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맹위를 떨치고 있는 ‘코로나19’의 영향이 일파만파다. 이미 이 변종 바이러스는 보건·의료 분야를 넘어 사회·경제적 영향은 물론 기존의 국제질서에까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WHO(세계보건기구)의 역할 실종은 오히려 포비아(phobia)를 만연시켰고, 대비가 불충분했던 각국은 그동안 21세기 국제관계를 지탱해왔던 세계화에 따른 협력보다는 철저한 자국 위주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을 택했다. 이러한 일방주의와 상호경쟁은 국제적 공동대응은 고사하고 저개발국으로의 확산은 안중에도 없이 미국·캐나다·이탈리아·영국·독일 등 소위 선진국 간의 마스크 및 의료장비의 공항 탈취전이라는 낯 뜨거운 이전투구(泥田鬪狗)까지 연출하는 중이다.
‘코로나19’는 당초 예상을 크게 초월해 세계 정치와 경제의 중심을 뒤흔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수도 있음을 드러냈다. 일차적으로는 국제시장의 공급과 수요 사슬에 문제가 생기면서 실물경제 위기와 금융위기와 대량 실업사태로까지 파급되고 있다. 이러한 국가경제의 파괴는 각국의 국가기능 마비까지 위협하는 중이다. 때문에 세계적인 경제하강 국면에서 위험회피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경제 관리나 경제적 수단의 무기화도 강화될 소지가 있다. 바이러스 발원지와 발병지를 둘러싸고 기 싸움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전략경쟁은 더욱 첨예화 될 것이며, EU(유럽연합)지역에서 감염병의 폭발적 증가는 애초부터 이탈리아 등 우방에 대한 지원에 무관심했던 미국에 대한 유럽의 불신은 미국과의 거리두기로 이어질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중국과 유럽이 접근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올림픽 개최 문제로 애매한 태도를 취했던 일본 역시 국제적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정치·경제·외교를 망라하는 복합적 위기가 새로운 국가안보문제로 귀결될 수 있음을 보여준 ‘코로나19’를 앞에 두고 각국은 일단 폐쇄적 국가주의 노선을 택할 가능성이 크며 이는 자연스럽게 신 국제질서의 태동을 촉발할 개연성이 크다.
이번 ‘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pandemic)은 국제질서의 지탱자이면서 국제사회 리더인 미국의 위상을 결정적으로 추락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차적으로는 자기 고립적이고 즉흥적인 낙관과 오판의 반복으로 국내적 신뢰를 잃었고, 전문가 집단의 의견과 미국에 미칠 위험성을 간과하면서 국제적 공동 대응을 주도하지 못해 국제적 공공재 제공에도 실패했다. 갑자기 코로나19가 무섭게 창궐하면서 국내문제가 우선순위가 되면서 국제문제 주도에 실패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트럼프식 '미국 우선주의'가 그동안 국제적 위기 때마다 미국이 수행한 조타수 역할과 리더십을 희석시켜 지금은 어떤 나라도 미국에 의지하지 않게 됐다고 주장한다. 11월 대선(大選)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기존 업적 중 하나로 간주하는 보호주의 통상정책을 유지하려한다. 특히 코로나19 위기 극복과 경기부양을 위한 자유무역과 국제공조 필요성에 대한 미 의회와 산업계의 주장에도 기존 보호무역 기조의 관철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이는 미국 주도의 통상정책을 유지하면서 중국을 견제하려는 정치적 계산이 우선한 것이다.
한국은 현재까지 국제사회에서 코로나19에 가장 잘 대처한 국가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비록 실효성은 떨어지지만 G20 화상회의도 주도해 전염병의 통제와 관리에 대한 국제적 공조를 강조해 국가신뢰도도 높였다. 그러나 미·중 사이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한국에게 코로나19로 인한 G2, 미·중 간 불신 증폭은 악재다. 미·중 무역분쟁과 세계적 불경기로 위태위태하던 글로벌 공급망은 코로나19라는 결정타로 수출주도형 국가인 한국에 큰 어려움을 주고 있다. 무엇보다 양국 공히 한반도 최대 현안인 북핵 문제에 신경을 쓸 틈이 없어서 더욱 문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어떻게 펼쳐질지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이제 세계는 국제지도국이나 패권국의 역할이 이전보다는 현저히 감소한 실질적인 G0(zero)시대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위기와 기회는 동시에 온다고 한다. 국제적인 패러다임 변화를 직시하면서 특정 사안이나 희망적 사고에 매몰되지 않는 진정한 균형외교를 통한 국가경쟁력 제고에 중지를 모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