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대 소송 늘어나는데…"보상금 산정 방식 법제화 해야"

2020-05-1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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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 범위·기여도 모호…기업들 부담

청구시효 등 규제 필요…소송 남발 막아야

#삼성전자 출신 연구원 A씨는 2010년 회사 측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A씨는 1991년부터 1995년까지 삼성전자에서 디지털 고화질(HD) 텔레비전을 개발하며 국내외 38개 특허를 회사 명의로 출원한 바 있다.

그는 "삼성전자가 해당 특허로 625억원의 수익을 얻었지만 2억원의 보상금만 받았다"며 "회사가 185억원을 추가로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삼성전자는 사내 규정에 따라 이미 보상금을 지급했다며 이를 거부했다.

법원은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2부(김현석 부장판사)는 삼성전자에 "A씨에게 회사 수익의 10%인 60억3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삼성전자와 A씨는 4년간의 소송 끝에 법원 조정에 따라 비공개로 합의했다.

직무발명 보상 범위를 두고 노사 사이의 법적 다툼이 늘어나고 있다. 직원들은 발명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달라고 요구하는 한편 기업들은 부담감을 토로하고 있다. 현행 제도가 인정하는 보상금이나 기여도 산정 방식이 비현실적이거나 모호한 부분이 많다는 지적이다.

2018년 특허청과 한국발명진흥회가 공동으로 발행한 '쟁점별 직무발명 최신 판례' 보고서에 따르면 직무발명과 관련된 판결 선고는 2010년 이후 증가 추세다. 2012년 16건에서 2013년 23건, 2014년 22건, 2015년 20건을 기록했다.

보상 판결이 난 21건 중 12건은 보상금 규모가 1억원 미만에 불과했다. 그러나 1억~5억원 7건, 18억원 1건, 60억원 1건 등 '억대 보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도 적지 않다. A씨의 경우처럼 보상금 규모가 큰 사건의 경우 기업에 경영 리스크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견해다.

실제로 '휴대전화 초성 검색' 기술을 개발한 삼성전자 연구원 B씨는 2013년 회사를 상대로 305억원을 보상하라는 소송을 내기도 했다. LG전자 역시 2015년 LTE 관련 기술을 발명한 연구원 출신 C씨에게 1억995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은 바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현재 30여건의 직무발명 보상금 청구 소송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는 직무발명 보상이 발명진흥법으로 제도화 돼 있다. 직원에게 기술개발 의욕을 고취하고 기업 역시 중요한 핵심 기술을 특허로 확보해 경쟁력을 높일 수 있게 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기업들은 직무발명에 대한 판례가 비일관적이고 예측이 어려워 경영의 불확실성으로 작용한다고 보고 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LG전자, LG디스플레이, SK하이닉스, 코오롱인더스트리, KT 등 국내 대기업 7개사가 '직무발명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한 것도 이러한 이유다.

이들은 직무발명의 기여도를 산정하는 법리가 문제점이 많다고 지적한다. 기여도의 정의 자체가 명확하지 않아 기여도와 무관한 요소들이 포함된 수치가 보상금을 정하는 데 적용된다는 것이다. 다수의 기술이 적용된 복합제품의 경우 이러한 측면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다.

보상금 청구와 관련 별도 규정이 없어 민법의 일반채권 청구 시효기간인 10년이 그대로 적용되는 데 대해서도 어려움을 토로한다. 오래전에 퇴사한 직원들이 과도한 보상을 기대하며 소송을 남발한다는 것이다.

직무발명 TF는 이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보상금 산정 법리를 명확하게 법으로 정하는 한편 조정과 중재 제도의 활성화를 꼽고 있다. 독일의 경우 특허청 내에 조정·중재위원회를 설치하고, 최종적인 결론을 내린다. 독일 사례를 참고 삼아 발명진흥법에 중재위원회의 근거 규정을 둬야 한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그래픽=아주경제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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