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아시아 시장에서 국제유가는 낙폭을 확대하면서 전거래일 대비 30% 넘게 자유낙하하고 있다. 가뜩이나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세계적인 경기둔화에 원유 수요가 침체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사우디발 '가격전쟁'에 따른 공포가 원유 시장을 집어삼켰다.
이날 오후 1시 10분 현재 국제유가 기준물인 브렌트유 선물은 전일비 129.91%(13.54달러) 추락한 배럴당 31.73달러를 가리키고 있다.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배럴당 30달러가 붕괴됐다. WTO는 같은 시간 32.41%(13.38달러) 곤두발질 치며 배럴당 27.90달러에 거래 중이다.
지난주 OPEC+ 정례회의에서 러시아의 반대로 추가감산 합의가 무산되자,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인 사우디는 원유 4월물 수출가격을 끌어내리고 생산량을 늘리기로 하는 '가격 전면전'에 돌입했다. 단기적인 충격을 감수하고라도 감산을 반대했던 러시아를 다시 협상 테이블로 불러내고, 미국 셰일유 산업 등 경쟁업체를 고사시키기 위한 극약처방으로 풀이된다. 로이터는 사우디의 산유량이 현재 일일 970만 배럴에서 1250만 배럴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전했다.
국제유가 폭락은 원유수출로 연명하는 베네수엘라나 이란 등 주요 산유국들의 재정을 위협하고, 미국의 셰일유 산업을 뒤흔들 수 있다. 또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충격을 완화하려는 중앙은행과 재정당국의 셈법을 어렵게 만들 공산이 크다.
유라시라그룹의 로히테쉬 다완 에너지 디렉터는 블룸버그에 "원유는 세계 경제 구석구석과 연결돼 있기 때문에 유가 불안은 미·중 무역전쟁보다 세계 경제에 더 큰 파급효과를 던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가 아시아를 넘어 유럽 전역과 미국에서 가파른 확산세를 보이는 것도 계속해서 시장의 불안을 키우는 요인이다. 이탈리아를 거점으로 유럽에서 확진자가 1만 명을 돌파했고, 미국에서도 확진자가 500명을 넘었다. 뉴욕 등 주요 대도시에서 지역사회 감염 사례가 보고돼 현재로선 확산세가 언제 정점을 찍을지 예측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치면서 금융시장의 불안도 증폭됐다. 투자자들은 위험자산을 팔아치우고 안전자산으로 도망쳤다.
이 시간 일본 증시 닛케이지수는 전일비 5.3% 추락하면서 2만선이 무너졌다. 코스피와 홍콩 항셍지수도 전일비 4% 가까운 폭락세다. 미국 뉴욕증시 주요지수 선물도 5% 가까이 추락하면서 9일 폭락장 출발을 예고하고 있다. S&P500지수 선물이 4.9% 떨어져 2818.88을, 나스닥지수 선물이 4.84% 추락하 8091.62를 각각 가리키는 중이다.
반대로 선진국 국채나 엔화 같은 안전자산은 급등세다. 이날 미국 10년물 국채 수익률이 역대 처음으로 0.5% 아래로 밀려났고, 30년물 수익률도 1% 밑으로 떨어졌다. 국채 가격과 수익률은 반대로 움직인다. 호주와 뉴질랜드 10년물 국채 수익률도 일제히 역대 최저점까지 밀려났다.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엔화는 달러를 상대로 2016년 이후 최고로 뛰어올랐다. 엔화 가치와 반대로 움직이는 엔·달러 환율은 2.4% 추락해 102.72엔을 가리키고 있다.
BIS 옥스퍼드 이코노믹스 사라 헌터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상황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현재로서 가격을 예측하는 게 극도로 어렵다"면서 "시장의 동요가 당분간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 사이 경제 비관론도 짙어지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인 대유행 조짐을 보이면서 경제에 지속적으로 충격파를 미치고 있다면서, 주요 경제국들이 2개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하는 기술적 침체에 빠질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