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또는 PB…대형마트 갑질에 우는 제과사들

2020-03-09 18:00
  • 글자크기 설정

국내법상 스낵류 상표권 침해 주장 쉽지 않아

식품업계 "손 놓고 매출 빼앗기는 형국"

홈플러스 본점 매대에 PB 심플러스 제품인 '카라멜 꽈배기', '짱이야'가 일반 브랜드 제품과 함께 진열돼 있다. [사진=이서우 기자]

자체 브랜드(PB: Private Brand)란 이름의 대형마트 갑질에 식품 제조사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9일 공정거래위원회 유통거래과 관계자는 "PB가 기존 일반 브랜드(NB) 수요를 잠식하는 행위를 포함해 유통사의 불공정 하도급 거래를 전반적으로 살피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 관련 법규가 미비해 실질적인 제재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국내 2위 대형마트인 홈플러스에서는 PB 브랜드 '심플러스(Simplus)'를 통해 스낵류 '짱이야'와 '카라멜 꿀꽈배기', '콘칩'을 각각 판매 중이다.

심플러스는 임일순 홈플러스 대표가 2017년 10월 취임 후 내놓은 첫 작품이다. 임 대표는 "선순환 유통 모델을 구축하겠다"며 심플러스를 통해 본질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심플러스 스낵 제품명에서 어느 정도 알 수 있듯이 각각 크라운 '못말리는 신짱', 농심 '꿀꽈배기', 크라운 '콘칩'이 원조다.

농심 꿀꽈배기는 1972년, 크라운 콘칲은 1988년 8월 출시됐다. 크라운 못말리는 신짱은 2000년 시장에 나왔다. 최소 10년 이상 소비자 입맛을 통해 검증된 제품들만 유통사들이 PB로 만든다는 얘기다.

홈플러스는 심플러스 스낵을 이들 NB 제품과 함께 나란히 진열해 판매하고 있다. 제품 이름과 포장이 비슷한 데다, 판매가는 PB가 적게는 100~200원, 많게는 절반 가까이 더 싸다.

대형마트 1위 이마트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마트 ‘노브랜드(No-Brand)’는 브랜드 이름값 등 거품을 빼고 소비자가 원하는 기능만 살린다는 의미로 나온 PB다. 하지만 노브랜드 초코파이는 오리온 초코파이 유명세에, 초콜릿 제품 명가인 롯데제과의 제조기술을 더해 나왔다.

이날 이마트 온라인몰 기준 노브랜드 초코파이 판매가는 468g 1상자 기준 1980원이다. 같은 용량의 오리온 초코파이는 3840원이다. 노브랜드와 비교하면 2배 가량 차이가 난다.

노브랜드 때문에 초코파이 원조인 오리온보다 억울한 것은 롯데제과다. 자사 제품을 만들면서, 비슷한 품질의 초코파이를 이마트에도 납품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마트몰에서 롯데제과 ‘롯데 초코파이’ 판매가는 420g 2상자에 5900원, 1상자 약 2900원이다. 역시 노브랜드 초코파이가 1000원 가량 더 싸다.

PB 계약에서 마진을 누가 더 포기했느냐는 둘째치고, 소비자 선택의 1순위가 가격이라면 롯데제과로서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공정위 산하 한국공정거래조정원이 2018년 발간한 '대규모 유통업자의 PB상품 유통에 관한 공정거래 정책 시사점 연구' 보고서에서는, 이처럼 유통업자들이 제품개발을 위한 NB상품 제조사들의 노력에 편승하려는 행태를 '무임승차(Free-Riding)'라고 설명했다.

식품업체들은 자사 제품과 거의 유사한 유통사 PB에 대해 내부적으로 법무팀에 자문을 구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법상 스낵류는 상표권 침해를 주장하기가 쉽지 않다. 패키지 색상이나 과자 모양 등이 조금만 달라도 다른 제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통채널에 입점해야 하는 계약상 '을'의 입장이라 손 놓고 매출을 빼앗긴다고 식품업계는 하소연했다.

제조사들의 신음에도 유통사들의 PB 키우기는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홈플러스 PB 심플러스 감자칩은 2018년 5월 판매를 시작한 지 4개월 만에 100만개나 팔려나갔다. 이 기세에 힘입어 지난해는 또 다른 PB 브랜드를 선보였다. 생활용품 등을 위주로 내놓은 고급 PB '시그니처'는 2019년 11월 28일부터 12월 27일까지 자사 전체 상품 매출이 전월 동기 대비 21% 신장했다.

롯데마트 PB '온리프라이스'도 3주년을 맞아 누적 매출이 3000억원에 달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PB 제품을 통해 중소 제조사가 판로나 안정적인 생산처를 확보하는 등의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면서도 "정책적으로 PB를 금지할 수는 없지만, 유형별로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