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쉬운 해고’ 논란이 일면서 노동시장 유연화에 실패했다. 당시 정부는 노조 및 노동자 과반의 동의가 없어도 ‘사회 통념상 합리성’이 있으면 사용자가 취업규칙을 변경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저성과자에 대한 교육·직무 재배치 등을 취해도 성과가 나지 않으면 해고할 수 있도록 지침 변경을 추진했다.
16일 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의 평가에서 한국의 국가경쟁력은 141개국 중 13위였지만 노사 협력은 130위에 머물렀다. 노동 관련 다른 지표들도 100위권 안팎에 그쳤다.
특히 이른바 ‘언택트’로 대표되는 원격근무가 확산되면서 영상회의 등 정보통신(IT) 기술을 활용한 업무환경으로의 전환이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노동부문의 경직성을 해소하지 않으면 안 되는 때가 온 것이다.
기업의 육성과 산업 발전을 통해 지속가능한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되려면 산업구조 개편은 불가피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코로나19 이후 산업의 패러다임은 노동의 유연성 없이 국가 경제의 지속 가능함을 보장하지 못할 만큼 빠르게 변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노동개혁이 생산성을 올리는 지름길이면서 결국 노사 모두에 상생의 길을 열어준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청와대도 노동계의 반발에 ‘원론적인 이야기’라고 한 발 물러섰지만, 다소 전향적인 입장을 보였다.
황덕순 청와대 일자리수석은 지난 15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노동관계법 개정을 제안한 것을 두고 “아직은 야당에서 노동법 개정의 구체적 내용을 말한 적은 없는 것 같다”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제안하는지에 따라 검토해볼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황 수석은 “일각에 (김 위원장이) 해고를 쉽게 한다든가 하는 과거 정부의 개혁 같은 것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지만 김 위원장이 그런 개혁을 염두에 두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면서 야당과의 노동법 개정 논의 가능성을 열어뒀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곧바로 황 수석의 언급에 대해 “노동개악의 초시계가 눌러져 째깍째깍 돌아가는 지금의 상황에서 황 수석은 자신의 발언에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민주노총은 강한 유감을 표하며 그 진위를 따져 반드시 그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정부가 제출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집단적 노사관계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상급단체의 사업장 출입을 금지하며 헌법이 부여한 단결권을 부정하는 법을 정부가 발의하고 자본과 국민의힘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처벌을 면하자는 법에 대해서도 검토할 수 있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은 앞서 지난 6일에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강한 반대의사를 전달한 바 있다. 민주노총은 “어떤 방식이든 재벌, 자본의 배를 불리기에 혈안이 돼 있는 김 비대위원장과 만나서 얘기할 용의가 있다. 이런 요구에 응할 자신이 없으면 그 입 다물라”면서 “‘공정경제 3법’으로 재계도 많은 것을 잃고 양보하니 국제기준에 현격히 미달하는 노동관계법을 함께 다루자는 발상은 어디에서 나오느냐”고 반문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도 대변인 논평을 통해 “김 비대위원장의 보수 야당 체질 개선에 대한 노력이 애먼 노동법으로 옮겨 붙지 않기를 바란다”면서 “그렇게 되는 순간 쉬운 해고와 임금삭감을 개혁이라 불렀던 ‘도로 박근혜 정당’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 역시 “코로나19가 발발하고 나서 3월부터 현장에서는 실제로 말씀하셨던 재택근무 시차근무 이런 유연 근무체계 자체가 현장에서 갈등 없이 잘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오히려 이 상황에서 제도로 다 뭘 바꾸려고 하지 말고 현장에서 코로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노사가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