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최숙현 선수를 죽음으로 내몬 것은 사람일까, 시스템일까

2020-07-02 08:53
  • 글자크기 설정

'역대 최대규모 예산' 대한체육회, 스포츠인 권익은 여전히 제자리걸음

'엄마 사랑해,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
 

팀 관계자의 폭행, 폭언에 시달리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고 최숙현 선수.


트라이애슬론은 수영과 사이클, 마라톤을 합친 종목이다. 최숙현 선수는 고등학생이던 지난 2015년부터 태극마크를 달았을 정도로 될 성 부른 떡잎이었다. 그리고 지난달 26일, 최숙현 선수가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전 소속팀에서의 가혹 행위를 신고한 뒤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진다. 유족은 전 소속팀 경주시청에서 상습 폭행과 괴롭힘, 갑질 등을 당하며 선수로서의 미래가 무너졌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최 선수는 침묵하는 피해자가 아니었다. 그는 항상 피해 녹취록을 모아왔고, 여기에는 그가 겪은 가혹 행위가 적나라하게 담겨 있었다.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맞았다"

"체중 다 뺐는데도 욕은 여전하다, 하루하루 눈물만 흘린다"


체중 조절을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폭언, 폭행, 가혹행위에 시달렸다는 최숙현 선수. 그의 훈련일지 곳곳에는 괴로웠던 지난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가혹행위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경주시청 철인 3종 팀 관계자는 심지어 최 선수에게 트렌스젠더를 닮았다, 남자 많이 만난다는 식으로 비하하는 발언까지 일삼았다고 한다.

하지만 최 선수는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섰다. 올 4월 경주시청 소속 선수 및 관계자로부터 폭행과 폭언을 당했다고 대한체육회 스포츠 인권센터에 신고도 했다. 하지만 대한체육회, 대한철인3종경기협회, 경북체육회 등은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무력감을 느낀 그는 지난달 26일 새벽, 선수 숙소에서 결국 스스로 짧은 생을 마감해야 했다. 
 

이용 미래통합당 의원이 공개한 고 최숙현씨의 마지막 메시지.
 

한편 평창동계올림픽 봅슬레이·스켈레톤 국가대표 감독 출신으로 유명한 이용 미래통합당 의원은 1일 서울시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철저한 수사와 가해자들의 처벌을 촉구했다. 이 의원은 이날 “대한체육회, 대한철인3종경기협회, 경북체육회, 경주시청, 경주경찰서 그 누구도 고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며 “철저한 수사와 가해자들의 엄중 처벌을 촉구한다. 고인에 폭언과 폭행을 일삼은 자들이 있다면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그 사람들'은 극단적 선택을 한 선수와 같은 직장운동부에 속한 경주시청 감독과 팀 닥터, 일부 선수들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한체육회 스포츠 인권센터에 폭행·폭언에 대해 신고를 하고 조사를 독촉했으나 하염없이 시간만 끌었다”며 “대한체육회와 대한철인3종경기협회에 진정서를 보내봤지만 아무런 사후조치가 없었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이용 의원이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트라이애슬론 사망 사건에 대한 관계기관의 철저한 조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에 대한체육회는 1일 입장문을 내고 조속하고 엄중한 조처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검찰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사건 조사를 조속히 마무리하고 대한철인3종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를 통해 관련자들에게 엄중한 조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이번 사건에 미온적으로 대처하거나 은폐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클린스포츠센터와 경북체육회 등 관계 기관의 감사와 조사도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늘 듣던 비슷한 말이다. 
 

지난 1일, 대한체육회가 최숙현 선수의 사망과 관련해 입장문을 게시했다. [사진=대한체육회 홈페이지]


한편 지난해 연말, 대한체육회는 국민체육진흥기금 약 3799억원 및 체육회 자체 예산 140억원에 대한 예산안을 의결했다. 특히 내년 체육회 정부 기금 예산은 올해 대비 483여억원이 증액된 것으로, 2017년 이기흥 회장 취임 이래 역대 최대 규모였다. 하지만 고통받는 청년 한 명의 목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조직을 만들기엔 턱없이 부족했던 금액이었을까. 2009년부터 스포츠인 권익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폭력 예방교육, 정서지원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왜 이런 사건이 도무지 낯설지 않은 것일까.
 

[사진=연합뉴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