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석, 과학의 시선] 이탈리아 그란 사소 국립연구소의 암흑물질 검출 실험 그룹이 특이한 신호를 보았다고 지난달 하순 발표했을 때 나는 큰 관심을 갖지는 않았다. 그란 사소 연구소가 암흑물질 신호를 검출했다는 건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내가 잘 모르면서, 엉뚱하게 추측한 것이었다.
맥락은 이랬다. 내가 알고 있는 그란 사소 국립연구소의 실험은 다마(DAMA) 실험이었다. 다마 실험은 암흑물질 검출기를 지하에 설치해놓고, 그 검출기에 암흑물질 입자가 와서 충돌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신호를 검출했다고 몇 차례 발표, 국제적으로 비상한 관심을 모아왔다. 세계적으로 암흑물질 검출 실험을 하는 곳이 몇 곳 있지만, 신호를 보았다는 곳은 그곳이 유일하다. 그들이 보았다는 신호는 정말 제대로 정확히 본 것일까? 이걸 확인하기 위한 실험이 있다. 한국의 기초과학연구원(IBS)이 주도하는 코사인(COSINE) 실험이다.
그렇기에 그란 사소 국립연구소의 제논 실험이 특이한 신호를 검출했다고 발표한 걸, 나는 다마 실험으로 착각하였고, 주목하지 않았다. 정확한 맥락을 알아차린 건 중앙대 물리학과 이현민 교수를 만나 설명을 듣고서다. 이 교수는 한국의 대표적인 암흑물질 이론가 중의 한 명이다. 그는 실험물리학자가 아니라, 이론물리학자이다. 이 교수는 “이번에 암흑물질 연구 관련 신호를 보았다고 한 곳은 그란 사소의 제논 1T실험이다. 액시온(Axion)이라는 가상의 암흑물질 입자를 검출하려는 게 실험의 목적이다”라고 말했다. ‘제논 1T실험’이라는 이름은 원자번호 54번인 제논 액체를 톤(3.2톤) 규모로 지하 탱크에 담아놓고 암흑물질이 와서 때리기를 기다리고 있기에 붙인 이름이다.
그의 말을 들으니 그란 사소 국립연구소가 어떤 실험들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란 사소 국립연구소 웹사이트를 찾아가보니, 그들은 “세계 최대 규모의 지하 실험을 하고 있다”고 자랑하고 있었다. 그란 사소는 로마에서 동쪽으로 180㎞ 떨어진 곳이었고, 이탈리아 반도 남과 북으로 길게 뻗어있는 아펜니노 산맥 지하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고속도로 터널 구간을 뚫다가 터널 안에서 옆 공간에 지하 공간을 더 만들어, 입자물리와 천체물리 실험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탈리아 반도의 동해인 아드리아해에 가깝다.
그란 사소 웹사이트에 나와 있는 실험의 수를 세어보니 무려 12개다. 저에너지 태양 중성미자의 물리적 특징을 연구하는 실험(보렉시노 실험), 중성미자 없는 베타 붕괴가 있는지를 확인하고, 있으면 그 반감기를 측정하는 실험(코브라 실험)이 그중 일부였다. 과학 작가를 표방하는 나도, 그게 무슨 실험인지 정확히 모르고 있는 실험이었다. 내가 알고 있던 다마 실험과 제논(XENON) 실험은 암흑물질 외에도 중성미자 연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마와 제논 실험은 모두 여성 물리학자가 이끌고 있는 점이 눈에 띄었다.
암흑물질의 정체를 알아내면 그건 바로 노벨물리학상 감이라고 물리학자들은 말한다. 한국인이 매년 10월이면 노벨상 발표에 목을 매달고 ‘혹시나’ 하는 기대를 하고 있다. 그 노벨상을 암흑물질 연구자가 언제는 가져가게 되어 있다. 암흑물질이 무엇인지는 현재 입자물리학과 천체물리학, 천문학의 최대 미스터리다. 이 베일에 싸인 물질의 양은 우주의 물질과 에너지 총량의 25%정도를 차지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물질의 양이 약 5%이니, 5배가 넘는다. 암흑물질의 존재 예측은 20세기 우주론이 이룬 최대 성과라고 얘기된다.
가령, 근래 들어 입자물리학의 최대 이벤트는 2012년에 발견된 힉스입자였다. 힉스는 입자들에 질량을 주는 입자다. 힉스입자를 발견한 곳은 수 조원을 들여 지상 최대의 과학실험을 하고 있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이다. 스위스 제네바 지하에 있다. CERN은 힉스입자를 찾은 뒤에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힉스입자 다음 목표는 암흑물질이다.”
그란 사소의 지하실험에서는 노벨상이 나오지 않았지만 암흑물질 검출 실험에서 앞서가고 있어, 놀라운 결과를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이탈리아와 경제력에서 별 차이 나지 않는다. 2019년 국민총생산(GDP) 규모에서 이탈리아는 2조12억 달러, 한국은 1조6421억 달러를 기록했다(OECD 통계). 그런데 한국보다 거대 과학 실험에서 훨씬 앞서가고 있다.
한국의 이웃나라 일본은 지하 실험에 투자, 노벨물리학상을 계속 수확하는 걸로 유명하다. 기후현에 카미오카 광산이라고 있다. 폐광에 일본 정부는 물리학 실험 시설을 만들었다. 카미오칸데 실험(1983~1996년), 슈퍼 카미오칸데 실험(1996년에 시작)을 하고 있고, 또 그 다음오로 하이퍼-카미오칸데 실험을 준비하고 있다. 일본은 이 지하실험에서 노벨 메달 2개를 캐냈다. 카미오칸데 실험은 초신성 폭발 때 나오는 중성미자를 검출해서 2002년 노벨상(고시바 마사토시)을 받았고, 후속 실험인 슈퍼 카미오칸데 실험은 중성미자가 질량을 갖고 있다는 걸 1998년에 확인, 노벨상을 2015년에 받았다(카지타 타카아키 도쿄대 교수).
한국은 후발주자다. 부지런히 따라가고 있다. 실험 분야에서는 IBS의 2개 연구단이 암흑물질 연구를 부지런히 하고 있다. 김영덕 세종대 교수가 이끄는 지하실험단과, ‘액시온 및 극한상호작용 연구단’(야니스 세메르치디스 카이스트 교수)이 그 두 곳이다. 지하실험단은 암흑물질 후보인 윔프 입자 검출을 위한 실험을 이미 하고 있으며, 액시온연구단은 입자 검출을 위한 실험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김영덕 단장의 지하실험연구단이 열심히 하고 있다. 김 교수는 암흑물질과 중성미자를 연구하는 한국의 1세대 실험 물리학자다. 그는 김선기 서울대 교수와 함께 1998년 청평 발전소에서 첫 번째 실험을 했고, 두 번째 검출기는 2003년 강원도 양양의 양수발전소 내 지하 700m인 공간에 설치, 가동 중이다. KIMS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한국암흑물질탐색실험은 지난 2014년 미국 예일대의 레이나 마루야마 교수 그룹과 같이 하는 국제실험으로 업그레이드 되면서 ‘코사인 실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그리고 세 번째 실험 시설을 강원도 정선의 한덕철광 지하에 구축하고 있다. 새로운 실험은 땅속 1100m에 자리잡을 예정이며 올 연말 시설 가동을 목표로 한다.
이론가들도 부지런히 암흑물질 연구를 하고 있다. 한국이론물리학자의 암흑물질 연구는 전설의 입자물리학자 이휘소 박사가 그 첫줄에 서 있다. 1977년에 그가 쓴 ‘무거운 중성미자’ 논문이 출발점이다. 그리고 서울대 명예교수인 김진의 교수(현 경희대 석좌교수)의 존재감이 두드러지게 보인다. 김 교수는 1979년 논문에서 ‘액시온’이라는 입자를 제안했고, 이 입자는 암흑물질 후보가 될 수 있다고 해석되었다. 김 교수 논문은 대단히 주목받았고, 서울대에서 일하는 동안 한국에서 노벨물리학상이 나온다면 수상이 예상되는 학자로 맨 먼저 이름이 거론됐다. 그는 서울대에서 일하며 많은 제자를 길렀다. 최기운 IBS이론물리센터 연구단장이 첫 번째 제자라고 하며, 박종철 충남대 교수가 마지막 제자라고 얘기된다. 중앙대 이현민 교수, 부산대 정광식 교수, 서울대 김형도 교수가 그의 제자다.
이론 물리학자들은 이탈리아 그란 사소의 제논1T 실험에서 이상한 신호가 나왔다는 논문을 접하고, 그걸 해석하는 이론을 쏟아냈다. 이현민 중앙대 교수는 100편이 넘을 것이라고 했다. 이 교수 자신은 ‘발열 암흑물질’이라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기존 연구와 이번 실험이 맞지 않아, 새롭게 봐야 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제논 실험 결과를 보면, 암흑물질이 하나 이상의 입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접하는 일반물질이 다수의 입자로 구성되듯이, 암흑물질도 여러 입자로 만들어졌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자연스럽다”라고 말했다. 고병원 고등과학원 교수, 박성찬 연세대 교수와 박종철 충남대 교수도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한국 이론물리학 연구 수준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실험물리학의 수준은 일본이나, 이탈리아에 크게 뒤진 게 내 눈에도 보인다. 일본의 입자물리학과 천체물리학 실험을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일본은 중성미자 연구 말고도 또 다른 입자물리 분야의 대규모 실험인 차세대 국제 선형 가속기(ILC) 실험을 할 수 있는 나라로 주목받아왔다. 한국은 ‘빅 사이언스’를 갖고 있지 않다. 대형 물리학 실험은 없다. 대전에 만들고 있는 중이온가속기 정도가 이제 출발이라고 할까?
한국은 ‘빅 사이언스’를 갖고 있지 않으나, 이웃에 그런 시설이 있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가령 양운기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는 실험물리학자인데, 대학원 석사 때 일본 쓰쿠바에 있는 KEK(고에너지가속기연구기구)에 가서 가속기 실험 연구를 하면서 물리학자로 성장했다. 당시 AMY(‘에이미’라고 발음한다)실험은 유명해서 한국에 ‘AMY키즈‘라고 불리는 물리학자들이 있을 정도다. 지금도 한국은 일본과 물리학 분야에서 협력할 게 많다. 가령, 앞에서 말한 ’하이퍼-카미오칸데 실험‘이 한국에 몇년 전에 제안해 온 게 있다. 카미오칸데에서 중성미자를 쏘고 한국 남부에서 중성미자를 받아 연구하자는 제안이었다. 대구 비슬산과 경주 보현산이 후보지로 거론됐다. 한국이 돈을 들여 연구소와 중성미자 발생 장치를 만들지 않고 비용을 아끼면서 중성미자 연구를 할 수 있는 기회다. 김수봉 서울대 교수와 같은 중성미자 연구자에게는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데 일본과의 관계가 나빠지면서 일본과의 협력 연구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의 물리학 연구가 얼마만큼 올라왔는지를 알아야, 노벨물리학상 수상자가 나올지 아닐지를 알 수 있다. 적어도 빅 사이언스 실험에서는 당분간 난망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말하고 싶다. 노벨상은 좋으나 노벨평화상은 더 이상 사양한다. 노벨평화상은 그만큼의 심각한 위기가 한반도에 있었다는 걸 반증한다. 그런 한반도에 살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