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마이너스 금리 시대에 도사린 제2·제3 DLF 사태

2020-03-18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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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급속한 확산으로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경제학자들 사이에 대(大)경기후퇴(Great Recession)로 불리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지금 뉴욕증시는 최대 변동성을 보인다. 증시의 변동성은 곧 금융시장에서 미래 경제에 대한 공포로 인식된다. 결국,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비상이 걸린 트럼프 대통령은 세금 감면 등 시장 달래기에 나선 데 이어, 지난 주말에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가 0%대에 진입하면서 미국경제마저도 마이너스 금리 권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냐는 조심스러운 전망이 나오며 시장전문가들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3월 9일 뉴욕거래소는 장중에 10년물 국채금리가 0.3%까지 하락하며 역사상 최저 금리를 기록했고, 3월 16일(한국시간) 미국 중앙은행 통화정책회의 FOMC는 0~0.25%로 두 번째 긴급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이로써 미 국채 금리는 마이너스 금리권에 진입할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사실 마이너스 금리는 전통적인 경제학에서는 금기로 여기는 영역이다. 2015년 이후 유럽과 일본이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이것은 실험적 조치이고 다시 정상적인 플러스 금리로 복귀할 것으로 대다수 경제전문가는 생각했었다. 그러나 현실은 전통적인 경제학의 통념과 달랐다. 걱정했던 마이너스 금리의 부작용도 크게 눈에 띄지 않았고, 유럽과 일본에서 마이너스 금리는 지금 현실과 잘 타협하며 정착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무차별 통화공급을 대변하는 ‘헬리콥터 머니’로 유명한 벤 버냉키 전임 미국 연방준비이사회(FED) 의장도 FED가 마이너스 금리를 통화정책 수단으로 배척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등 마이너스 금리가 금융시장의 뉴 노멀(New Normal), 즉 보편적인 현상이 될 가능성은 커지고 있다.

물론 마이너스 금리에 대한 이론적·과학적 연구가 아직 부족한 단계에서 뉴 노멀까지 얘기하는 것은 기우(杞憂)라고 비판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전 세계적인 마이너스 금리 추세는 아주 작은 확률로 큰 피해를 줄 것으로 예상하는 블랙스완의 단계를 이미 한참 뛰어넘었다는 생각이다. 즉, 우리는 마이너스 금리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너스 금리가 뉴 노멀인 시대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단지 투자자만이 걱정해야 할 투자, 재테크에 국한된 문제인가? 마이너스 금리의 많은 영향이 예상되고 연구되어야 하지만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금융산업, 특히 금융소비자에 대한 영향이다.

일관되게 마이너스 금리에 대한 연구보고서들이 지적하고 있는 부분은 금융산업의 피해다. 즉, 경제학자들은 시중은행이 지급준비금(Reserve)에 대해 부(負)의 금리를 지급하는 정책(Negative Interest Rate Policy)을 시행하면 은행의 경영수지가 악화한다는 것을 지적한다.

또한 마이너스 금리정책은 국채금리를 포함한 시장금리를 마이너스로 하락시키고 은행뿐 아니라 이자(Fixed Income)를 원천으로 하는 금융산업(특히 보험산업)의 전반적 부실을 초래할 수 있다. 경제는 충격이 있으면 다양한 파급 경로를 통해 연쇄적인 반응을 일으킨다. 금융회사가 경영수지에 압박을 받으면 이를 보전하기 위해 경영활동, 특히 영업활동에 무리수를 둘 위험은 커진다. 금융회사는 물론 금융상품을 판매하며 인센티브를 받는 금융회사 직원들도 수수료와 보수가 조금이라도 높은 고위험 상품 판매의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몰린다. 또한 경영진의 압박이 커지면 판매직원들도 금융상품 판매에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다. 이렇게 불공정판매의 환경이 조성되며 금융소비자의 위험은 심각 단계에 들어갈 것이다.

이 위험의 전조는 2019년 시작해서 최근까지 징계와 기관 경고가 이어진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의 불완전판매 사태에서 엿볼 수 있다. 독일 국채의 마이너스 금리 추가 하락에서 비롯된 원금손실 사태를 들여다보고 정리한 금융감독원 검사보고서는 우선 두 은행을 비롯한 증권사, 자산운용사까지 만연한 총체적인 모럴해저드를 원인으로 지적한다.

이 점은 전적으로 필자도 동의한다. 그러나 좀 더 들여다보면 대한민국의 간판급 은행들과 금융회사들이 벌인 불완전판매의 배경에는 마이너스 금리 추세가 있다는 것이다. 마이너스 금리로 표현되는 저금리·저성장 경영환경이 은행들로 하여금 본업인 예금-대출 산업에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위험을 알면서도 판매 수수료 베이스의 금융투자상품을 판매하도록 은행원을 내몰았고, 여기에 증권사·자산운용사들이 장단을 맞춘 것이다.

필자의 의견이 파생결합펀드(DLF) 원금손실 사태를 벌인 금융회사를 두둔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들은 마땅히 금융소비자를 보호해야 했다. 그러나 단순히 불완전판매의 징계와 처벌, 고위험 상품 판매 억제와 같은 제도 보완으로는 장기적인 처방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제2, 제3의 DLF 사태는 또 일어날 수 있다. 마이너스 금리 시대는 앞으로도 금융소비자를 더욱 위협할 것이다.

이런 가운데 국회는 3월 5일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을 가결했다. 2016년 첫 의원 발의가 있고 난 뒤 약 3년 4개월 만의 결실이다. 법률 제목에 손색없게 처음으로 한국 금융 제도에 ‘금융소비자의 권익을 위하여’라는 문구가 등장했다. 패키지 처리하기로 했다가 불발된 인터넷 은행법에 대한 관심에 이 법의 통과가 덜 주목받았지만 많은 뜻있는 의원들과 금융당국의 노력으로 금융역사의 큰 전환점이 마련되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그러나 걱정인 것은 금융소비자를 위한 이 법이 권익의 주체인 금융소비자의 무관심 속에 새로운 영리사업으로 활용되거나 유명무실해지는 것이다.

100세 시대와 더불어 금융소비자는 평생에 걸쳐 아주 길어진 생애 자산관리가 필수가 될 것이다. 그러나 저금리·저성장 환경과 초장기 투자는 금융소비자에게는 위험을 증가시킨다. 투자 기간이 길어질수록 투자과정에서 실패가 발생하면 결과적인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초저금리 여건이므로 실패 후 만회하기가 어려워진다.

이런 가운데 초저금리로 경영수지 압박을 받는 금융산업은 금융소비자에게 거래상대방 위험을 발생시킨다. 금융회사를 아직 신뢰의 상징으로 생각하는 금융소비자가 많다.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금융회사는 영리 목적의 주식회사로 태도를 결정한 지 오래다.

이런 환경에서 금융소비자의 위험을 막기 위한 장치로 금융소비자보호법의 의미는 아주 크다. 법률의 많은 부분에 금융상품판매자들의 공정성을 높이는 제도적 장치가 촘촘히 장치되어 있지만, 특히 필자가 주목하는 부분은 ‘금융교육’이다. 법률안에 담긴 내용대로 ‘금융소비자가 금융에 대한 높은 이해력을 바탕으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고 장기적으로 금융복지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금융당국의 프로그램이 마련되기를 바란다.

불완전판매도 문제였지만 금융소비자들도 금융 역량이 있었으면 DLF 원금손실 사태의 피해는 상당히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금융소비자가 금융 역량을 갖추면 아마 금융산업도 금융소비자를 얕보지는 못할 것이다. 또한 국민의 또 다른 모습인 금융소비자를 보호하는 것은 미래 국민복지 차원에서 크게 기여할 것이다. 아직 많은 세부적인 사항이 시행령을 통해 구체화되어야 하지만 금융산업과 금융소비자가 윈-윈하는 미래를 기약하도록 금융소비자보호법의 정착과 활용을 관심을 가지고 모두가 지켜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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