

윤= 하아글쎄 저는 뭐, 아…지금 제가 제 직무를 다하는 것만으로도 다른 저…생각을 할 겨를도 없고…제가 또 뭐 향후 거취에 대해서도 얘기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습니다. 다만 퇴임하고 나면 제가 소임을 다 마치고 나면 저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우리 사회에 많은 혜택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마, 아…우리 사회와 국민들을 위해서 어떻게 봉사할지 그런 방법은 조금 천천히, 퇴임하고 나서 한 번 생각해보겠습니다. 지금은 제가…

김= 그 방법에는 정치도 들어갑니까?

윤= 글쎄요, 허어(웃음)…그거는 제가 지금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네, 네.

문답의 시작은 서울 서초동 대검 주변에 있는 ‘윤 총장 응원 화환’이었다. 윤 총장은 “세보지 않았다…그 분들 뜻을 생각해서 열심히 일 하겠다”고 했다.

대검청사 담장 아래 진열된 이 화환들은 아래 사진에서 보듯 ‘부정선거로 당선된 빨갱이 문재인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극우보수단체들이 갖다 놓은 게 대부분이다.
 

[사진=연합뉴스]


윤 총장이 ‘그 분들 뜻’을 모를리 없고, 그 뜻을 생각해 열심히 일하겠다는 말은 딱 오해받기 십상인 표현이다. 오해가 아닌 진심이라면 윤 총장은 보수우파를 위해 검찰총장의 일을 열심히 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어 ‘정치 입문’ 질문을 받았을 때 윤 총장이 한 “사회와 국민들을 위한 봉사”는 정계 입문하는 이들이 쓰는 단골 레파토리다. 정치부 기자들이 총선, 대선 등 큰 선거를 앞두고 아주 흔하게 듣는 말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한 봉사, 남은 여생을 국민을 위해 바치겠다 등 화려한 수사…수많은 법조인, 각계 전문가, 시민단체 출신, 86세대 등이 선거 출마, 정계 진출을 선언하며 하는 매우 상투적인 표현이다.

15시간 국감 중 2분가량 이어진 이 질의응답이 왜 핵심 포인트일까? 윤 총장이 지금까지 정치에 대해 해왔던 말과 태도가 사뭇 달라졌기 때문이다.

2019년 7월 8일 윤 총장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정치에 소질도 없고 정치할 생각이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의 복심(腹心)으로 불리는 양정철 전 민주당 민주연구원장과 만나 2016년 총선 출마 권유를 받은 적이 있다고 털어놨고, 그 무렵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으로부터도 영입 제의를 받았다고 시인했다.

“총선 때 여야 모두 나를 찾았지만 난 절대 정치 안 할 겁니다” 이렇게 1년 3개월 전 정치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선을 그었던 윤 총장이 바뀐 거다. 과거 윤 총장은 스스로 정무적 감각이 없다고 말했지만 조국 전 법무부장관 일가 수사 이후 추미애 장관과의 갈등 과정을 겪으며 정무적 감각의 내공을 갈고 닦은 듯 하다. 이날 국감에서 보인 말과 행동은 정무적 판단이 없다면 결코 하기 힘든 정치인의 DNA가 담겨 있었다.

윤 총장의 요청으로 차기 대권후보 여론조사에서 그의 이름이 빠졌지만 다시 등장하는 건 시간문제로 보인다. 정치적 지지세를 가진 특정 인물을 뺀 여론조사는 여론을 반영하지 못하는 틀린 조사가 되기 때문이다.  

당장 오늘(23일) 주식시장에는 윤석열 정치입문 테마주가 등장하기도 했다.

검사 선배 정치인이자 보수야권 대선 후보 ‘재수’를 노리는 홍준표 무소속 의원은 벌써 견제에 들어갔다. 그는 23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추 장관, 윤 총장을 싸잡아 비난했다. 홍 의원은 “둘 다 물러나라. 추 장관은 이제 그만 정계 은퇴하고, 윤 총장은 사퇴하고 당당하게 정치판으로 오라. 그게 공직자의 올바른 태도”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상식에 어긋나는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을 두 번이나 수용하고도 대통령이 아직 신임하고 있다는 이유로 계속 총장을 하겠다는 것은 자가당착”이라며 윤 총장을 꼬집었다. 홍 의원이 추 장관을 비판하는 건 당연하지만 과거 검찰총장 사표 스토리를 적으며 윤 총장을 더 많이 겨냥한 건 잠재적 라이벌,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반증이다.

앞으로 정치권에 윤석열 변수가 요동칠 터, 그러나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윤 총장 임기는 내년 7월 24일 끝난다. 2022년 3월 9일 실시될 예정된 20대 대통령 선거를 약 7.5개월 남기고 퇴임하게 된다. 여야 공히 대선후보 선출을 본격화하는 시기다. 대선 판이 제대로 벌어지는 딱 맞춤한 시기에 검찰총장에서 물러나는 셈이다.  

만약 윤 총장이 정치에 뜻을 품고 남은 임기 9개월을 ‘이용’하는 상황이 온다면 대한민국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질 수 있다. 검찰의 정치, 정치 검찰의 ‘끝판왕’이 등장한다는 말이다. 상상하고 싶지 않은 검찰의 정치 개입이다. 현직 검찰총장이 스스로 대통령이 되기 위해 검찰의 칼을 흉기로 휘두르거나 협박하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 티 나지 않게 교묘히, 정무적이고 정치하게 말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앞으로 행보가 사필귀정(事必歸政) 말고 사필귀정(事必歸正)이길 바랄 뿐이다.

*이 칼럼은 유튜브와 네이버TV를 통해 매주 화요일 방송되는 '아주3D', 매주 1회 팟빵에 공개되는 ‘닥치고 3D’와 함께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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