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9일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기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고 현장에서 녹음된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터져 나온다. 불편한 굉음과 함께 천장에 쇠줄로 매달린 스피커 여러 대가 위아래로 움직인다. 작품은 5개월밖에 안 됐지만 금세 잊고 지냈던 참사를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변하지 않은 ‘불편한 진실’ 앞에 다시 섰다.
사회적 의제를 주제로 하는 아르코미술관 주제기획전 ‘더블 비전’(Diplopia)이 오는 29일부터 서울 종로구 아르코미술관에서 오프라인 전시를 갖는다.
전시 제목 ‘더블 비전’에는 기술 발달 이면의 인간소외·기술의 실패·기술과학에 쏠린 금융시장의 과열 등의 양면적인 현상을 ‘복시(diplopia)’ 즉, 겹 보임이라는 병리학적 시각현상을 토대로 중층적으로 살펴보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영상·설치사운드 등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에는 김실비·양아치·오민수·이은희·임영주 5인의 작가가 함께했다.
오민수 작가는 작품 ‘아웃소싱 미라클’에 대해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고는 지하에서 시작됐다. 당시 간신히 매달려 있는 쇠가 추처럼 흔들리며 내는 소리에 집중했다”라며 “그 소리가 희생당한 노동자들의 소리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아웃소싱 미라클’에서는 스피커가 위아래로 왔다 갔다 하는 물리적인 움직임으로 인해 소리가 증폭되거나 감소되는 ‘소리의 왜곡’ 현상이 일어난다. 이에 대해 오 작가는 “스피커가 떨어지며 찰나에 소리가 바뀐다. 사고 당시 현장에 있었던 노동자들 죽음도 찰나였을 것이다”며 “작품을 통해 그 순간을 재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작가가 작품을 만든 것 잊지 않기 위함이다. 오 작가는 “아웃소싱은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봤을 때는 타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만이 옳은 일인가에 대해서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며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고 이외에도 무수히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모두가 알면서도 계속되고 있다는 게 슬프다. 계속 기억해 그런 사회 현상이 줄어들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작품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임영주 작가는 '세타'를 통해 기술과 자본을 향한 이 시대의 염원과 이에 대한 환상을 비추는 보여주고, 이은희 작가는 '어핸드인어캡'을 통해 최첨단 기술이 점차 비대해져 갈 수밖에 없을 돌봄노동자, 장애 당사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드러낸다.
작가 양아치는 '샐리'(Sally)를 통해 스마트 시티가 구현 된 후 생활패턴과 환경의 변화를 이야기 한다. 김실비 작가는 '회한의 동산'에서 신에 대한 믿음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과학기술을 향한 신념으로 대체된 상황을 비유한다. 전시는 오는 11월 29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