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신임 대표로 이낙연 의원이 29일 선출됐다. 이 대표는 언론인 출신 정치인이다.
이 대표는 1952년 전남 영광에서 농부의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광주제일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졸업 후 1979년부터 21년간 동아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정치부 기자 시절 민주당을 출입했고 이때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인연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그는 2000년 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남 함평군, 영광군 선거구에 새천년민주당(현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고 당선돼 정치 인생을 시작했다.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정계 진출을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는 '노무현의 대변인'으로 불렸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2002년 대선 후보 시절 이 대표는 대선 후보 대변인으로 노 전 대통령과 선거 레이스를 함께 뛰었다. 노 전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공식 취임 전까지 당선인의 대변인직을 수행했다. 노 전 대통령의 취임사 작성에도 참여했다.
2003년 11월 열린우리당 창당 움직임에도 민주당에 남아 당을 지켰다. 그러면서도 노 전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확고히 했다. 이 대표는 2003년 3월 12일 찬성 193표로 통과된 노 대통령 탄핵소추안 찬반투표에서 반대표를 던진 2명 중 한 명이었다.
이 대표는 17대(새천년민주당), 18대(민주당), 19대(민주통합당) 국회의원을 역임한 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전남지사직(새정치민주연합)에 출마해 당선됐다. 이 대표는 도지사 재임 중 문재인 정부의 첫 번째 국무총리로 임명됐다. 2017년 5월 31일부터 올해 1월 13일까지 958일을 재임하면서 최장수 총리로 기록됐다.
이 대표는 총리 재임 시 특유의 위기관리 역량과 '사이다 발언' 등이 강점이라고 평가받았다. 특히 일본 수출 규제로 시작된 '한일 경제전' 국면과 강원 산불 등에서 보여준 위기관리 능력을 두고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후 21대 총선에서 '정치 1번지'로 불리는 서울 종로에서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와 맞대결을 벌였고, 큰 표 차이로 승리해 국회에 재입성했다. 총선 국면에서 이 대표는 민주당 코로나19 국난극복위원장을 맡으며 코로나19 사태 초기 대응에 기여했다.
△1952년 전남 영광 출생 △광주제일고 △서울대 법학과 △동아일보 도쿄 특파원ㆍ국제부장 △16·17·18·19·21대 국회의원 △새천년민주당 원내대표 △전남지사
이 대표는 '노무현의 대변인'으로 불렸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2002년 대선 후보 시절 이 대표는 대선 후보 대변인으로 노 전 대통령과 선거 레이스를 함께 뛰었다. 노 전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공식 취임 전까지 당선인의 대변인직을 수행했다. 노 전 대통령의 취임사 작성에도 참여했다.
2003년 11월 열린우리당 창당 움직임에도 민주당에 남아 당을 지켰다. 그러면서도 노 전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확고히 했다. 이 대표는 2003년 3월 12일 찬성 193표로 통과된 노 대통령 탄핵소추안 찬반투표에서 반대표를 던진 2명 중 한 명이었다.
이 대표는 17대(새천년민주당), 18대(민주당), 19대(민주통합당) 국회의원을 역임한 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전남지사직(새정치민주연합)에 출마해 당선됐다. 이 대표는 도지사 재임 중 문재인 정부의 첫 번째 국무총리로 임명됐다. 2017년 5월 31일부터 올해 1월 13일까지 958일을 재임하면서 최장수 총리로 기록됐다.
이 대표는 총리 재임 시 특유의 위기관리 역량과 '사이다 발언' 등이 강점이라고 평가받았다. 특히 일본 수출 규제로 시작된 '한일 경제전' 국면과 강원 산불 등에서 보여준 위기관리 능력을 두고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후 21대 총선에서 '정치 1번지'로 불리는 서울 종로에서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와 맞대결을 벌였고, 큰 표 차이로 승리해 국회에 재입성했다. 총선 국면에서 이 대표는 민주당 코로나19 국난극복위원장을 맡으며 코로나19 사태 초기 대응에 기여했다.
△1952년 전남 영광 출생 △광주제일고 △서울대 법학과 △동아일보 도쿄 특파원ㆍ국제부장 △16·17·18·19·21대 국회의원 △새천년민주당 원내대표 △전남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