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m 디지털 화폭에 펼쳐진 8K 터치 금강산을 만난다

2020-05-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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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디지털 실감영상 전시

모션 캡처·프로젝션 맵핑 기술 등 활용

고구려 벽화·그림·조각 등 생생히 구현

5G시대 새로운 문화재 체험 기회 제공

한 관람객이 ‘태평성시도’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버튼을 계속 누르면서 이쪽으로 와봐. 화분을 꽃집까지 날라야지.”

아이들은 한참 동안 ‘태평성시도’ 앞을 떠날 줄 몰랐다.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폭 8.5m 크기의 8K 고해상도로 구현된 조선 후기 태평성시도(작가미상)는 시간을 뛰어넘어 아이들과 소통했다.
서울 용산구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은 지난 20일부터 ‘디지털 실감 영상관’을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관람객들은 국립중앙박물관 네 개의 상설전시공간에서 실감 콘텐츠를 경험할 수 있다.

조선 후기 사람들이 생각했던 이상적인 도시 풍경을 8폭 병풍에 그린 그림이다. 전시 때마다 인기가 많은 작품이다. 하지만 태평성시도를 계속 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우리의 옛 그림은 빛에 약해 오랜 기간 전시할 수 없었다. 회화 전시실이 어두운 이유다. 또한 3~4개월 정도 전시를 한 후에는 반드시 휴지기를 가져야 했다.

기술은 이런 물리적인 단점을 보완했고, 박물관 2층 ‘디지털 실감 영상관’에서 8K 고해상도로 구현된 태평성시도를 만날 수 있게 됐다. 작품을 관람하던 한 관람객은 “이렇게 밝은 곳에서 그림을 자세히 볼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말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수년간 진행해온 고화질 데이터 축적 사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은 73억 화소까지 정밀 스캔이 가능한 장비를 보유하고 있다. 유물의 크기와 조건에 따라 화소는 달라진다. 이번에 선보인 태평성시도도 이런 데이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장은정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은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를 겪으면서 문화재 원본이 훼손됐을 때 기초 데이터를 보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알 수 있었다”며 “고화질 데이터 축적 사업을 꾸준히 해왔기 때문에 실감형 콘텐츠 제작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실감형 콘텐츠 안에는 기술뿐만 아니라 문화도 담았다. 태평성시도에는 조선 후기 삶의 모습이 오롯이 들어 있다. 등장인물만 2100명이 넘는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각 폭마다 장원급제, 목화솜 타기, 화분 운반 등 관람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이벤트를 마련했다. 관람객들은 자연스럽게 화면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표정, 생김새, 움직임들을 관찰하며 태평성시도의 매력에 빠져 들게 된다.

실감 콘텐츠는 실제로 보기 힘든 풍경을 눈앞에 선사한다. ‘디지털 실감 영상관 1관(1층 중근세관 내)’과 ‘디지털 실감 영상관 3관(1층 고구려실내)’은 ‘프로젝션 맵핑’ 기술로 공간을 채웠다. 프로젝션 맵핑 기술은 대상물의 표면에 빛으로 이루어진 영상을 투사해 변화를 줌으로써 현실에 존재하는 대상이 다른 성격을 가진 것처럼 보이도록 한다.

영상관 1관에서는 조선후기 화가 정선이 금강산을 유람하고 그린 보물 제1875호인 ‘신묘년풍악도첩’ 등을 소재로 한 ‘금강산에 오르다’부터 정조의 화성 행차를 다룬 ‘왕의 행차, 백성과 함께 하다’, 불교의 사후 세계관을 보여주는 ‘영혼의 여정, 아득한 윤회의 길을 걷다’, 도교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요지연도’를 토대로 만든 ‘신선들의 잔치’를 두루 만날 수 있다. 4종류의 고화질 첨단영상을 폭 60m, 높이 5m의 3면 파노라마를 통해 감상할 수 있다. 무형문화재 전수자의 모션 캡처를 통해 만든 영상은 말 그대로 실감났다.

바로 옆에 있는 '나만의 서재, 책가도'는 관람객 참여형 콘텐츠다. 조선 후기 책가도는 책과 문방구뿐 아니라 삶의 행복을 기원하는 여러 물건을 담았다. 관람객들은 태블릿 PC를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들로 책장을 채울 수 있다. 

영상관 3관에서는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지정된 고구려 벽화무덤을 볼 수 있다. 대부분 중국과 북한에 있어 보기가 쉽지 않은 데다, 현지에서도 보존 등의 문제로 일반인들이 쉽게 드나들 수 없는 곳이다. 이번 전시에는 고구려 벽화무덤을 대표하는 안악3호무덤, 덕흥리 무덤, 강서대묘를 재현했다. 무덤 속에 실제로 들어간 것과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현실적으로 만들었다. 

1층 복도(역사의 길)에 있는 경천사 십층석탑은 이번 실감 콘텐츠 체험관의 백미다. 낮에는 증강현실 기술을 통해 각 면의 조각을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다. 각 조각의 의미가 하나씩 펼쳐진다. 일몰 후에는 석탑의 각 층에 새겨진 조각과 그 안에 담긴 의미와 숨은 이야기들을 외벽영상(미디어파사드) 기술로 구현한 작품을 특별히 만나볼 수 있다. 일몰 후에만 관람할 수 있는 경천사 십층석탑 외벽영상은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오후 8시에 상영된다. 상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제작사 시공테크, 엑스오비스, 모팩, 매크로 그래프 등이 참여했다.

장 학예연구관은 "기존 박물관이 제공했던 것뿐만 아니라 앞으로는 새로운 경험을 즐기며 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고구려 벽화무덤.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정부는 지난해 9월 ‘콘텐츠산업 3대혁신전략’을 통해 범정부 차원의 실감 콘텐츠산업 육성 전략을 발표했다.

이를 위해 문체부는 2019년부터 국립문화시설이 소장하고 있는 문화자원을 실감 콘텐츠로 제작하고 관객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체험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 첫 번째 결과물이 국립중앙박물관의 ‘디지털실감영상관’이다.

2020년 예산을 보면 문체부가 실감형 콘텐츠에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실감형 콘텐츠 산업 육성 예산은 2019년 261억원에서 2020년 870억원으로 대폭 커졌다. 실감형 콘텐츠 제작지원 예산도 2019년 189억원에서 2020년 253억원으로 늘어났다.

전시 개막행사에 참석한 박양우 문체부 장관은 “박물관이 5세대 이동통신(5G) 시대에 가장 유망한 가상·증강현실(VR·AR) 등 실감기술과 만나 국민들에게 그동안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우리 문화유산의 새로운 모습과 체험 기회를 선보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박 장관은 “그간 지속적으로 성장해온 문화기술(Culture Technology)을 국립문화시설에 접목해 실용화한 첫 시도”라며, “앞으로도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의 출현과 성장이 반복될 텐데, 문체부는 그러한 기술을 활용해 국민 문화 향유의 폭과 깊이를 확장시키는 원동력으로 삼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실간형 콘텐츠 체험관의 백미 ‘경천사 십층석탑’. 증강 현실 기술 통해 각 면의 조각을 살펴볼 수 있다.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디지털 실감 영상관’ 전시를 찾은 관람객들이 조선후기 화가 정선이 금강산을 유람하고 그린 보물 제1875호인 ‘신묘년풍악도첩’ 등을 소재로 한 ‘금강산에 오르다’를 감상하고 있다.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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