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올해 4월 기준 국내 취업준비생(취준생)은 약 117만명입니다. 누구나 이 신분을 피하진 못합니다. 준비 기간이 얼마나 길고 짧은지에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취준생이라 해서 다 같은 꿈을 가진 것도 아닙니다. 각자 하고 싶은 일, 잘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기 위해 노력합니다. 다만 합격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것만은 같습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달려가는 취준생들에게 쉼터를 마련해주고 싶었습니다. 매주 취준생들을 만나 마음속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응원을 건네려고 합니다. 인터뷰에 응한 취준생은 합격(pass)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P씨로 칭하겠습니다.
네 번째 P씨(28)는 10년째 ‘중동아시아’의 매력에 푹 빠져 중동 진출을 꿈꾸는 취준생이다. P씨는 2년 전 중동지역으로 진출한 회사에 취업해 현지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국제 정세의 여파로 일자리를 잃고 한국으로 돌아와 현재 다시 취업을 준비 중이다.
석유 화학·건설 등 다양한 분야의 한국 기업들이 중동 현장에 진출해 취업의 폭이 넓어졌다는 말은 옛말이다. 국토교통부와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2020년 5월 기준 중동지역에서 진행 중인 공사 현장은 18개국이 참여한 313곳이며, 파견 근로자는 약 5600여명이다. 2015년 파견 근로자(20개국, 1만2700여명)에 비하면 절반 넘게 떨어진 수치다. P씨는 “기업들이 중동에 많이 진출했었지만 철수가 본격화된 이후 문이 좁다”면서도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일이니 계속 준비할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 뜻밖의 국제 정세로 일자리 잃어···한국에서 '멘붕'
2019년 12월 국회에서 개최된 ‘청년의 희망, 글로벌 진출에서 답을 찾다’ 세미나에서 이연복 한국산업인력공단 국제인력본부장이 제시한 자료에 의하면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중동지역에 취업한 한국인은 692명으로 전체 해외 취업자 1만 5712명 중 4.4%에 불과했다.
중동지역 내 한국인 취업자 수가 적은 이유는 기업이 중동 관련 사업 경영 방식을 자체 운영에서 외주로 틀었기 때문이다. 한국가스공사도 지난 2015년 중동 두바이 지사 폐지 이유로 "단순한 검수 업무를 위해 해외 지사를 운영하는 것보다 외주를 주는 것이 비용 면에서 효율적이라는 경영 판단"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P씨는 “기업들이 이 분야에서 채용을 많이 하지 않지만, 다른 분야에 비해 경쟁률은 높지 않다”며 “그만큼 준비된 사람이 해내는 분야”라고 표현했다. 사람이 적다 보니 취업 관련 정보는 커뮤니티 등 온라인보다 선배, 교수나 대사관을 통해서 많이 얻는다. P씨는 “시장이 좁고 공부하는 게 한정적이다 보니까 인프라가 부족한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래도 취업에 성공했었다. 2년 계약직이었지만 꿈에 그리던 중동지역 현장에서 일을 할 수 있었다. 석유 화학 관련 기업에서 통역과 자문을 담당했는데 즐거웠다고 한다. 매일 아랍인을 만나고, 그들의 문화를 즐겼다. P씨는 "(중동에선)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집에 초대하는 문화가 있어서 아랍 가정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 친구가 모든 걸 털어서 대접해줬다"며 "옛 페르시아 문화의 신비로움과 좋은 사람들의 조화가 흥미롭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생활은 6개월 만에 끝났다. 국제 정세가 악화됐기 때문이다. 2017년부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이란 제재를 발표했고 미국의 우방국인 한국 소속 기업들도 각종 공사 수주 계약을 해지하는 등 철수를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계약직인 P씨도 해고 통보를 받았다.
한국에서 다시 취업을 준비했지만 문은 여전히 좁았다. 계속된 기다림에 '중동 진출' 꿈을 포기하고 다른 분야로 지원했지만 실패하기 일쑤였다. 당시 상황에 대해 P씨는 말 그대로 ‘멘붕’ 상태였다고 표현했다. 멘붕이란 ‘멘탈 붕괴’의 줄임말로 정신력이 약해진 상태를 뜻한다.
P씨처럼 ‘멘붕’에 빠져본 취준생들이 5명 중 2명이라고 한다. 2019년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이 구직자 3612명을 대상으로 ‘2019 하반기 취업을 원하는 기업’을 조사한 결과 ‘취업만 되면 어디든 상관없다’는 응답이 37.6%로 1위를 차지했다. 2위 중소기업(20.9%), 3위 중견기업(16.1%)과 큰 격차를 보인 수치다.
'어디든 상관 없는 이유'로는 절반에 가까운 47%(복수응답)가 ‘빨리 취업을 해야 해서’라고 말했다. 뒤이어 ‘길어지는 구직활동에 지쳐서’(35.7%)가 두 번째로 많은 이유였다.
취업 압박에 쫓긴 P씨도 기계처럼 자기소개서를 준비하고 인·적성시험을 공부했다. 1년 6개월 동안 100군데 넘게 지원했지만 서류심사를 통과한 곳은 2곳에 불과했다. 중동이라는 한 분야만 줄기차게 준비해온 게 독이 된 셈이다. P씨는 “현실이 무서워질수록 자소서를 더 썼어요. 홈페이지도 없는 기업에도 썼는데 떨어졌죠. 한 번이라도 경험해본 직무는 조금만 관련 있어도 다 넣었어요”라고 회상했다.
임민욱 사람인 팀장은 “취업이 어려워 구체적인 목표 기업이나 직무를 정하지 않고 무조건 ‘입사’에만 집중하는 구직자들이 많다”며 “이러한 접근은 ‘묻지마 지원’이나 조기 퇴사로 이어져 다시 구직자로 돌아가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 다시 원래 꿈으로 돌아와···열정 쏟을 수 있는 일 준비
P씨가 원래 꿈을 위해 다시 돌아온 건 면접관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면접관은 P씨에게 “그동안 준비해온 것은 지금 지원하는 직군에 전혀 소용이 없다. 의사가 10년 공부하고 일반 회사원이 되는 꼴”이라고 조언했다.
이 말들 들은 P씨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지난 10년간 한 우물만 파오면서 준비한 자격증, 전공 공부, 경력 등을 떠올리며 ‘내가 이렇게 준비해왔는데 다른 곳에 취업한다면 미련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서 시작했다. 한쪽에 치워둔 중동 언어책을 다시 폈고, 현지어로 된 뉴스를 보기 시작했다. 중동 관련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논문을 참고해가며 공부하는 중이다. 필요하면 여유를 갖고 대학원 진학도 고려 중이라고 한다.
마지막 목표가 뭐냐는 물음에 P씨는 ‘가교’라고 답했다. P씨는 “2년 전 6개월의 경험에서 기업들의 통역, 자문보다 국가 관계의 중요성을 깨달았다”며 “한 기업의 부품보다 국가적으로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이어 “1년 반 동안 꿈을 포기했을 때 할머니가 저만 보면 나가서 일좀 하라고 하셨어요. 결과가 없으니 매일 노는 줄 아셨나봐요. 그래도 저는 안 돌아가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제 가치관과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일을 준비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거든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모두가 자신의 꿈을 이룰 수는 없다. 그렇다고 포기가 정답은 아니다. 임 팀장은 “당장에는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명확한 목표를 잡고 구직에 임하는 것이 만족스러운 직장생활과 성공적인 커리어 관리 등 진정한 ‘취업 성공’을 이루는 지름길”이라고 조언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달려가는 취준생들에게 쉼터를 마련해주고 싶었습니다. 매주 취준생들을 만나 마음속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응원을 건네려고 합니다. 인터뷰에 응한 취준생은 합격(pass)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P씨로 칭하겠습니다.
네 번째 P씨(28)는 10년째 ‘중동아시아’의 매력에 푹 빠져 중동 진출을 꿈꾸는 취준생이다. P씨는 2년 전 중동지역으로 진출한 회사에 취업해 현지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국제 정세의 여파로 일자리를 잃고 한국으로 돌아와 현재 다시 취업을 준비 중이다.
석유 화학·건설 등 다양한 분야의 한국 기업들이 중동 현장에 진출해 취업의 폭이 넓어졌다는 말은 옛말이다. 국토교통부와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2020년 5월 기준 중동지역에서 진행 중인 공사 현장은 18개국이 참여한 313곳이며, 파견 근로자는 약 5600여명이다. 2015년 파견 근로자(20개국, 1만2700여명)에 비하면 절반 넘게 떨어진 수치다. P씨는 “기업들이 중동에 많이 진출했었지만 철수가 본격화된 이후 문이 좁다”면서도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일이니 계속 준비할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2019년 12월 국회에서 개최된 ‘청년의 희망, 글로벌 진출에서 답을 찾다’ 세미나에서 이연복 한국산업인력공단 국제인력본부장이 제시한 자료에 의하면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중동지역에 취업한 한국인은 692명으로 전체 해외 취업자 1만 5712명 중 4.4%에 불과했다.
중동지역 내 한국인 취업자 수가 적은 이유는 기업이 중동 관련 사업 경영 방식을 자체 운영에서 외주로 틀었기 때문이다. 한국가스공사도 지난 2015년 중동 두바이 지사 폐지 이유로 "단순한 검수 업무를 위해 해외 지사를 운영하는 것보다 외주를 주는 것이 비용 면에서 효율적이라는 경영 판단"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P씨는 “기업들이 이 분야에서 채용을 많이 하지 않지만, 다른 분야에 비해 경쟁률은 높지 않다”며 “그만큼 준비된 사람이 해내는 분야”라고 표현했다. 사람이 적다 보니 취업 관련 정보는 커뮤니티 등 온라인보다 선배, 교수나 대사관을 통해서 많이 얻는다. P씨는 “시장이 좁고 공부하는 게 한정적이다 보니까 인프라가 부족한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래도 취업에 성공했었다. 2년 계약직이었지만 꿈에 그리던 중동지역 현장에서 일을 할 수 있었다. 석유 화학 관련 기업에서 통역과 자문을 담당했는데 즐거웠다고 한다. 매일 아랍인을 만나고, 그들의 문화를 즐겼다. P씨는 "(중동에선)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집에 초대하는 문화가 있어서 아랍 가정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 친구가 모든 걸 털어서 대접해줬다"며 "옛 페르시아 문화의 신비로움과 좋은 사람들의 조화가 흥미롭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생활은 6개월 만에 끝났다. 국제 정세가 악화됐기 때문이다. 2017년부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이란 제재를 발표했고 미국의 우방국인 한국 소속 기업들도 각종 공사 수주 계약을 해지하는 등 철수를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계약직인 P씨도 해고 통보를 받았다.
한국에서 다시 취업을 준비했지만 문은 여전히 좁았다. 계속된 기다림에 '중동 진출' 꿈을 포기하고 다른 분야로 지원했지만 실패하기 일쑤였다. 당시 상황에 대해 P씨는 말 그대로 ‘멘붕’ 상태였다고 표현했다. 멘붕이란 ‘멘탈 붕괴’의 줄임말로 정신력이 약해진 상태를 뜻한다.
P씨처럼 ‘멘붕’에 빠져본 취준생들이 5명 중 2명이라고 한다. 2019년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이 구직자 3612명을 대상으로 ‘2019 하반기 취업을 원하는 기업’을 조사한 결과 ‘취업만 되면 어디든 상관없다’는 응답이 37.6%로 1위를 차지했다. 2위 중소기업(20.9%), 3위 중견기업(16.1%)과 큰 격차를 보인 수치다.
'어디든 상관 없는 이유'로는 절반에 가까운 47%(복수응답)가 ‘빨리 취업을 해야 해서’라고 말했다. 뒤이어 ‘길어지는 구직활동에 지쳐서’(35.7%)가 두 번째로 많은 이유였다.
취업 압박에 쫓긴 P씨도 기계처럼 자기소개서를 준비하고 인·적성시험을 공부했다. 1년 6개월 동안 100군데 넘게 지원했지만 서류심사를 통과한 곳은 2곳에 불과했다. 중동이라는 한 분야만 줄기차게 준비해온 게 독이 된 셈이다. P씨는 “현실이 무서워질수록 자소서를 더 썼어요. 홈페이지도 없는 기업에도 썼는데 떨어졌죠. 한 번이라도 경험해본 직무는 조금만 관련 있어도 다 넣었어요”라고 회상했다.
임민욱 사람인 팀장은 “취업이 어려워 구체적인 목표 기업이나 직무를 정하지 않고 무조건 ‘입사’에만 집중하는 구직자들이 많다”며 “이러한 접근은 ‘묻지마 지원’이나 조기 퇴사로 이어져 다시 구직자로 돌아가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 다시 원래 꿈으로 돌아와···열정 쏟을 수 있는 일 준비
P씨가 원래 꿈을 위해 다시 돌아온 건 면접관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면접관은 P씨에게 “그동안 준비해온 것은 지금 지원하는 직군에 전혀 소용이 없다. 의사가 10년 공부하고 일반 회사원이 되는 꼴”이라고 조언했다.
이 말들 들은 P씨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지난 10년간 한 우물만 파오면서 준비한 자격증, 전공 공부, 경력 등을 떠올리며 ‘내가 이렇게 준비해왔는데 다른 곳에 취업한다면 미련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서 시작했다. 한쪽에 치워둔 중동 언어책을 다시 폈고, 현지어로 된 뉴스를 보기 시작했다. 중동 관련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논문을 참고해가며 공부하는 중이다. 필요하면 여유를 갖고 대학원 진학도 고려 중이라고 한다.
마지막 목표가 뭐냐는 물음에 P씨는 ‘가교’라고 답했다. P씨는 “2년 전 6개월의 경험에서 기업들의 통역, 자문보다 국가 관계의 중요성을 깨달았다”며 “한 기업의 부품보다 국가적으로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이어 “1년 반 동안 꿈을 포기했을 때 할머니가 저만 보면 나가서 일좀 하라고 하셨어요. 결과가 없으니 매일 노는 줄 아셨나봐요. 그래도 저는 안 돌아가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제 가치관과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일을 준비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거든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모두가 자신의 꿈을 이룰 수는 없다. 그렇다고 포기가 정답은 아니다. 임 팀장은 “당장에는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명확한 목표를 잡고 구직에 임하는 것이 만족스러운 직장생활과 성공적인 커리어 관리 등 진정한 ‘취업 성공’을 이루는 지름길”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