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지푸라기라도…' 안 맞는 퍼즐, 기막힌 조율법

2020-02-18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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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돈 들어왔을 땐, 아무도 믿으면 안 돼…그게 네 부모라도."

출입국 관리소 공무원 태영(정우성 분)은 애인의 사채 빚을 뒤집어쓴다. 고리대금업자 박 사장(정만식 분)은 매일 그를 위협하고 태영은 사채 빚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쓴다.

미란(신현빈 분)은 사기를 당해 빚더미에 올랐다. 남편(김준한 분)은 분노와 배신감에 끊임없이 그를 괴롭히고 미란은 불행의 늪에 빠지고 만다. 그는 불법체류자 진태(정가람 분)를 동원해 불행을 끊어내려고 하지만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중만(배성우 분)은 아르바이트로 가족의 생계를 이어간다. 아내 영선(진경 분)과 치매를 앓는 어머니 순자(윤여정 분)를 부양하고 있지만 생활은 더 나빠지기만 한다. 순자의 치매 증세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중만과 영선은 지쳐간다.

연희(전도연 분)는 과거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는 인물이다. 새 인생을 살기 위해 계획을 짜지만 녹록지만은 않다.

태영부터 연희까지. 모두가 '새 삶'을 꿈꾸지만, '새 삶'에는 돈이 든다. 기적처럼 벼랑 끝에 몰린 이들 앞에 돈 가방이 떨어지고 이들은 마지막 기회를 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린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사건들로 돈 가방은 계속해서 떠돌고, 절박한 이들은 인생을 바꿀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위해 모든 걸 내걸기로 한다. 처절하고, 절박하며, 영리하게.
 

'지푸라기라도...' 스틸컷 중, 연희 역의 전도연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이하, '지푸라기')은 단편 '삭제하시겠습니까?' 다큐멘터리 '남미로 간 세 친구'를 연출한 김용훈 감독의 상업 영화 데뷔작이다. 제49회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공식 초청작.

익숙한 이야기와 구성이다. 퍼즐 조각을 쏟아놓고 하나씩 그림을 맞춰가는 구성은 이미 소설·영화 등에서 봐왔다. 원작조차도 일본호러소설대상 단편상·에도가와란포상 동시 수상한 동명 소설이니. 원작이 가진 기본 뼈대를 비틀긴 힘들었으리라 짐작한다. 하지만 김 감독은 익숙한 이야기와 구성을 난도질해 자기 식대로 퍼즐을 완성했다. 여기저기 맞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그마저도 매력적이다. 때로는 투박하고 때로는 매끄럽게 오리고 붙인 구성은 '지푸라기' 식 리듬을 느끼게 한다.

등장인물들은 투박하게 등장한다. 공무원 태영부터 가정주부 미란, 치매 노인 순자 등은 전혀 다른 조각처럼 뚝 떨어져 연관성 없이 그려진다. 그러나 이들이 하나의 연결점을 잡고 돈 가방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완성하는 과정을 보면 그 순간이 꽤 짜릿하다. 등장인물들이 한 사건이나 순간을 공유하는 게 아니라 순차적으로 배열되어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아쉬운 점도 있다. 초반부 어수선한 전개는 관객들의 눈을 단박에 사로잡지 못한다. 여기저기 흩어진 이야기들을 주워 모으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미 관객들에게 익숙한 구조인데 이야기가 어수선하다 보니 오히려 관객들이 몰입을 놓치기 쉬워 보인다.

영화를 보고 빼놓을 수 없는 건 미장센(mise en scene, 배경·조명·의상·카메라 워킹 등 화면 구성) 부분이다. 미술·촬영 등이 '지푸라기'를 더 풍성하게 표현할 수 있게 했다. '최종병기 활' '끝까지 간다' '터널' 등을 찍은 김태성 촬영감독, '1987' '불한당: 나쁜놈들의 세상'의 한아름 미술감독, '남과 여'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의 조희란 의상실장 등 베테랑 제작진의 공이 컸다.

'억' 소리 나는 배우 라인업이니만큼 연기도 만족스럽다. 어수선한 인물들을 단단하게 묶어주는 건 연희 역의 전도연. 그의 연기는 언제나 놀랍다. 정우성은 자신만의 해석으로 위트 있는 태영 역을 그려냈다. 만나는 인물마다 '케미스트리'를 만들어 내니 흥미롭다. 짧은 출연 분량이지만 윤여정의 무게감은 상당하고 배성우와 정가람의 연기력은 그야말로 안정적이다. 미란 역의 신현빈과 두만의 부하직원 메기 역의 배진웅은 '지푸라기'로 인해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될 배우들이다. 19일 개봉. 러닝타임 108분 청소년관람 불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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