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LG화학·SK이노베이션 ‘배터리 전쟁’은 소모戰

2020-08-31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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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함지갑, USB 메모리카드, 무선마우스, 외장배터리···.
수년간 기자간담회에서 받은 소정의 기념품들이다. 대부분 해당 기업들의 로고가 박혀 있어 지인에게 쉽사리 선물도 못할 상품이다. 천생 기자들에게 딱인 제품이다. 홍보맨들의 깊은 고민이 반영된 결과다. 최근 1~2년 사이엔 외장배터리가 가장 많았다. 잠자는 시간 외에 휴대폰을 써야 하는 직업 특성상 외장배터리가 필수라 항상 고마운 선물이다. 그야말로 다다익선 아이템이다.

외장배터리의 높아진 인기만큼이나 국내 배터리 기업들의 기술력도 급상승했다. 특히 최근에는 전기차 주가 상승과 맞물려 국내 배터리 3사(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의 각축전이 심해졌다. 시장이 커지니 밥그릇 싸움이 커진 것이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지켜보기 민망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전기차배터리 점유율 1위인 LG화학과 후발주자인 SK이노베이션(이하 SK이노)의 국내외 특허 소송전이 그러하다.
최대 분수령은 오는 10월 5일로 예정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최종결정이다. 앞서 ITC는 지난 2월 14일 LG화학과 SK이노 간 ‘전기차용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전에서 SK이노에 ‘조기패소 예비결정(Initial Determination)’을 내렸다. LG화학이 주장한 “SK이노 측이 인력과 기술을 빼가고 증거를 인멸했다”는 주장이 타당하다고 본 것이다. 조기패소 예비결정이 그동안 최종결정에서 뒤집힌 사례가 없다. 만약 ITC의 최종 패소 결정을 받게 되면 SK이노는 배터리 셀과 모듈, 부품소재 등의 미국 수출이 모두 금지돼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된다.

이 와중에 SK이노는 지난 27일 국내에서 진행한 첫 소송에서도 LG화학에 패소했다. SK이노는 LG화학이 미국에서 제기한 특허소송 중 대상 특허 1건이 과거 두 회사가 체결한 부제소 합의를 파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날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는 양사 간 합의 대상 특허는 한국특허에 한정된다며 LG화학의 손을 들어줬다.

진퇴양난에 처한 SK이노는 속이 타들어 가고 있다. 유일한 해법은 미국 ITC의 최종결정 전인 다음달까지 LG화학과 협상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그런데 LG화학은 국내 소송에서도 승기를 잡은 터라 SK이노에 선뜻 양보할 가능성이 낮다. 결국 SK이노가 LG화학에 지급해야 할 합의금 몇 조원은 현실화할 것이란 전망마저 나온다.

문제는 양사의 공방이 한창일 때 경쟁국가 기업들이 시장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6월 LG화학의 세계 전기차배터리 시장 점유율은 24.6%로 1위를 차지했다. 삼성SDI는 6.0%로 4위, SK이노베이션은 3.9%로 6위다. K배터리 3사의 점유율은 총 35%에 육박한다. 전 세계 전기차 10대 중 3대가 K배터리로 달리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안심할 수 없다. 세계 최대 전기차업체 미국 테슬라가 다음 달 15일 ‘배터리 데이’를 열고 이 자리에서 배터리 자체 생산 계획까지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K배터리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여기다 중국 정부는 자국 배터리업체인 CATL에 막대한 지원을 하고 있다. CATL은 테슬라가 추진하는 배터리 자체 생산 프로젝트의 유력 파트너로 거론되고 있다. BMW 등 유럽 전기차업체들도 현지에서 배터리를 직접 조달하려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이럴 때일수록 LG화학과 SK이노가 빠른 협상을 이뤄 소모전을 끝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반도체에 이어 차세대 성장동력인 배터리 산업이 세계 10위권에 포진해 있을 때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규모 선제 투자와 기술 고도화에 역량을 집중해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혹시 알까. 1인 1전기차 시대가 됐을 때 가방에 넣고 다니는 초박형 전기차배터리를 국내 3사 중 한 곳이 개발할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해당 제품 출시 기자간담회에서 기념품 대신 제값을 주고 살 의향 100%다.
 

LG화학-SK이노베이션 배터리 소송 분쟁 일지 [그래픽=아주경제 그래픽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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