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3조5000억원(약 30억 달러) 규모의 모멘티브 인수합병(M&A)은 지난해 9월 정몽진 회장의 장녀 정재림 이사가 적극 참여해 성사시킨 대형 프로젝트다.
모멘티브 인수전은 역대 한국 기업의 해외 인수합병(M&A) 거래 중 삼성전자의 하만 인수(80억 달러), 두산인프라코어의 밥캣 인수(49억 달러)에 이어 세 번째로 큰 건으로 화제를 모았다.
2006년 설립된 모멘티브는 세계 주요 지역에 16개 실리콘 공장이 있다. KCC는 모멘티브의 지분 약 45.5%를 취득, 쿼츠사업 등 일부 사업 영역을 제외한 모멘티브의 경영권을 확보함으로써 미국의 다우코닝, 독일의 와커 등과 경쟁하는 세계 3대 실리콘·석영 기업 반열에 오르게 됐다.
올해 들어 코로나19에 따른 국내 건설경기 하락과 자동차 시장 등 전방산업 부진으로 KCC의 주력인 도료와 건자재 판매량이 줄면서 현금흐름도 좋지 않다. 이로 인해 국내 3대 신용평가사들은 KCC의 신용등급을 기존 AA에서 AA-로 일제히 강등했다.
사정이 급해지자, KCC는 지난 7일 모멘티브의 북미 지역 실란트(실리콘접착제) 사업을 독일 헨켈사에 2428억원에 매각하기로 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에는 KCC 사옥이 있는 서울 잠원동 건물과 토지 등을 KCC건설에 1592억원에 매각했다. KCC는 이들 매각 자산을 차입금 관리에 쓸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KCC는 모멘티브 인수를 기점으로 실리콘을 중심으로 한 첨단소재는 물론, 도료·유리·바닥재·창호 등 종합 건자재와 인테리어까지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겠다는 목표였다. 하지만 모멘티브 인수가 다년간 그룹 유동성에 발목을 잡을 것이란 비관론이 나오면서 정재림 이사의 입지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정 이사는 지난해 4월 이사대우로 선임돼 KCC 기획전략실에 합류, 모멘티브 인수전에서 활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0년생으로 미국 명문 웰즐리대 졸업 후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MBA 과정을 마친 이후, 갓 서른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KCC 경영에 참여한 것이다.
그럼에도 4살 아래인 남동생 정명선씨보다는 2008년 이후 계속해서 지분이 적었다. 그러다 올해 들어 작은 아버지인 정몽익 KCC 수석부회장으로부터 보통주 2만9661주(약 42억원)를 증여받아, 남동생과 같은 0.62%의 지분율을 확보하게 된다.
KCC그룹 내부에서는 모멘티브 인수로 경영능력을 입증받은 정 이사가 그룹의 계열 분리 작업과 맞물려 지분율을 높이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럼에도 그동안 현대가(家) 자녀들 중 여성이 경영 승계를 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다는 점이 복병이다.
재계 관계자는 “모멘티브 인수로 인해 KCC가 차입금 부담이 커지면서 ‘자충수’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면서 “정 이사가 최근 높아진 지분율에 상응하는 경영능력을 계속 입증하는 동시에 자금 흐름 개선을 위한 복안까지 찾는다면 그룹 내 입지는 한층 탄탄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