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어디서 누구라도 견사가 아니라 보장으로 하는 것이 당연할 것 같지만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인가 보다. 최근 우리나라가 바로 그런 경우가 아닐까 싶다.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위기를 맞아 정부가 대거 재정을 푸는 것은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그로 인해 재정적자와 국가채무비율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코로나19를 핑계 삼아 세금을 더 거둬들일 곳이 없나 하고 여느 때보다 샅샅이 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와중에 세무조사가 나왔어요.” “네, 뭐라고요? 세무조사요?” “그렇다니까요.” 두어 달 전 한 중소기업 대표와 나눈 대화이다. 이후 주변에서는 세무조사가 나왔다는 기업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고 있다. 코로나19의 타격을 받아 크게 어려운 기업에 세무조사를 나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코로나19 속에서도 어느 정도 이익을 올리는 등 건실하게 경영한 기업이 오히려 세금을 더 거둘 수 있는 대상이 되지 않았을까. 내년 1월부터 중소기업의 일정기준을 넘는 유보소득(당기순이익에서 배당금을 빼고 사내에 남겨둔 금액)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세법 개정안도 같은 선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 같은 흐름은 코로나19 이전에 이미 시작된 일이다. 기초연금 지급액과 범위를 늘리고 최저임금을 올리면서 그에 따른 정부 지원을 늘리는 등 선거와 표를 의식한 정책이 이어지면서 재정지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에 따라 어떻게든 세금을 더 거둬들여야 하는데, 그 대상은 가진 사람과 가진 기업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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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어려울수록 돈 있는 사람과 기업에게서 세금을 더 거둬들여서 상대적으로 더 어려운 쪽을 도와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과연 대상이 되는 사람과 기업들이 쏟아지는 세금 부담을 견뎌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것도 코로나19로 인해 고용과 소득은 물론 기업 경영 여건 또한 갈수록 더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부동산 쪽에서는 조세 저항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실제시세와 차이가 큰 공시지가를 올리는 것은 정부로서는 손쉽게 세금을 더 징수할 수 있는 부분이자 주택 등 부동산을 가진 사람들은 부담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공시지가를 지나치게 빠르게 올릴 경우 일반 국민들은 물론, 특히 소득은 거의 없고 주택 하나만 가지고 있는 노년층에게는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다. 여기다 정부가 치솟는 주택가격을 잡겠다면서 종합부동산세 및 양도소득세 인상, 임대차3법 등을 연이어 내놓았다. 그 결과 1주택자 등 애꿎은 실수요자들까지 보유세 등 세금 폭탄을 맞고 있다. 이에 정부의 부동산정책에 반대하는 시위가 지난 7월 중순부터 시작되었다. 지금은 코로나19의 재확산과 이를 무기로 한 정부의 시위 금지 조치에 막혀 주춤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든지 ‘부동산 촛불’로 터져 나올 잠재력을 가진 휴화산이라고 할 수 있다.
‘군주론’에서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시민들이 안심하고 상업과 농업 등 생업에 종사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빼앗길 것이 두려워 자산을 늘리는 것을 주저하지 않도록 하고, 부과될 세금이 두려워서 상업을 시작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구한말 외국 여행가와 선교사들은 조선이 가난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정부와 관리의 무능과 부정부패에다 보호받지 못하는 사유재산권, 세금 착취 등을 들었다. 이를 견디다 못한 농민들이 일어선 것이 동학농민운동이다. 동학농민운동이 발생한 지 120여년이 지난 지금 2500년 전의 견사와 보장론을 다시 들여다보는 이유이다. 공멸(共滅)의 길로 들어설 것인가, 공생(共生)의 길을 찾을 것인가.
/ 최성환 고려대 경제학과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