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오디세이 14] ‘마테오 팔코네’의 섬, 코르시카
나폴레옹과 콜럼버스가 태어난 그곳
오래전에 읽은 프랑스 단편소설이 생각나 코르시카(Corsica)로 갑니다. 프로스페르 메리메(1803~1870)가 쓴 <마테오 팔코네>입니다. 마테오 팔코네는 이 소설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마테오 팔코네는 코르시카 최고의 사냥꾼입니다. 어떤 짐승도 그의 표적이 되면 달아날 수 없습니다. “한 방에 한 마리씩 죽인다”는 ‘원 샷 원 킬(one shot, one kill)’의 원조일지도 모릅니다. 과묵하면서 성실한 그는 명예와 신의를 소중히 여깁니다. 팔코네와 가까운 마을사람들도 그가 쳐둔 명예와 신의의 경계를 넘지 않습니다. 넘는 즉시 그의 총구나 날카로운 단도가 자신을 향할 것이기에.
어느 날 팔코네는 열 살 된 아들을 집에 두고 아내와 함께 외출합니다. 아들 혼자 있는 산속 집 마당에 산적이 뛰어 들어옵니다. 총상으로 피를 흘리는 산적은 아들에게 5프랑을 준 후 뒤쫓아 올 경찰에게 아무 말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건초더미 속에 숨습니다. 금방 경찰관들이 나타나 아들에게 산적의 행방을 묻습니다. 아들은 산적과의 신의를 지키려고 애씁니다. 경찰 우두머리의 질문을 무시하거나 조롱을 섞어 대답합니다. 아이의 이런 말투에는 아버지의 평소 행동에서 영향을 받은 듯 관헌에 대한 반감, 무시 같은 것도 묻어 있습니다. 팔코네는 권력자의 보호나 비호 없이 자기 힘만으로 가족을 지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품은 사람입니다.
경찰 우두머리는 처음엔 아이를 협박합니다. 산적을 숨기는 게 죄가 된다고, 벌 받고 싶냐고 협박하지만 아이는 오히려 아버지가 코르시카 최고의 사냥꾼 마테오 팔코네라고 맞섭니다. 경찰관 중에는 이 집이 팔코네의 집이라는 걸 알고 마당에 들어서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경찰 우두머리는 자기가 차고 있는 은시계에 아이가 호기심을 보이자 시계를 미끼로 회유에 나섭니다. 아이는 은시계에 넘어가 산적이 숨어 있는 건초더미를 손가락으로 가리킵니다.
때마침 집에 돌아온 팔코네는 “너 따위가 마테오 팔코네의 아들이냐!”고 소리치며 끌려가는 산적과 시계를 손에 든 아들을 봅니다. 자초지종을 알게 된 그는 ‘신의를 어기고, 가문의 명예를 더럽힌’ 아들을 숲속으로 끌고 갑니다. 혼자 남아 성모 마리아에게 기도하던 아이의 엄마는 총소리 한 방을 듣습니다. 잠시 후 남편이 혼자 나타납니다.
법률을 공부하고 관리로 평생을 지낸 메리메는 글을 잘 쓰는 것이 알려지면서 <적과 흑>을 쓴 스탕달(1783~1842) 등 당대 프랑스의 대표적 문인들과도 친밀했습니다. 말년에는 프랑스 상원의원도 지냈지요. 문화재 시찰관으로서 코르시카에 머물 때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쓴 작품이 <마테오 팔코네>입니다. 제도권 법률보다는 전통과 관습에 따라 개인 간의 분쟁을 해결하던 코르시카 사람들을 메리메는 <콜롱바>라는 장편소설에도 담았습니다. <마테오 팔코네>보다 11년 뒤인 1840년에 나온 <콜롱바>는 암살당한 아버지의 복수를 하려는 코르시카의 처녀 ‘콜롱바’가 주인공입니다. 혼자 힘으로는 복수가 불가능한 콜롱바는 군대 간 오빠를 기다렸지만 오빠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법칙은 피의 악순환이라는 걸 알기에 선뜻 복수에 나서지 않습니다. 콜롱바는 이런 오빠를 자신의 계획에 끌어넣기 위해 또 다른 계획을 세우는데 ….
코르시카 사람들이 ‘벤데타(Vendetta)’라고 부르는 ‘가문의 복수’는 메리메 외에도 오노레 발자크(1799~1850)와 알렉상드르 뒤마(1802~1870) 같은 프랑스 작가들도 소설로 다뤘습니다, 요즘에도 벤데타를 주제로 한 소설들이 코르시카를 무대로 한 신작 소설 리스트 상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제목이 아예 ‘벤데타’인 것도 있고, ‘블러드라인(Bloodline,혈족)’이 제목인 소설도 있습니다. 줄거리를 잠깐 봤더니 피가 낭자하고 비명이 끔찍합니다.
프랑스에서는 ‘꼬흑스(Corse)’라고 부르는 코르시카 섬은 프랑스의 제주도라고 할 만합니다. 해변은 해변대로, 산은 산대로, 또 도시는 도시대로 볼거리, 즐길 거리가 다양하고, 먹고 마시면서 놀고 지내기도 좋아 파리를 비롯 프랑스 본토 사람들이 비행기로 훌쩍 건너와 여러 날 푹 쉬고 충전을 다시 한 후 삶의 터전으로 복귀한다는 거지요. 지중해가 내려다보이는 깎아지른 절벽 등 경치 좋은 곳에는 프랑스 부자들의 별장이 숨어 있고, 수없이 많은 예쁜 해안이 널려 있어 여행자들을 불러들입니다.
요즘 코르시카의 모습에서는 잘 연상되지 않는 벤데타는 코르시카의 기구하고 복잡한 역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합니다. 코르시카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도 등장합니다. 귀향길의 오디세우스를 노래로 유혹한 ‘세이렌’의 섬이 코르시카입니다. 요정인 세이렌들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에서 감미로운 노래로 뱃사람들을 유혹해 그들의 배를 절벽에 부딪혀 난파시키고는 즐거워했다지요. 오디세우스는 부하들을 시켜 자기를 배의 기둥에 묶도록 한 후, 부하들은 세이렌의 노래를 못 듣도록 서로 귀를 밀랍으로 틀어막게 해 난파를 막았습니다.
호메로스의 시대를 지나 역사시대가 시작된 이래 코르시카의 주인은 수없이 바뀌었습니다. 지중해 동쪽 페니키아와 그리스의 식민지였다가 카르타고에 복속됐으며 로마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코르시카에서 양과 꿀 송진 밀랍 등 당시의 전략 물자를 공급받던 로마는 코르시카 사람들을 노예로 데려가기도 했는데 성격이 급하고 반골 기질이 강해서 ‘가성비’는 낮았다고 합니다.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후엔 반달족과 동고트족 등 게르만족이 점령했고, 이후엔 아랍 무슬림이 지배했습니다. 무슬림이 물러나자 이탈리아 반도에 있던 제노아공화국과 피사공화국이 다스리다가 스페인의 아라곤 왕국의 간섭을 받기도 했습니다. 다시 코르시카를 손에 넣은 제노아가 코르시카 사람들에게 가혹할 정도로 무거운 세금을 부과한 것이 섬사람들의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 무렵 프랑스에 큰 빚을 진 제노아는 섬사람들이 덤벼들자 이때다 하고 코르시카를 프랑스로 넘겨 버립니다. 나폴레옹이 태어난 1769년의 일입니다.
코르시카 사람들은 독립을 선언하고 나라를 세웠으나 프랑스 군대에 유린당합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고, 나폴레옹이 프랑스 황제가 됐지만 나폴레옹은 코르시카를 돌보지 않았습니다. 코르시카 지도자들은 나폴레옹 전쟁 때 영국 편을 잠깐 들었는데, 전쟁이 끝나자 프랑스는 이때의 책임을 물어 코르시카에 전보다 더 혹독한 정책을 폈습니다. 경제는 쇠퇴하고 가족이 아닌 사람을 믿지 않는 사회가 됐습니다. 프랑스의 법과 제도는 실생활에서는 무시됐습니다. 마테오 팔코네의 아들이 경찰을 조롱한 게 설명됩니다. 벤데타가 도처에서 벌어졌습니다. 1821년부터 1852년 사이에 4,300명이 가문 간의 전쟁으로 살해됐다고 합니다.
벤데타의 전통 속에 녹아 있는 의리 존중, 복수심, 인명 경시는 코르시카 바깥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프랑스의 계속된 억압으로 경제가 더 어려워지자 코르시카 젊은이들은 본토로 진출했습니다. 코르시카와 가까운 프랑스 제2의 도시 마르세이유 항구에 정착한 젊은이가 많았습니다.
이들은 곧 조직을 이뤄 항구의 어두운 곳을 접수하고 반대 조직에게는 무자비한 응징을 가하는 벤데타의 전통을 이어갔습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마르세이유를 노조의 지원을 받는 공산주의자 시장이 이끌게 되자 프랑스 당국과 미국은 이 조직을 이용해 이를 종식시킵니다. 이때 기여를 인정받아 처벌에서 빠져나간 조직 일부는 마약 밀매매, 매춘, 불법도박, 공갈·협박으로 세력을 키워갑니다. 마르세이유를 출발한 막대한 양의 마약이 미국으로 들어오자 미국은 프랑스 경찰의 도움을 받아 조직의 와해에 나섰습니다.
1972년도 오스카 작품상을 받은 영화 <프렌치 커넥션>은 이 조직, ‘코르시카 마피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명배우 진 해크먼이 마르세이유로 파견된 미국 형사 ‘뽀빠이’를 연기했습니다. 마약조직을 뒤쫓다 납치돼 강제로 마약주사를 맞고 마약중독자가 된 뽀빠이 형사가 마약을 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장면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가까스로 정신과 체력을 되찾은 그가 조직 두목을 뒤쫓는 장면도 일품이었고요. 이런 노력 끝에 마르세이유를 중심으로 한 코르시카 조직은 결정적인 타격을 받아 와해되었다고 합니다. 코르시카 마피아가 코르시카에서 멀지 않은 시칠리아 마피아처럼 ‘명성’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라고 합니다.
코르시카에서는 프랑스의 동화정책이 성과를 거두어 1950년대 이후에는 과거 수준의 벤데타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프랑스가 코르시카에 초등학교 의무교육을 실시하면서 프랑스어를 가르쳤고, 프랑스 문화를 접한 코르시카 사람들은 강대국의 일원으로서 얻는 이점에 눈을 뜨게 되었으며, 자신들도 프랑스의 공직에 진출해 지배 세력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거지요. 이런 과정을 거친 끝에 코르시카, 복수의 섬이 오늘날 관광휴양지로서의 명성을 얻게 된 겁니다.
중학생 때 읽었던 <마테오 팔코네>의 결말은 아직도 충격적입니다. 명예를 위해 아들을 쏘아 죽이는 비정한 아버지 모습이 여전히 생생합니다. 하느님이 믿음을 확인하기 위해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죽여서 자기를 위한 제사를 지내라고 했다가 취소한, 성경 창세기의 한 토막도 떠오릅니다. 성모 마리아에게 기도를 하며 기다리던 아내에게 팔코네가 “애가 성모 마리아에게 마지막 기도는 했소”라고 말한 마지막 장면도 생각나고요.
코르시카는 제노아 태생으로 알려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1451~1506)의 진짜 출생지입니다. 코르시카의 칼비 태생인 콜럼버스는 1486년 스페인 여왕에게 서인도 탐험대를 지원해달라면서 고향을 이탈리아의 제노아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칼비 사람들이 스페인 군대를 몰살했던 과거를 감추려 한 것이지요.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의 원작자가 메리메입니다. 하마터면 빠트릴 뻔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