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코로나19 사태가 셀프 계산대 확산의 도화선 역할을 했다고 봐야겠죠. 다만 이 같은 조짐은 이미 예전부터 오랫동안 진행돼왔습니다. 종사자들에게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셀프 계산대가 정착돼야 할 것이라 봐요."
최근 유통 업계에서 별도의 계산원 없이 스스로 물건을 계산하는 셀프 계산대가 화두로 떠올랐다. 코로나19 문제 장기화로 사회적 거리두기 문화가 확산되고, 이에 따라 마트나 편의점에서 대면 접촉이 최소화되는 셀프 계산대가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과거 셀프 계산대는 소량의 물품을 구매하는 고객을 위한 구색 갖추기 용도 정도의 서비스에 불과했다. 계산원이 알아서 계산을 마치는 대면 계산대에 비하면, 조작 방법을 숙지해야 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특히 무인 계산대 기계나 키오스크 조작에 익숙지 않은 중장년층에게는 사실상 외면을 받았다.
하지만 최근 대형 마트나 편의점에서는 셀프 계산대에 사람이 몰려 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만큼 계산대 풍경도 사뭇 달라졌다. 무엇보다 무인 계산대 키오스크 조작법이 중장년층에게도 그리 어렵지 않다는 점, 업체 입장에서 점포 운영 효율이 증대된다는 점 등이 부각되면서 셀프 계산대의 확산세도 가팔라지는 추세다.
맞벌이 부부인 김모씨(35·여)는 "퇴근 후 마트를 종종 들러 장을 보는데 2인 가족이다 보니 구매 물품이 많지 않다"며 "대면하지 않고 빠르게 계산을 마칠 수 있어 셀프 계산대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또 직장인 유모씨(37·남)는 "셀프 계산대 조작법이 꽤 복잡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번 코로나 사태로 이용한 이래 계속 셀프 계산대만 찾고 있다"며 "특히 계산 도중 필요 없는 물건이 생각나 이를 빼달라고 요청할 경우 계산원에게 양해를 구하곤 하는데, 셀프 계산대는 그런 점이 없는 것도 편리하다"고 설명했다.
20일 롯데쇼핑에 따르면 이날 기준 전국 롯데마트 약 50곳 점포 내 무인 계산대는 512대 정도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지난해 12월 기준 대비 1%가량 증가한 것이다.
롯데쇼핑 측은 올해 1분기 코로나19 여파로 무인 계산대 신규 설치를 하기 어려운 상황임에도 증가세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또 편의점 CU는 항균 처리된 차세대 시스템을 활용한 셀프 계산대를 전국 1000여 곳에서 가동한다고 밝혔다.
현재 CU에서 셀프 계산대를 사용하고 있는 점포들의 셀프 결제 비중은 전체 약 30%인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한 번이라도 이용한 고객이 다시 서비스를 이용하는 셀프 결제 이용 재사용률은 94%에 달할 정도로 고객 반응이 좋다고 CU 측은 설명했다.
이 같은 셀프 계산대의 확산 추세는 거스를 수 없는 유통 업계 흐름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전 산업의 4차산업화, 자동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고전적 방식의 계산대 업무 역시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셀프 계산대 확산이 최근 코로나19 문제로 보다 가속화되는 것은 맞지만, 거시적으로 살펴보면 국내 산업의 자동화 흐름에 발맞춰 자연스레 정착되고 있는 과정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며 "은행 상담원이 ATM기로 대체되고, 전화 상담사가 ARS로 대체되는 과정과 비슷한 흐름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학과 교수는 "셀프 계산대는 조작 숙지라는 초기 진입 단계의 경미한 장벽이 있지만, 이용을 한 번이라도 할 경우 대면 계산대에 비해 훨씬 편리하다는 사실을 고객이 알게 된다"며 "고객의 편의성이 뛰어난 콘텐츠는 그렇지 못한 콘텐츠를 압도하게 마련이다. 또 셀프 계산대가 활성화되면 업체 입장에서는 카운터에 집중할 업무를 점포 정리나 다른 서비스로 분산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고 말했다.
하지만 셀프 계산대 증가가 곧 일자리 감소로 직결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서용구 교수는 "셀프 계산대 확산이 시대적 흐름인 것은 맞지만, 문제는 이들 종사자 대부분이 중장년 여성층이라는 것"이라며 "이들 계층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을 수 있는 만큼, 이들에게 타격을 입히지 않는 정부의 보완 정책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유통업계 전문가는 "아무리 산업이 발전해도 전 영역에 걸친 급격한 자동화는 역효과를 낳는다. 예컨대 전화 상담 업계에서도 ARS가 아닌 전화 상담을 반드시 필요로 하는 경우가 있다는 이야기다"라며 "셀프 계산대의 편의성이 뛰어난 것은 맞지만, 계산원을 원하는 고객도 분명히 존재한다. 노인 계층의 경우 셀프 계산대 이용이 여전히 어려울 수 있다. 비대면 서비스의 주력화는 분명 시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