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中 지방정치 '치링허우' 젊은피가 뜬다

2020-04-23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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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부성장급 지도부 대거 발탁

기업가·전문가·정통 관료 등 다양

코로나19 위기, 인재수혈로 극복

치링허우(七零後·1970년대 출생) 세대가 중국 지방 정치의 새 주역으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특히 기존 지도부의 역량만으로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 지방정부에서 ‘젊은 피’ 수혈을 통해 위기 극복을 도모하는 분위기다.

전문성과 경험을 두루 갖춘 40대 기수들의 약진에 중국 정가의 이목도 집중되고 있다.
 

런웨이 시짱자치구 부주석(왼쪽부터)과 우하오 장시성 부성장, 아둥 지린성 부성장, 양즈원 칭하이성 부성장. [사진=중국 각 지방정부 홈페이지]


◆기업가형··· 국유기업 CEO 최연소 부성장에

22일 관영 신화통신과 중국신문주간 등 다수 언론에 따르면 각 지방정부들이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를 앞두고 지도부 개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치링허우 세대가 부성장급으로 대거 발탁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말부터 이달까지 새로 임명된 40대 부성장급 인사는 8명에 달한다.

코로나19 사태의 후폭풍을 최소화하고 지역 경제를 되살리는 데 젊고 유능한 인재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시짱(티베트)자치구는 지난 8일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를 열고 런웨이(任維) 부주석 임명안을 승인했다.

런 부주석은 1976년생으로 중국 전체 부부급(副部級·부성장 및 차관급) 고위 간부 중 최연소다.

그는 17세 때 칭화대에 입학해 20대 중반에 열에너지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수재다. 이후 대형 발전 국유기업인 중국국가전력그룹(中國國電)에서 15년 이상 근무했다.

2016년 해당 기업의 시짱자치구 분사에 파견되면서 현지 지도부와 인연을 쌓았다. 분사 사장과 또 다른 발전 국유기업 다탕그룹 부사장 등을 지내며 시짱자치구 내 전력 수급 완화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부주석으로 발탁됐다.

지난달 27일 장시성 부성장으로 임명된 우하오(吳浩)는 허난성 토박이다. 베이징 건축대를 졸업하고 시안의 장안대에서 도로·철도공정 박사 학위를 받은 교통 시스템 전문가다.

허난성의 도로 건설·보수·관리 업무를 총괄하는 국유기업 허난도로프로젝트관리유한공사에 재직하며 30대 중반에 이미 사장에 오를 만큼 역량을 발휘하다가 2009년 뒤늦게 정계에 입문했다.

허난성 도로운수관리국 국장, 성 정부 부비서장, 부동산·도시건설청 청장 등을 거치며 허난성에서만 이력을 쌓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지역을 옮겨 고위직을 맡게 됐다.

◆전문가형··· 논란의 싼사시 시장 출신 발탁

지난 15일 지린성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는 아둥(阿東) 전 하이난성 싼야시 시장을 부성장으로 데려왔다.

회족인 아 부성장은 베이징대 도시환경학 박사로 1997년부터 2016년까지 국가해양국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한 해양 정책 전문 관료다.

특히 해역측량판공실 주임, 동해분국 부국장, 중국 영해를 감독하는 중국해감 동해총대 부대장 등을 거치며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의 영유권 분쟁 지역 관리에 주력했다.

그는 정책법제·도서권익사(국) 사장을 끝으로 국가해양국을 떠나 2017년 하이난성 싼사시 시장을 맡았다.

중국 최남단의 싼사시는 인구(약 2500명)가 가장 적고 육지 면적(20㎢)도 가장 작은 시급 행정구역이다. 2012년 남중국해 주요 섬과 암초를 관할하기 위해 출범했다.

중국이 주변국과 벌이는 영유권 분쟁의 전초 기지라는 점에서 전략적·지정학적 가치가 크다. 중국 민정부는 지난 18일 싼사시 산하에 시사(西沙)구와 난사(南沙)구를 각각 둔다고 공표할 정도로 남중국해 영유권에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있다.

싼사시 시장직을 무난하게 수행한 아 부성장은 하이난성 2대 도시인 싼야시 시장을 지낸 뒤 중국을 북으로 종단해 지린성에 안착했다.

지난 16일 칭하이성 부성장으로 임명된 양즈원(楊志文)은 아 부성장과 마찬가지로 회족 출신이다. 닝샤회족자치구에서 출생해 모든 행정 경력을 그곳에서 쌓았다.

법학 박사인 양 부성장은 조직부와 선전부, 통일전선부 업무를 전전하며 자치구 내 소수민족의 동향을 파악하고 분리 세력을 와해하는 데 수완을 발휘했다.

자치구 민족사무위원회 주임과 종교사무국 국장을 끝으로 칭하이성으로 옮겼는데, 칭하이성 역시 회족과 티베트족 등 소수민족 비중이 40% 이상인 곳이라 이전과 비슷한 업무를 수행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저우훙보 광시장족자치구 부주석(왼쪽부터)과 류샤오타오 저장성 부성장, 리이 헤이룽장 부성장, 라이자오 닝샤회족자치구 부주석. [사진=중국 각 지방정부 홈페이지 ]


◆지역 일꾼형··· "건의사항 있으면 아무 때나 전화하라"

광시장족자치구 성도인 난닝시의 저우훙보(周紅波) 시장은 지난달 말 자치구 부주석까지 겸임하게 됐다.

1970년생으로 구이린 출신인 저우 부주석은 공직 생활을 오롯이 광시장족자치구에서만 보냈다.

묘목을 관리하는 일부터 시작해 자치구 농업청 말단 간부, 농업청 인사처장, 난닝시 부시장 등으로 승진을 거듭해 온 전형적인 지방 관료다.

자치구의 경제 허브인 우샹(五象)신구 건설·조성의 총책임자로 능력을 인정받아 시장과 부주석을 겸하는 특혜를 누리게 됐다.

저우 부주석과 달리 한 지역에서 관료가 갖춰야 할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하고 지역을 옮겨 고위급으로 도약한 이들도 있다.

지난 8일 저장성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의결을 거쳐 부성장으로 임명된 류샤오타오(劉小濤)는 광둥성에서 성장한 간부다.

인민대를 졸업하고 광둥성 노동국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해 16년 만에 지방세국 부국장에 오를 때까지 지방정부 표창을 여러 차례 받았다.

마이밍시 부시장, 산터우시 시장, 차오저우시 서기, 광둥성 정부 비서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산터우시 시장으로 재직할 때는 한 토론회에서 "내 휴대폰 번호를 공개하겠다. 의견이나 건의가 있으면 아무 때나 전화나 문자로 보내라"며 "반드시 신속하게 수용하고 입장을 밝히겠다"고 발언한 바 있다.

산터우일보 등 현지 언론이 이 공언과 더불어 이후 이행 과정까지 상세히 보도하면서 여론의 지지가 크게 높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차오저우시에서 근무할 당시에는 광둥성 조직부의 한 고위 관료가 "류샤오타오는 취약 계층과 경제 분야의 업무 능력이 뛰어나고 스스로에 대한 기준이 매우 엄격한 인물"이라고 호평하기도 했다.

런웨이 부주석과 동향인 산시성 치산현 출신의 리이(李毅) 헤이룽장성 부성장은 지역사회 관리에 특화된 관료라는 평가를 받는다.

지역을 누비며 주민들의 애로를 청취하고 해법을 제시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전언이다.

현지 언론인 서북신식보는 "그는 (산시성 시안시의) 란톈현에 최연소 현 서기로 부임하자마자 간부들의 업무 태도를 바로잡고 다양한 방식의 조사를 거친 뒤 행정 적폐를 일소했다"고 보도했다.

2018년 웨이난시 시장으로 임명된 그는 산시성 10대 도시의 시장 중 유일한 40대였다.

라이자오(賴蛟) 닝샤회족자치구 부주석은 이번에 처음으로 고향인 충칭을 벗어나 공직을 맡았다.

공공 입찰과 역내 상품 판매, 식량 수급 관리 등의 업무에서 두각을 나타내 지역 경제 회복을 이끌기에 적임자라는 분석이 많다.

2012~12013년 충칭 량장(兩江)신구 관리위원회 부주임으로 재직할 때 지역총생산(GRDP) 증가율이 20.4%에 달했고, 충칭이 중국 서부의 자동차 산업 중심지로 떠오르는 데 기여했다.

충칭 산업위원회 주임을 거쳐 4년간 중셴현 서기를 맡으며 14억 위안을 들여 e스포츠 경기장을 유치해 낙후한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도 했다.

이번 지방정부의 부성장급 인사를 지켜본 한 중국 소식통은 "지방정부 지도자들의 세대 교체가 이뤄지는 분위기"라며 "시급 행정구역에서 시장이 당 서기를 거치지 않고 바로 부성장으로 승진하는 사례가 많은 게 눈에 띈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코로나19 사태로 대부분의 지방정부가 제각각의 곤경에 처한 상황"이라며 "유능한 인재라면 관례나 절차에 상관 없이 모셔 가려는 수요가 많을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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