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제리를 밀어낼 힘이 없었다. 제리가 이런 나를 만들었다." 1970∼8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주 일대에서 살인·강간을 저지른 희대의 연쇄 살인마 조지프 제임스 드앤젤로가 45년 만에 범죄를 시인하며 남긴 말이다. '제리'라는 가상의 악마적 인격에 죄를 뒤집어 씌운 것이다. 드앤젤로의 말은 얼마전 잡혔던 n번방 사건의 주동자 조주빈의 발언과 닮았다. 그는 경찰에 잡힌 뒤 "악마의 삶을 멈춰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남겼다. 그러나 수많은 여성을 고통으로 밀어넣은 삶은 조주빈의 삶이지, 악마의 삶은 아니다. 성경이나 파우스트에도 나오지만 악마의 목적은 악행이 아니라 인간을 유혹해 타락시키는 것이다. 영혼을 팔지 말지 선택하는 것은 언제나 인간이다. 독일에서도 얼마전 n번방과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주동자는 더러운 삶을 살아온 대가로 10년 징역형을 받았으며, 무기한 정신병원에 감금됐다. 조주빈의 삶에는 얼마나 무거운 형벌이 매겨질지 자못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