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장미’ 영향으로 게릴라성 호우가 내린 지난 11일,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만난 관계자의 말이다.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는 HMM의 2만4000TEU급(이하 24K, 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 12호선인 ‘HMM 상트페테르부르크’호의 마무리 공정이 한창이었다. 이 배는 일주일 뒤 시운전을 마치고, 다음달 중순 항해에 나선다.
눈앞에 마주한 배는 카메라 앵글에 한번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위용을 뽐냈다. 선박의 길이는 약 400m, 폭은 61m, 높이는 33.2m에 달했다. 갑판 넓이는 축구장 4개를 이어붙인 크기다. 선박을 수직으로 세웠을 때 아파트 133층 높이에 해당한다. 여의도 63빌딩(264m), 에펠탑(320m)보다 길다.
◆HMM,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 내달 마지막 인도...7호선까지 만선 행진 중
HMM의 24K 컨테이너선은 정부의 과감한 지원이 뒷받침됐다. 한진해운 파산 이후 정부는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을 세웠다. 이에 따라 HMM은 국내 조선 3사와 약 3조1500억원 규모의 초대형 선박 20척의 건조 계약을 체결했다.
지난 4월 23일 운항에 나선 24K 컨테이너 1호선인 ‘HMM 알헤시라스호’를 시작으로 1~2주 간격으로 대우조선해양(7척), 삼성중공업(5척)으로부터 같은 크기 컨테이너선 12척을 인도받고, 내년에는 현대중공업으로부터 1만6000TEU급 8척을 인도받을 계획이다. HMM이 이 배들을 모두 인도받으면 선복량(선박 적재 능력)이 세계 8위 규모인 87만TEU로 늘어날 전망이다.
운항에 나선 컨테이너선들은 속속 낭보를 전해오고 있다. 1호선인 알헤시라스호는 지난 5월 8일 아시아 구간의 마지막 기항지인 옌톈에서 1만9621TEU를 선적해 유럽으로 출발, 선적량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만선했다. 이어 2호선 오슬로호도 1만9504TEU를 선적해 만선했고 이어 7호선 함부르크호까지 연달아 만선을 기록 중이다. 특히 헤드홀(아시아에서 유럽 가는 구간)뿐만 아니라 백홀(돌아오는 구간)에서도 만선이다. 통상 백홀은 평균 화물적재율이 50~60%지만 잇달아 만선 행진 중인 것이다.
이런 성과로 HMM은 21분기 만에 ‘흑자 전환’하며 정부의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의 성과를 높이고 있다. HMM은 12일 공시를 통해 연결 기준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이 1387억원으로 지난해 동기(영업손실 1129억원)와 비교해 흑자 전환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밝혔다. 매출은 1조3751억원으로 작년 동기 대비 1.6% 줄었으나, 순이익은 281억원으로 흑자로 돌아섰다.
◆해수부 “2025년 해운 매출, 51조원 달성 위해 전방위 지원 계속”
해양수산부도 한층 고무됐다. 문성혁 장관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이 반환점을 도는 시기를 맞아 전반기를 평가하고, 후반기에 추진할 정책을 발표했다.
문 장관은 HMM 실적 개선과 관련 “코로나 19사태로 매출액이 지난해보다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적이 개선된 것은 고효율‧저비용 구조로 선단을 전환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이어 “HMM 경영개선을 비롯한 해운재건의 성과는 재정당국과 금융당국 등 범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과 해운업계의 경영혁신 노력이 반영된 결과”라고 말했다.
해수부는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을 지속 추진, 오는 2025년까지 해운 매출 51조원을 달성하고 지배선대 약 1억t, 원양 컨테이너 선복량 120만TEU를 달성할 계획이다. 지배선대란 국적선사가 소유하거나 장기로 임대해 운용하는 국적 선박과 외국적 선박을 통틀어 일컫는 개념이다. 올해 기준 해운 매출은 35조원, 원양 컨테이너 선복량은 78만TEU이며, 지배선대는 약 9030만TEU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해수부는 2025년 목표 달성을 위해 한국해양진흥공사가 선박을 매입하면 기존 재대선 사업에 운용리스 사업을 추가하고, 중장기적으로 리스전문 선주회사 설립을 추진할 계획이다. 특히 향후 코로나19 같은 상황으로 해운기업에 긴급 유동성 지원이 필요할 때는 예외적으로 신용보증을 제공하도록 연내 공사법 개정도 추진한다.
문 장관은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의 전반기는 한진해운 파산 이전의 해운산업 위상을 회복하는 데 주력했다면 후반기에는 더 높은 도약을 준비해야 한다”면서 “한국해운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남은 계획기간 동안 오늘 발표한 해운 정책들을 차질 없이 이행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