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상 법무부 장관은 총장에 대한 지휘권을 가진 상급자다. 어떤 상급자를 만나냐에 따라 총장의 행보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수도 있지만 윤 총장의 경우 그 변화의 폭이 드라마틱했다.
한 사람은 사실상 장관으로 예우를 받지 못했고, 또 한 사람은 윤 총장이 이끄는 검찰에 의해 낙마했다. 만신창이라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온 가족이 고통을 겪었다. 그리고 마지막 한 사람과는 치열한 권력다툼을 벌이고 있다.
여권과 진보진영 시민단체에서는 윤 총장의 그런 행보가 '검찰개혁'이라는 과제를 더욱 부각시켰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박상기·조국·추미애… 공통점은 '검찰개혁'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임명된 세명의 법무부 장관은 모두 '검찰개혁'을 목표로 내세웠다.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검찰개혁'을 주요 업무계획으로 삼았다. 박 전 장관은 검찰개혁의 '초석'을 닦는 역할을 했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이 박 전 장관 시절에 기초가 닦였다.
박 전 장관은 형사부 검사들에 대한 우대정책도 마련했다. 이를 통해 '정치검사'를 뿌리뽑겠다는 계획이었던 것.
특히 법무부의 주요보직을 차지하고 있던 검사들을 대폭 줄이고 외부 변호사들로 자리를 채우는 이른바 '문민화' 전략도 꾸준히 시행했다.
하지만, 유약한 학자 출신의 장관이라는 점 때문에 임기 내내 검찰의 마타도어에 시달려야 했다. 주요 개혁과제가 진행될 때마다 검찰 일각에서 불거졌던 '검찰패싱론'이 대표적이다. 박 전 장관의 뜻과는 상관없이 매번 정치적 논란에 휩싸였던 것도 다 그 때문이었다.
검찰의 강력한 반대와 저항 속에 임기를 시작한 조국 전 장관은 검찰개혁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일에 전력을 기울였다. 특히 검찰 직접수사 부서를 대폭 축소하면서 46년 만에 특수부 중심의 검찰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피의사실 공표 금지를 위한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정'의 시행도 공적으로 꼽힌다. 전임 박상기 장관 시절에 이미 확정된 상태였지만 미뤄지고 있던 시행을 즉각 밀어붙였다.
당시 조 전 장관 가족 수사가 진행돼 일부 논란이 있었지만 조 전 장관은 "제 가족 수사가 마무리된 후에 시행하겠다"는 카드로 반대를 넘어섰다.
하지만 내정자 시절부터 거세지고 있던 검찰의 반발과 장관 가족에 대한 먼지털이식 수사는 조 전 장관을 견딜 수 없는 곳까지 몰고 갔고 결국 취임 한달여 만인 지난해 10월 14일 검찰개혁안을 발표한 뒤 장관직을 물러났다. 검찰개혁을 완수할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결국 "검찰개혁의 불쏘시개 역할은 여기까지"라는 말만 남기고 퇴장하고 말았다.
안경환 후보자까지 포함해 장관 세명을 검찰이 갈아치우자 검찰의 위세는 하늘을 찔렀다. 조 전 장관이 물러나고 김오수 차관 체계가 계속되는 석달여 동안 검찰은 청와대를 세 차례나 압수수색하는 등 거칠 것이 없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윤 총장을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은 없는 듯했다.
하지만 추미애 장관의 경우는 좀 달랐다. 추 장관은 취임과 동시에 '윤석열 사단'으로 분류되는 특수통 검사들을 지방으로 좌천시키면서 기선을 잡았다. 뒤이어 수사·기소 판단 주체를 분리하는 방안을 추진해 검찰의 힘을 뺐다.
'검언유착'과 '한명숙 전 총리 재판에서의 위증교사' 의혹에 대해 적시에 지휘권을 발동해 검찰이 더이상 개혁에 저항할 수 없도록 못을 박아 버렸다. 윤 총장은 매번 '친검' 언론을 앞세워 저항했지만 장관을 당해내지는 못했다.
검언유착과 관련한 지휘권 발동 때에는 윤 총장 측이 법무부 내 고위직 검사들과 '친검찰' 정치권 인사까지 총동원해 예봉을 꺾어보려 했지만 모두 불발됐다. 결국 윤 총장은 "장관의 지휘권은 형성권"이라며 발동 직후 이미 효력을 발생했다는 말로 백기투항을 선언해야 했다.
윤석열 총장의 거취는?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기세등등했던 윤 총장도 수세에 몰린 모양새다.윤 총장 자신부터 장모와 부인의 주가조작·사기 의혹에 시달렸고, 결정적으로 '검언유착 의혹'이 발목을 잡았다.
이동재 전 채널A 기자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비위 의혹을 취재하기 위해 이철 전 벨류인베스트 대표를 협박했다는 이른바 '검언유착'의 한쪽 편에는 윤 총장의 최측근인 한동훈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이 서 있다.
윤 총장은 당초 대검 감찰부가 시작한 사건을 대검 인권부로, 결국에 서울중앙지검으로 재배당하며 수사를 무마하려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한 모양새가 됐다. 수사에 별 뜻이 없을 것으로 보였던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가 결정적인 증거들을 확보한 것이 직접적 계기가 됐다.
수사초기(6월 4일) '최측근이 관여됐기 때문에 손을 떼겠다'고 했던 윤 총장은 수사상황이 심상찮게 전개되자 전문수사자문단을 독단적으로 소집하려 했다가 15년 만의 지휘권 발동이라는 사태를 맞았다.
윤 총장이 한 검사장을 비호하기 위해 무리를 한다면서 검찰 내부에서조차 불만이 터져나왔다. 검경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등 현안이 막중한 상황에서 측근을 지키려다 쥐고 있던 패마저 모두 날려버렸다는 지적이었다.
지난 2월 한 차례 인사폭풍에서 살아남았던 윤 총장의 수족도 7월 중으로 단행될 것으로 보이는 검찰 고위직 인사에서는 살아남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윤 총장으로서는 사면초가인 셈.
이 때문에 7월 정기인사 이후 윤 총장이 거취를 밝힐 것이라는 예상까지 나오고 있다.
윤 총장의 사퇴는 곧 '검찰개혁'의 물꼬를 트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되지만 '누구 좋으라고 사퇴하느냐'는 것이 윤 총장의 의중인 것으로 알려진 만큼 가능성은 낮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대체적 견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