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석 류영모] (29)교회에서 무당 노릇을 하지마라

[다석 류영모]

기독교 자체가 원래 유대교의 '이단'이었다

최근 코로나19 확산 사태 속에서, 뜻밖에 전염의 숙주 역할을 하게 된 종교집회가 논란이 되면서 '이단(異端)'에 대한 해묵은 논쟁이 다시 불거졌다.

이단이란 대체 무엇인가. 이단의 영어 표현인 헤러시(heresy)는 헬라어인 '하이레시스(αἵρεσις)'에서 온 말이다. 원래는 선택이나 의견 혹은 어떤 집단 속의 분파(分派)를 뜻하는 말이었다. 종교적 용어로 쓰이면서 교회 내에서의 편당(偏黨)을 가리키거나 다른 교리를 주장하는 분파를 의미하는 말이 되었다. 또 다른 '이단'이란 말로 하이레티코스(αἱρετικός)라는 것도 있는데, 이 말은 '다른 것을 선택한'이란 의미다. 즉, 복음 이외의 다른 가르침을 좇는 행위를 일컫는다. 오늘날 '이단'이란 표현은 교회 내에서 당파심을 불러일으켜 분란을 조성하는 사람들을 가리키거나, 아예 '다른 복음'을 좇는 이들을 칭하는 말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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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말이 특히 기독교 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말이 되었을까. 기독교회는 초창기에 당시 정통종교였던 유대교회 측에 의해 '이단'으로 불려졌다. 스스로가 이단의 자리에 처해 있었다는 얘기다. 치열한 믿음의 투쟁을 거쳐 정통으로 자리잡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성경에는 기독교 내부에서 일어나는 다른 믿음들을 격한 말투로 배척한 자취들이 많다. '거짓선지자'(마 7:15), '숨어들어온 거짓형제들'(갈 2:4), '사나운 이리'(행 20:29),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빌 3:18), '적그리스도'(요일 2:18). '거짓선생'(벧후 2:1), '자칭 선지자'(계 2:20), '사탄의 회당'(계 3:9)과 같은 표현들이다.

이단은 기독교와는 전혀 다른 종교인 불교나 이슬람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내에서 스스로 진짜 기독교라고 칭하며 나타나는 단체를 가리킨다. 그들 역시 '성경'을 말하고 예수를 주장한다. 교회 측에서는 이단을 대개 이렇게 구분한다. 성경의 내용 중에서 무엇인가를 보태거나 빼는 것, 성경 대신 교주의 사상이나 이념을 강조하는 것, 전도 대상으로 삼는 것이 비교도가 아니라 기존 교회신도인 것, 스스로가 재림예수라고 주장하거나 종말론을 현실화해서 주장하는 것, 병을 고치는 일 따위의 기적을 믿도록 하는 것. 이런 것이 대개 이단의 특징이라고 한다. 이단은 그들에게 사탄의 무리로 취급된다.

이단이 설 자리가 없을 만큼 신의 뜻을 실천했나

이런 주장들은 부분적으로 '참'일 수 있지만, 일종의 모순을 포함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왜 이단이 생기는가. 그것은 기존의 교회가 '성서'의 본령을 완전하게 지키지 못하고 있거나, 신앙의 본질적 면모에서 벗어나 있거나, 신도들이 형식적인 교의 이외의 진정한 신앙을 유지할 수 있도록 교회가 제 역할을 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이단'을 배격하는 것이 교회를 지키는 길이 아니라, 교회가 신앙의 초심을 회복하고 신앙인의 건전한 양심을 되찾는 것이 이단을 물리치는 길이라는 충고도 있다. '번성한 교회'는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를 돌이켜보아야 한다. 이단이 설 자리가 없을 만큼 기존 종교계가 하느님의 뜻을 제대로 실천하고 전달해 왔느냐는 질문에 겸허히 답해야 한다. 이단의 특징이라고 나열한 항목들을 교회 스스로가 이미 채택해 활용하거나 실행하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해야 할지도 모른다.

위에서 거론된 '이단'의 정의에는 사도신경이 그 중심에 놓여 있다. 기독교회는 예수의 제자를 중심으로 한 초대교회의 메시지 전달자인 '사도'가 전한 신앙규범을 사도신경이라 일컫고 이에 권위를 부여했다. 사도신경은 정리된 믿음 고백의 형식이기도 하다. 이 신경은 사람들에게 믿음의 저울을 제시한 뒤 '이 믿기 어려운 것을 반드시 믿느냐'고 묻는다. 이 심문에 저항하는 자들이 바로 이단이다. 이 저울의 문제점을 집요하게 제기한 것은 레프 톨스토이다. 잠깐 그 내용을 살펴보면 이렇다.

사도신경은 창조주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 성령을 '내가 지금 여기서' 믿는다는 실존적 신앙을 강조한 체계이다. 또 신경에는 교회와 죄 사함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는다고 고백하도록 되어 있다. 예수를 믿는다는 의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난 것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을 맞은 것과 사흘 만에 부활한 것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온다는 내용을 의심 없이 믿는다는 것이다.
 

[영화 '예수'(1979)의 한 장면.]

"사도신경은 예수의 가르침이 아니다"

교회에서 전승되어온 믿음체계인 사도신경에 의하지 않고 개인적인 체험이나 신념 위에 세워진 신앙을 이단이라고 부른다. '거룩한 공교회'라고 표현되어 있는 교회를 통하지 않는 모임은 이단으로 일컬어지며, 예수의 기적들(성령 잉태, 부활)을 부정하거나 몸의 부활과 영생에 관해 이견을 내는 일 또한 '거룩한 공교회' 내에서는 금지된 것이다.

톨스토이는 사도신경이 예수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말한다. 예수의 가르침은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로 시작하는 산상수훈의 내면적 완성과 사랑만이 본질이라고 주장한다. 교회들이 예수의 초인적인 기적을 집어넣은 까닭은 예수 사후에 대중의 신앙심을 획기적으로 돋우기 위해서였다. 이 일을 한 사람은 사도 바울이다. 예수 사후에 그는 부활의 기적과 입신이필천국행(入信而必天國行, 믿으면 천국 간다), 그리고 종말론을 기입한 텍스트를 남겼다. 더군다나 살아있던 때의 예수가 아니라, 죽고 난 뒤 부활한 예수에 한정해 '그리스도'로 일컫는다. 예수가 인간과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여 우러름과 믿음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바울의 언행과 기록은 흉흉하던 시대에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사도신경은 바울의 텍스트를 중심으로 정리되었다. 사도신경이 기록에 대한 절대신뢰를 처음부터 쐐기 박는 까닭은 기이한 일에 대한 의심을 원천봉쇄하기 위해서다. 

톨스토이는 예수시대에는 교회라는 것이 없었으며 복음서에 나오는 교회의 의미도 단순한 모임을 가리킬 뿐 신앙을 위한 집회건물이나 시스템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교회가 만들어지면서 자신들이 무오류임을 주장하기 위해 교회 바깥의 다른 믿음에 대해 이단의 딱지를 붙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또한 교회가 예수의 뜻이 아니라고도 했다. 예수가 스스로 신의 가르침을 인간 각자에게 알려주려고 왔는데, 왜 '사람과 신의 중재자'를 교회가 대행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영화 '바울, 그리스도의 사도'(2018)의 한 장면.]

교회와 이단의 차이는 세력의 차이일 뿐?

교회가 '이단'에 대해 강경함을 유지하는 까닭은 이단으로 지목된 믿음들과의 '차이'를 해명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인 점도 있다는 게 톨스토이의 시각이다. 정통교회와 이단의 차이가 교세(敎勢)의 차이일 뿐이라면, 이단이 교회를 거대화할 때 대항할 수 있는 논리가 빈약해질 수밖에 없다. 또, 기적에 관한 사도신경의 신념들 또한 이단에서 내놓는 기적-영생-재림론에 제대로 대항하기 어렵게 만든다. 심판론 또한 신흥종교들이 자주 자극적인 방식으로 제시하는 단골메뉴라는 점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류영모가 열심히 믿던 교회신앙을 버린 것은 22세 때다. 오산학교 교사로 부임한 뒤 학생들에게 교회신앙을 포교했던 그는 2년 뒤 학교를 나올 때는 학교를 교회처럼 만들고자 하는 외국인 선교사 교장에 항의했다. 그는 그때 신앙을 버린 것이 아니라 '교회'를 버린 것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15세에 기독교에 입신하고 22세까지 십자가만 부르짖는 십자가 신앙인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기독교를 전도하는 데 요한복음 3장16절(하느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과 '십자가에 못박혀 피 흘린 보혈로써'라는 구절이 빠져서는 안 되는 줄로 알았다. 지금은 달라졌다."

7년간의 믿음에 왜 지각변동이 났나

오산학교를 나온 류영모가 이런 말을 하게 된 까닭은 뭘까. 왜 7년간 열심히 믿던 신앙에 지각변동이 일어난 것일까. 그때 그는 톨스토이의 저 생각이 담긴 책들을 읽고 있었고, 불경과 노자 도덕경을 읽으면서 기독교 사상의 균형 잡힌 본질에 접근해 가고 있었다. 신앙이란 '교회'라는 형식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나의 자율적인 대면이며 결국 인간 각자가 신을 만나는 깨달음의 일일 뿐임을 자각한 것이다. 이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변화였다.

교회신앙을 떠난 류영모는 그제서야 신앙의 진면목을 접한다. 암기의 신앙에서 사고의 신앙으로, 타율의 신앙에서 자율의 신앙으로, 모방의 신앙에서 창조의 신앙으로, 화석의 신앙에서 생명의 신앙으로 돌아선 것이다. 진리의 길은 죽음의 길이며 핍박의 길이며 고독의 길이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되었고, 톨스토이는 러시아 정교로부터 파문 당했고, 류영모는 이단이라는 딱지를 얻었다.

류영모는 스스로의 신앙으로 큰 진리의 기쁨을 얻었지만, 교회 신자로부터 이단자란 소리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일부 신자들의 이런 비판에 대해 반응하지는 않았다. "괜히 충동하여 남의 잘 믿는 신앙을 흔들어놓을 필요는 없다. 잘 아는 목사들과도 성경 이야기는 잘 안 한다. 신앙은 서로 다를 수 있고 다른 대로 같은 것이다."

그는 스스로 주도하여 모임을 갖지도 않았고 목회자로서 설교를 한 적도 없다. 다만 그는 제자들에게 하느님에 대해 말하고 가르침을 주고자 하였다. 그들이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해줄 뿐 문하(門下)에서 세력을 만들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고독한 자리를 택했고, 자기 안에 참으로 고요한 교회를 세웠을 뿐이다. 류영모는 모임에서 기도나 찬송을 하지 않았다. 명상일기를 쓰면서 이것이 나의 기도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속죄를 위해 신앙하는 것은 소극적이다

"기도는 혼자 하는 것이다. 제 기도는 제가 할 수밖에 없다. 여럿이 모여 기도를 하면 아무리 집중해도 하는 체하게 된다. 거짓으로 하는 기도는 해서는 안 된다. 거짓 기도를 미워해야 한다."

교회주의 기독교에서는 예수의 십자가 보혈에 의한 속죄가 핵심 교리다. 류영모는 십자가에 매달려 의혈을 흘리며 죽은 그 '속죄'를 믿는다고 말했다. 예수의 피만이 아니라 의로운 이가 흘린 피는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며 죄악을 정결케 한다고 했다. 하지만 속죄만을 믿는 것은 너무 소극적인 신앙이다. 속죄만을 받기 위해서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너무 소극적이다. 류영모가 말한 '소극적'이란 말을 뒤집으면 '이기적'이라는 말이 될 것이다.

"예수가 인간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피흘린 것을 믿으면 영생한다고 믿는 것은 나와는 상관없다"고 분명히 한 류영모는 기독교인들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쳐다만 보고 믿는다고 해서 진실한 종교인이 될 수는 없다고 말한다. 몸으로 죽고 얼로 사는 것이 신앙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회는 어떤가. "교회지도자가 새 시대의 무당 노릇을 하고 있다. 예수를 믿는 게 부끄러워지는 때가 되어버렸다. 나는 요즘 부끄러워서 예수 믿는다고도 못하겠다." 교회가 기업화하고 샤머니즘화하는 데 대한 그의 경고였다.

그는 예수를 하느님의 자리에 올려놓고 예배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한다. "사람을 숭배해서는 안 된다. 그 앞에 예배할 것은 참과 하느님뿐이다. 종교는 사람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을 깨닫지 못하니까 사람더러 하느님이 되어달라는 게 사람을 숭배하는 이유다. 예수를 하느님 자리에 올려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 가톨릭이 마리아를 숭배하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그는 예수와 그리스도를 동일시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기독교를 믿는 이들은 예수만이 그리스도라고 하지만 그리스도는 예수만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영원한 생명이다.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성신이다."

내 속에 그리스도인 성령이 오고 있는데, 무엇 때문에 따로 그리스도의 공중재림을 기다리고 미륵불을 기다린단 말인가. 성령은 역병을 실어나를 만큼 서로 다닥다닥 붙어 앉은 교회의 십자가나 천장 속에 있지 않다. 몸나를 탈피한 순간 만나는 얼나가 바로 그분이다. 당신 생각보다 훨씬 더 가까이 있다. 신앙의 난세에 류영모가 던지는 일갈이다.

박영호(다석사상연구회장)의 '잃어버린 예수' 서문 = 바울은 사랑할 수도 미워할 수도 없는 사람이다. 예수의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데 일등공인(一等功人)인가 하면 예수의 가르침을 세상에 바로 알리는 데 일등반인(一等叛人)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금의 기독교가 예수의 이름을 빌린 바울의 교의이지 예수의 정교가 아니라는 데 있다. 기독교에 있어서 이것을 바로잡는 일보다 더 긴급하고 중대한 문제가 어디 있겠는가. 이제 일부 신학자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만시지탄이나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예수는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또 하느님께서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는 것을 마음으로 믿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곧 마음으로 믿어서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이게 되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게 됩니다."(로마서 10:9~10) 바울이 한 이 말로 인하여 2000년 동안 그리스도교가 오도되어 온 것이다.

다석전기 집필 = 다석사상연구회 회장 박영호
증보집필 및 편집 = 이상국 논설실장
@아주경제 '정신가치' 시리즈 편집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