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손' 비건 방한 일정 마무리…출구 못 찾은 한반도 비핵화 (종합)

2020-07-09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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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美 국무 부장관, 2박3일 방한 일정 끝내고 日 이동

외교부 '강경화·조세영·이도훈', 靑 '서훈' 등과 공식 면담

지난해 방한 때 이뤄졌던 통일부 인사와의 접촉 요청 無

방한 목적 '대북 메시지' 발신보다 '한·미 동맹' 강화 초점

'대북 비둘기파' 비건, 北 최선희 겨냥 이례적 강경 메시지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정책특별대표가 8일 오전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한·미 북핵수석대표 협의를 하고 있다. [사진=외교부 사진공동취재단]


가뭄처럼 메말랐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단비’를 내려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의 2박 3일 방한 일정이 9일 오후 마무리됐다.

비건 부장관의 방한은 11월 미국 대통령선거 전 제3차 북·미정상회담 개최 가능성 언급과 함께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결과는 ‘대화가 필요하다’는 원론적인 입장 발표에 그치면서 교착국면에 빠진 한반도 비핵화 출구를 또다시 찾지 못했다.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나오게 할 ‘미끼’인 새로운 셈법은 물론, ‘남북 협력의 걸림돌’ 한·미워킹그룹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오히려 비건 부장관은 이번 방한 목적을 ‘동맹 만남’이라며 대북메시지 발표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미국 국무부가 비건 부장관 방한 목적을 ‘북한 FFVD(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 논의’라고 밝힌 것과 비교되는 행보다.

이를 두고 일부 전문가들은 비건 부장관 방한 전부터 북한이 계속해서 대화 거부 의사를 드러내고, 미국이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견인할 수 있는 ‘새로운 셈법’을 제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을 언급했다.

이상만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북한이 대화 거부 의사를 드러내는 상황에서 협상 재개 등 전달할 대북 메시지가 없으니 초점을 ‘한·미 동맹’으로 돌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정부 관계자는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전파 위험 속에서도 방한을 감행한 것 자체에 의미를 뒀다.

이 관계자는 “그만큼 한국이 미국에 중요한 국가라는 것을 의미한다”며 “그런 차원에서 비건 부장관의 이번 방한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서훈 국가안보실장이 9일 청와대에서 방한 중인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와 면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비건, 2박 3일 간 ‘한·미 동맹’ 강조만···통일부 인사 면담 無

비건 부장관은 한국에 머무는 2박3일 동안 방한 때마다 찾았던 통일부도 찾지 않고, ‘한·미 동맹’만 강조했다.

통일부에 따르면 미국 측은 이번 방한에서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물론 서호 통일부 차관 등 통일부 인사 접촉을 요청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방문 때에는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과 오찬을 하며 정부의 독자적인 남북 협력 방안 설명을 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외교부, 청와대만 방문하고 일본 도쿄로 이동했다.

비건 부장관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만나 한·미 동맹을 확인하고,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해 양국이 공조하기로 뜻을 모았다.

전날 조세영 외교부 제1차관과의 제8차 한·미 외교차관 전략대화, 카운터파트(대화상대방)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의 한·미 북핵수석대표 협의 결과와 일맥상통한 내용으로 새로운 것은 없었다.

서 실장은 비건 부장관과 70분간 대화에서 “굳건한 한·미 동맹은 우리 외교·안보 정책의 근간이다. 한·미 간 긴밀한 소통을 지속해 나가자”고 제안했고, 비건 부장관도 이에 동의했다.

한반도 정세와 관련해선 비건 부장관은 전날과 같은 기조로 “북·미 대화 재개 중요성을 강조, 한국 정부와의 긴밀한 공조 체제를 유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양국 현안인 제11차 한·미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협상 등에 대해서도 전날과 같은 “조속히 마무리하자”는 입장을 내놨다.

앞서 조 차관과 비건 부장관은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상, 코로나19 대응, 한반도 문제와 지역정세, 글로벌 이슈 등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한·미 동맹 재활성화에 공감했다.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왼쪽)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 [사진=연합뉴스]

 
◆ ‘오락가락’ 北카운터파트에 뿔난 비건···“최선희 사고방식 낡아”

‘한·미 동맹’을 방한 목적으로 내세우며 대북메시지를 자제하고, ‘대북 비둘기파’로 알려진 비건 부장관이 북한에 이례적으로 강경 메시지를 내 향후 북·미 대화 향방에 관심이 쏠린다.

비건 부장관은 북한을 향해 자신의 카운터파트를 지정하고 비핵화 협상 재개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그간 북측 카운터파트로 관측된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에 대해 “낡은 사고방식에 갇혀있다”고 엄중 비판했다.

외교가에 따르면 현재 미국 정부의 대북 정책을 총괄하는 비건 부장관의 북한 측 카운터파트가 현재 불분명한 상황이다.

비건 부장관은 대북특별대표를 맡은 후 지난해 1월 21~23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최 부상과 2박3일간 ‘합숙 담판’을 벌였다. 이후 두 사람은 상호 간 카운터파트로 인식됐다.

비건 부장관은 지난해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직전 김혁철 북한 국무위원회 대북특별대표 등과 평양에서 만나 의제 조율에 나서기도 했다.

이후 ‘하노이 노딜’과 지난해 10월 ‘스톡홀름 노딜’이 이어지면서 한반도 긴장 수위가 높아지자 비건 부장관은 지난해 12월 15~17일 2박3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았다.

이때 비건 부장관은 북측의 카운터파트를 겨냥해 ‘깜짝 판문점 회동’을 제안했다. 이를 두고 비건 부장관이 최 부상을 향해 발신한 메시지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비건 부장관은 ‘스톡홀름 노딜’ 이후 자신의 북측 카운터파트가 불분명한 상황에 불만을 품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스톡홀름에서 열린 북·미 실무회담에서 비건 부장관은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와 협상했다.

비건 부장관은 전날 한·미 북핵수석대표 협의 진행 후 약식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을 향해 자신의 카운터파트를 임명해달라고 요구하고, 최 제1부상에 대한 비판 목소리를 냈다.

최 부상과의 추가 협상에 선을 긋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창의적인 해법과 자격을 갖춘 카운터파트를 새로 임명해달라고 요구한 셈이다.

이 교수는 “비건 대표가 부장관으로 승진하면서 최 부상보다 레벨이 높아졌다”면서도 “북한으로서는 결국 (비건 대표의 카운터파트로) 최 부상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북한에서 대미 정책을 총괄하는 핵심 부상이 최 부상 아니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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