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과 장수는 상극이다

2020-02-04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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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의 100투더퓨처 (20)

[박상철 교수]



<100 to the future> 필자 박상철 교수 =이제 120세 시대로 나아가는 지금. 노화(老化) 연구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박상철 교수의 ‘100 to the future(백, 투더퓨처)’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박 교수는 서울대 의과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은 뒤 30년간 서울대 의대 생화학과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노화세포사멸연구센터와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을 역임했고, 현재 전남대 연구석좌교수로 활동 중입니다. 노화 분야 국제학술지 ‘노화의 원리’에서 동양인 최초 편집인을 지냈고 국제 백세인연구단 의장, 국제노화학회 회장을 역임했습니다. 노화 연구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노화이론을 세운 그의 논문은 과학저널 ‘네이처’지에 소개됐습니다.

<100 to the future>는 100세까지 보편적으로 사는 미래에 대비하자는 의미로, 영화 '백투더퓨처'의 미래 귀환 뉘앙스를 차용한 시리즈 제목입니다. 이제 우리는 100세 시대를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앞당겨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필자는 그 길어진 삶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건강하고 풍요로운 내일에 대해 실감나게 짚어나갈 계획입니다.<편집자주>


전염병과 장수는 상극이다


역사적으로 장수지역을 살펴보면 전염병의 확산과 대척되는 특성을 볼 수 있다. 기존의 장수지역이라고 거론되어 왔던 코카서스의 압하지아, 파키스탄의 훈자, 에콰도르의 빌카밤바 등은 모두 산맥 속의 오지이다. 근래에 장수지역으로 확인된 오키나와나 이태리의 사르데냐 등은 섬이다. 그 섬에서도 특히 장수도가 가장 높다고 알려진 사르데냐의 오롤리 지방이나 오키나와의 오미손 지방은 산간지역이다. 우리나라 장수지역으로 처음 확인된 예천, 상주, 거창, 순창, 담양, 구례, 곡성은 모두 산간지방이고 여기에 도서지역인 제주도가 포함되어 있다. 깊은 산간 지방이나 도서지역이 장수 지역으로 부각된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 경제상태가 좋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위생상황이 불비하였던 시절에는 전염병에 대한 대비책이 원활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교통이 좋고 외부와의 교류가 높은 지역은 감염성 질환에 대한 노출이 높을 수 밖에 없어 집단으로 수많은 희생자가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반면 교통이 나쁘고 교류가 없는 지역이 이러한 상황에서는 훨씬 더 유리한 생존 조건을 가지게 된다. 지역이 고립되어 있을수록 전염병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생명을 보존하여 장수를 이룰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안전하고 장수할 수 있는 곳이라 일컬어온 정감록에 기록된 10승지(十勝地)로 알려진 장소들도 모두 깊은 산속 지역이다. 장수와 연관한 지리적 특성에 근거하여 장수를 설명하는 학설 중에 장수의 고립설(isolation theory of longevity)이 있다. 외부와의 차단을 통하여 전염성 질환의 피해를 막아야만 주민의 장수를 이룰 수 있다는 개념이다.

인류는 다양한 전염병에 대하여 병원균을 발견하고 치료방법을 개발하였을 뿐 아니라 백신 공급으로 전염병 확산을 사전에 예방하여 비약적인 수명연장을 이룰 수 있었다. 20세기들어 인간의 수명이 단 1세기만에 30년이상 증가된 중요한 요인으로도 환경생태적으로는 상하수도 시스템에 의한 위생관리와 전기공급을 통한 거주공간의 안정과 음식물의 안전을 꾀할 수 있었고, 의학적 성과에 의한 질병치료와 백신을 통한 예방에 성공한 업적을 꼽고 있다. 그래서 수많은 감염성질병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어간다고 믿어왔으며 비감염성질환인 대사성 비만, 고혈압, 당뇨, 암 및 퇴행성 뇌질환 등에 의한 피해를 더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나 인간의 생태환경과 식생활 패턴이 질적 양적으로 변화하면서 과거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새로운 감염성 질환이 등장하여 인간에게 새로운 위협이 되고 있다. 특히 야생동물을 집단 대량 사육하고 판매하는 과정에서 생물학적 신종 변이병원성 바이러스나 박테리아가 발생하여 새로운 충격을 주고 있다. 아직 처치방안이나 예방 백신이 미비한 상황에서는 대처방안이 한정적일 수 밖에 없다. 신종변이형 병원체에 의한 감염성 질병이 발생한 경우에는 확산을 차단하는 방안에 우선을 둘 수 밖에 없다. 예방차원의 감염위험자 격리와 확산방지차원의 환자 격리 방안이 있다.

국가차원에서 공식적으로 검역과 격리가 최초로 실시된 사례는 14세기 페스트가 창궐한 유럽의 라구사(현재 크로아티아 드브로닠)에서 입항하는 선박과 여행인들을 40일 간 격리하여 페스트유행을 차단한 것이다. 이때 40일을 격리하여 이태리어 quaranta giorni (40일)라는 어휘에서 검역(quarantine)이라는 용어가 나와 사용되고 있다. 이후 검역과 격리 기간에 대해서는 30일, 20일 등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대부분의 감염성질병의 잠복기가 14일 이내로 밝혀진 이래 현재는 공식적으로 2주를 검역차단기간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러나 치료방법이 없는 감염환자를 평생 격리한 사례도 있다. 장티푸스를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파시킨 타이푸스 매리(Typhoid Mary)라는 여성은 평생 병원에 격리되었다. 집단 격리의 대표적 사례는 나병과 결핵환자의 평생격리였다. 우리나라도 소록도를 비롯한 나병요양원과 결핵요양원들이 있었다. 검역의 역사는 전염병이 발생할 때마다 차단을 최우선으로 하여 왔다. 나병이나 결핵과 같은 만성 전염병보다도 황열병, 콜레라, 천연두, 인푸루엔자 등과 같은 급성전염병의 경우 상황이 훨씬 심각하여 바로 서둘러 국경을 봉쇄하고 공항과 항만 관리를 철저히 하여 확산을 방지하여 왔다. 신종 감염성 질환이 발생하면 우선 방역선(채cordon sanitaire)을 설치하여 환자와의 접근을 차단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우리말에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이 있다. 전염병 확산을 방지하는 최고의 황금율은 방역조치의 신속한 결단과 실행뿐이다.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우한폐염의 세계적 확산은 춘제를 앞두고 수억명의 인간이동이 예측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제적 차단조치를 취하지 않은 당국의 안이한 대응이 화를 불러왔다.

최근 유행하는 HIV, 인푸루엔자, 사스, 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 우한폐염은 모두 변형이 쉽게 일어나는 RNA바아러스라는 점에서 더욱 백신개발을 어렵게 한다. 더욱 호흡기성 감염병은 면역기능이 낮은 어린이와 노인의 경우 이환이 높아질 수 밖에 없으며 특히 폐기능이 크게 저하되어있는 노인의 경우는 치명적일 수 밖에 없다. 언젠가는 백신이 제조되리라고 기대하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예방을 위해서는 접근을 방지하여 감염을 막아야 한다. 철저한 차단만이 대안이다. 여기에는 어떠한 양보도 없어야 한다. 그러나 너무도 과한 우려는 금물이다. 인류역사에서 모든 질병은 결국 해결되어 왔다. 수많은 생명과학자와 의료진의 헌신적인 노력이 깃들어 있음을 기억하여야 한다. 다만 격리와 차단의 경우 제기될 수 밖에 없는 인권의 문제는 보다 큰 인류의 생존을 위하여 부득이 제한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사람들간의 이해와 협조가 필요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한 교민이 철수하여 왔을 때 이들을 따뜻하게 수용해준 아산, 진천 주민들의 인간애(人間愛)에 감동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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