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 당시 벌어진 대학살의 피해자들이 묻힌 거대한 무덤을 발굴하는 장면을 목격했어요. 땅을 파헤치자 수많은 작은 뼈가 보였죠. 법의학자들은 ‘피해자 가운데 임산부가 있었고 작은 뼈는 태아의 것이다’고 말했죠.”
긴 침묵이 흘렸다. 이전까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이 순간만큼은 한 마음이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저자는 집단 학살이 자행된 36년에 걸친 내전을 종식하는 평화협정 실행 과정을 돕게 됐다. 잔혹한 갈등으로 갈라진 지도자들이 모였다. 가톨릭교회 인권 운동가였던 로널드 오치에타의 생생한 증언은 서로의 거리를 좁히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지은이는 이 같은 상황을 ‘실존 체험’이라고 명명했다.
저자 카헤인은 책 속에서 “‘실존체험’이 이뤄지는 집단에서는 사람들 간의 경계선이 사라져서 개인이 집단이나 시스템 전체의 관점해서 말하게 된다”며 “다른 사람들도 집단이나 시스템 전체의 의견에 귀 기울이는 것이 된다”고 설명했다.
‘갈등 해결 전문가’로 불리는 지은이는 지난 25년 동안 전 세계 50여 개 국가의 기업 임원과 정치인·군 장성·게릴라·공무원·노조원·사회 운동가·성직자들과 협력했다. 그 과정에서 갈등과 분쟁이라는 난제는 전문가가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문제의 당사자들이 단계적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풍부한 사례가 인상적인 책이다.
메디치미디어는 “그의 저서는 두 명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 넬슨 만델라와 후안 마누엘 산토스에게 극찬을 받았을 뿐 아니라 공공 부문·비즈니스·시민단체 지도자들이 꼭 읽어야 할 책으로 손꼽힌다”고 소개했다.
저자는 ‘스트레치 협력’을 권한다. 모든 사람의 입장이 타당하고 가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함께 배우는 경험을 통해 진전을 이루고, 스스로가 문제에 일조하고 있다는 점을 깨닫는 것이다.
카헤인은 ‘주장’과 ‘참여’를 교대로 활용하는 방법, 생각이 다른 타인과 실질적인 진전을 이룰 수 있는 대화법, 적이 아니라 자신을 바꾸는 행위를 통해 변화를 유도하는 방법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메디치미디어’는 “‘협력의 역설’은 전통적인 협력의 프레임을 확 뒤집은 ‘스트레치 협력’을 제안한다”며 “전통적인 협력이 하나의 로드맵을 따라 모두 함께 전진하는 것이라 하면, ‘스트레치 협력’은 여러 개의 팀이 각자의 뗏목에 올라 거친 강을 타고 나아가는 것에 가깝다”고 비교했다.
무엇보다 이 책은 협력을 위해서는 내가 아니라 상대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 역시 문제의 일부임을 깨닫게 한다.
이 책의 원제목은 ‘적과의 협력(Collaborating with the Enemy)’이다. 카헤인은 때론 적이 협력을 위한 최고의 스승일 수 있다고 말한다. 상대를 파멸해야 할 적으로 여기는 ‘적화 증후근(enemyfying syndrome)’을 멈추는 데서 협력의 희망이 싹튼다. 저자는 책 맨 앞에 한 문장을 적었다.
“내 모든 적이자 스승에게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