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국의 뷰]​ 오늘은 '거북선의 날'...23전23승 이순신 병법 탄생의 비밀

2020-05-29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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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량'의 포스터.]



거북선은 인문학적인 사유(思惟)로 이뤄낸 '창의적 전투력' 모델

428년전 오늘(1592년 5월29일) 낯선 배가 남해 바다에 출격했다. "사천 선진리성 부근 선창에 왜(倭)가 주둔하고 있소." 경상 우수사 원균은 이순신 장군에게 전갈을 넣었다. 이순신은 함대를 이끌고 사천으로 출격한다. 곤양에서 나오는 왜군 정탐선 한 척을 발견하고 격침했다. 그리고 곧장 사천 선창으로 들어갔다. 왜는 몰려오는 조선 함대를 보고는 수비 체제를 갖췄다. 이순신은 갑자기 퇴각을 명령했다. 왜군은 도망가는 조선 함대를 쫓아 추격해 왔다.

조선이 물러난 해역은 판옥선(조선 수군의 대표적인 전투선)이 활약하기 좋은 장소였다. 적을 이 일대로 유인한 뒤 이순신은 신형 전투선인 거북선을 최전방에 내세우면서 각종 화포로 사격을 시작했다. 이어 판옥선으로 총포를 쏘며 적선 12척을 격침시켰다. 이것은 왜선 23척을 물리친 사천해전이자, 거북선의 놀라운 데뷔전이었다. 23전 23승이라는 세계 해전사에 유례 없는 이순신 해전술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순간이기도 했다.

29일 오늘 네이버 검색창 왼쪽에는 NAVER란 파도를 타고 있는 거북선 이미지가 보인다. 이순신의 사천해전 승전일이자 거북선 첫 출격의 날을 기념하는 '기념일 로고 프로젝트'의 하나다. 세상에 거북선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또 아는 사람도 없다는 얘기가 있다. 이순신이 왜 하필 거북선을 만들었는지, 그가 어떻게 전쟁 중에 이 전투선을 만들게 되었는지 살펴보는 것도 이런 '뜻깊은 날'의 기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내륙의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인문학적인 소양을 닦은 그가 바다에 나아가 해전에서 명성을 떨치는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놀랍다. 하나는 왜의 기습적인 침략으로 당황한 조선군 진영의 위기 상황에서 작동했던 빼어난 내부 리더십이고, 또 하나는 뭍에서 자라나고 물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았을 그가 새로운 전장(戰場)에서 강력한 적을 맞아 이뤄낸 엄청난 전과(戰果)다. 이런 궁금증을 꿰는 하나의 키워드가 '거북선'이다. 임진왜란의 최고 '히트제품'이라고 할 수 있는 전투선(船)이다.

거북선을 과연 이순신이 직접 만들었느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이미 태종 대의 기록에도 구선(龜船)이 보이며 이 거북선과 왜선(倭船)이 싸우는 것을 왕이 구경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기록의 맥락으로 보면 그때에도 거북선에 대해 왕이나 기록자가 신기해하는 느낌은 없어보인다. 즉 그 이전부터 거북선은 계속 제조되고 있었다는 얘기이다. 이순신이 거북선을 구상하고 만들 때 그가 그것을 무(無)에서 유(有)로 창안한 것이 아니라, 이미 있던 것에서 필요에 맞게 리폼해서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

불리한 전쟁에서 이기는 게임 고민

이순신이 거북선을 만들 수 있었던 비밀은 어디에 있을까.  거북선은 우연히 나온 아이디어가 아니다. 우선 이순신은 전쟁의 환경을 읽었다. 이 전쟁은 조선이 먼저 시작한 전쟁이 아니기에 방어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전쟁을 준비해서 공격해오는 쪽과 그것을 막아내야 하는 쪽은 사기(士氣)와 심리적인 부담 측면에서 상당히 차이가 있다. 전력(戰力)에서 상당히 우세하더라도 심리적인 위축과 당황 때문에 판단 착오와 행동 실수를 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조선의 경우는 일본보다 무기와 병력이 훨씬 열세였다.

이순신은 이런 불리한 판세를 극복하기 위한 작전을 짰을 것이다. 우선 이쪽의 병력 열세를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군의 상황이 노출되지 않아야 한다. 거북선은, 배의 위를 뒤덮은 것은 이런 고려이다. 배 위에 몇 명이 타고 있는지 혹은 무기의 상황은 어떤지를 파악할 수 없게 하라. 물론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철판을 사용하는 것은 이순신이 기존의 거북선에서 발전시킨 아이디어였다. 적은 화포의 위치를 알지 못하고, 접전에서 승선을 시도하다가 검불 속에 숨겨놓은 창과 갈고리에 찔려 다시 물속으로 빠지기 일쑤였다. 이 괴물같은 배는 적진 깊숙히 파고들어 왜의 전열을 교란시켰다.

병선(兵船)의 위를 완전히 덮어라. 이것은 웬만한 무장(武將)들도 낼 수 있는 아이디어이다. 하지만 그것의 형상을 거북으로 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이순신은 역사를 충실히 공부한 만큼 거북선이 이미 존재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임진란 당시에는 물론 그런 배는 존재하지 않았다. '구선도설(龜船圖說)'이라는 책 하나가 전할 뿐이었다. 그때 부하 하나가 거북선에 관한 상당히 구체적인 설계도를 그려서 들고 왔다. 부하는 만들기는 까다롭지만 전쟁에서 위력을 떨칠 수 있을 거라고 역설했을 것이다.
 

[영화 '명량'의 한 장면.]



지금 이 바쁜 와중에 웬 몽상인가

이순신은 거북선을 만드는 문제를 놓고 내부토론을 벌인다. 대부분의 장수들은 코웃음을 쳤다. 부관 김운규는 좌수사가 철없이 우스꽝스런 짓을 한다고 대놓고 씹었다. 그외에도 “그것은 시간과 전력만 빼앗길 뿐 현실성이 없다”고 말하며 말리는 분위기였다. 이때 이순신의 최측근인 송희립과 녹도의 만호였던 정운이 한번 해보자고 말한다. 이순신은 독단으로 결정하지 않고 여러 의견들을 들은 뒤에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특별한 것이 필요하며, 거북선이 사기를 돋울 수 있을 거라는 여론을 만들어낸다.

이순신은 부하들에게 뭐라고 설득했을까. 우선 아까 말한 ‘전쟁의 불리한 점’을 설명했을 것이다. 방어전의 불리함과 해전 자체의 숙련도 차이를 거론하며 같은 방식으로 전쟁을 하면 백전백패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아군의 상황을 숨기면 일단 전쟁의 불리함을 극복할 수 있다. 거기다가 이런 설명을 한다. “생각해보라. 거북선은 용의 머리와 거북의 등을 가지고 있다. 불을 뿜는 용두는 적에게 공포감을 줄 수 있으며, 거북등은 절대로 뚫을 수 없는 난공불락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용과 거북은 전설적이고 신성한 동물이며 결코 죽지 않는다. 왜적들은 처음에는 저것이 무엇인가 놀라다가 나중에는 그것의 위력을 맛보고는 그것의 형상만 보여도 겁을 집어먹고 도망가거나 전열이 흔들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미지전력(戰力)’이다. 우리는 거북선이 지닌 실력에 더하여 거북선이 지닌 상징을 내세워 전투력을 두 배 세 배로 만드는 것이다.” 이같은 이순신의 전략은 맞아떨어진다.

'이미지전력'으로 적에게 공포감

이순신이 역사적인 기록에서 거북선을 찾아낸 것, 그리고 부하의 모험적인 의견을 과감히 채택한 것, 예상되는 냉소주의를 차분히 설득해나감으로써 단결력을 재정비한 것, 그리고 물질 만의 전쟁이 아니라 ‘상징’을 활용한 전력 극대화를 꾀한 것. 이것은 바로 그가 인문학 베이스를 지녔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처음에 거북선은 겨우 세 대였지만, 왜군은 거북선이 곧 이순신이며 그것은 필승의 괴물이라고 믿으면서 공포를 키웠다. 이순신의 이런 창의적 아이디어와 수평적인 리더십은, 그가 오랫동안 인문적 수업을 받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수도 있다. 그가 꼼꼼하게 기록한 ‘난중일기’ 또한 단순한 기록을 넘어서서 전쟁의 흐름과 문제적 상황을 성찰하는 철학적이고 인문적인 본능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무과에 합격하면서 인문적 소양은 접어두었다고 본인조차도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절대절명의 위기상황과 문제적 포인트에서 직관과 통찰의 본능이 튀어나온 것이다.

요즘 유행어가 된 ‘문화콘텐츠’란 말은 거북선에게 잘 어울리는 말이다. 이순신은 거북선으로 다중적인 위기를 극복해내는 역사적이고 드라마틱한 선행 모델을 우리에게 남겨놓았다. 동시대 사람들조차도 이순신이 왜 위대한지 제대로 알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는 탁상공론처럼 인식되기도 하는 유학의 인문학적 사유를, 전쟁 리스크에 실용적으로 활용했다. 그 실체가 문사철(文史哲)이 빛을 발한 거북선이다. 위기를 창의적이고 합리적이며 조직적으로 해결하는 힘. 이것이 후세의 우리에게 거북선 리더십이 말해주는 핵심 가치가 아닌가.

                         이상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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