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생리학 박사 출신의 재러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가 1997년에 쓴 퓰리처상 수상작 ‘총, 균, 쇠(Guns, germs, and Steel)’는 14세기 유럽의 역사를 바꿔놓은 판데믹(Pandemic·범세계적 감염 질병) 페스트가 어떻게 출현했는가를 이렇게 설명한다.
“중국과 유럽의 육상 무역을 위한 새로운 교역로 실크로드(비단길)가 뚫리면서 중앙아시아로부터 벼룩이 우글거리는 모피들이 유럽으로 신속하게 운반됐다. 쥐벼룩이 퍼뜨리는 페스트의 창궐로 1346~1352년 6년 사이에 7500만명 정도였던 유럽 인구의 4분의1이 죽었다. 사망률이 70%에 이른 도시들도 있었다.”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유럽에 페스트를 퍼뜨린 주범으로 중국과 유럽 사이를 연결한 실크로드를 지목했다. 중국에 '헤이쓰빙(黑死病)'이라는 병명으로 남은 페스트의 창궐로 유럽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자 봉건영주와 농노가 주축이던 봉건제도가 무너지고, 유럽 역사는 14~16세기의 르네상스 시대로 넘어갔다는 것이다.
WHO(세계보건기구)는 ‘우한(武漢) 폐렴’으로 우리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신형 코로나(Novel Corona)’ 바이러스 ‘2019-nCoV’의 확산 과정에 대해 이런 ‘상황보고(Situation Report)’를 작성해 놓았다.
“2019년 12월 31일~2020년 1월 3일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에서 병의 원인을 알 수 없는 폐렴 환자 44명이 발생했다고 중국 정부 당국이 보고해왔다···. 2020년 1월 13일 태국 정부가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유입된 신형코로나 바이러스(2019-nCoV)를 실험실에서 확인했다는 보고를 해왔고, 일본 노동복지위생성도 1월 15일 2019-nCoV를 실험실에서 확인했다고 보고해왔다. 1월 20일에는 한국의 WHO 연락담당관이 한국에서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 첫 발병 케이스를 보고해왔다.”
WHO의 상황보고는 1월 31일 현재 전 세계적으로 9826명의 2019-nCoV 환자가 확인됐고, 이 가운데 9720명은 중국 내부에서, 106명은 중국 외부 19개국에서 확인됐다고 기록했다. 사망자 213명은 모두 중국 내부에서 나왔다.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의 빠른 확산에 대처하는 중국과 한국, 일본 정치지도자들의 움직임은 굼뜨기 짝이 없다. 신형 코로나바이러스를 ‘신형 관상병독(冠狀病毒)’이라고 명명한 중국의 최고 권력자 시진핑(習近平) 공산당 총서기가 7명의 최고 수뇌부를 소집한 정치국 상무위원회를 개최한 것은 최초 환자가 발생한 지 한 달 가까이 흐른 1월 25일이었다. 그때는 이미 중국 내에서만 1297명의 감염자가 확인된 뒤였다. 시진핑 당 총서기는 사흘 뒤인 1월 28일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WHO 사무총장을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에서 접견하면서 “역정(疫情)은 마귀이며, 우리는 마귀가 결코 숨을 수 없도록 하겠다(疫情是魔鬼,我們不能讓魔鬼藏匿)”는 주술(呪術) 같은 다짐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페이스북에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와 관련한 대국민 메시지를 올린 것은, 시진핑 총서기가 정치국 상무위원회를 개최하고 모든 중국 관영 방송과 온라인 미디어들이 개최 사실을 일제히 보도한 다음 날인 1월 26일이었다. 설 연휴로 경남 양산에 내려가 있던 문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올린 메시지에서 “정부가 필요한 노력을 다하고 있으므로 국민들께서는 과도한 불안을 갖지 말라”는 뜬금없는 말을 했다. “질병관리본부장과 국립 중앙의료원장에게 전화해 격려와 당부를 했다”고도 고백했다. 문 대통령은 이틀 뒤 설 연휴가 끝난 28일 국립중앙의료원을 방문해서는 “조금 과하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강력하고 빠르게 선제적 조치를 취하라”는 뒷북 수정지시를 내렸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 대처를 위해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회가 소집된 이틀 뒤인 27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을 법률에 의해 강제 조치가 가능한 감염증으로 지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간의 호흡기를 공격하는 치명적인 판데믹 바이러스가 출현한 것은 이번 2019-nCoV가 처음이 아니다. 중국 내부 사정에 밝은 홍콩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의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도드웰(Dodwell)은 1월 27일 “전 세계 사람들의 기관지와 허파를 공격하는 판데믹의 악몽은 대체로 6년마다 한 번씩 출현하고 있다”고 적시했다. 2013년에는 중동호흡기 증후군 메르스(MERS·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2009년에는 우리가 ‘조류독감’으로 이름 붙인 H1N1 Swine Flu, 2003년에는 ‘사스(SARS·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중증급성호흡기 증후군)’가 출현했다. 이 가운데 사스는 8000명의 확진자 가운데 774명의 사망자를 냈고, 조류독감은 3만여명을 감염시켜 1만2220명의 목숨을 빼앗아 갔으며, 메르스는 1200명의 확진자 가운데 444명의 사망자를 기록했다. 메르스는 한국에서도 186명이 감염돼 38명이 사망하는 불행을 낳았다.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총, 균, 쇠’에서 이런 비극이 “인간과 세균 사이에 진화적 경쟁 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것이며, 변종 바이러스들이 인간의 면역성을 뛰어넘어 인간의 항체가 인식하는 바이러스의 분자 구조를 변화시키는 수단으로 증식되기 때문에 새로운 인플루엔자가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인간의 호흡기에 침투한 변종 바이러스들은 숙주가 된 인간이 기침이나 재채기를 하도록 인간의 신체를 공격해서 새로운 숙주를 향해 뿜어 나감으로써 확산한다는 것이다.
지구상에는 인류와 함께 박테리아나 바이러스 같은 병원체들이 공존해서 살고 있으면서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는 경고를 담은 SF(Scientific Fiction)와 영화들이 제작돼 왔다. 1897년 영국 작가 허버트 웰스(Wells)는 ‘문명 간의 우주 전쟁’이라고 번역해야 할 ‘The War of Worlds’를 썼다. 웰스는 화성인들의 공격으로 인류가 종말의 위기를 맞았다가, 지구인들보다 월등한 무기체계를 보유하고 있던 화성인들이 지구상의 판데믹 병균들에 대한 면역항체가 없어 갑자기 전멸한다는 스토리를 엮어냈다. 1995년에 미국에서 제작된 영화 ‘아웃 브레이크(Out Break)’는 아프리카 콩고의 유행성 출혈열 에볼라 바이러스의 창궐을 다룬 영화였고, 2011년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컨테이전(Contagion·감염)’은 홍콩에 출장 왔던 미국 여성 베스 엠호프(기네스 펠트로)가 박쥐를 중간숙주로 하는 변종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급성 호흡기 증후군에 걸려 미국으로 돌아간 뒤 사망하고, 엠호프가 직간접으로 접촉한 많은 미국인들이 감염돼 전 세계를 위협하게 된다는 스토리로 돼 있다. 영화 ‘컨테이전’은 2013년에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를 휩쓴 메르스와 이번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판데믹의 확산을 예고한 셈이 됐다.
문제는 사향 고양이를 비롯한 야생동물 식습관이 있는 광둥성에서 출현한 사스와, 중국어로 ‘비엔푸(蝙蝠)’인 박쥐를 춘제(春節) 전후에 복을 많이 받기 위해 먹는 습관이 있는 후베이성 우한에서 출현한 이번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변종 바이러스가 출현한 지역이 중국 경제와 교통의 최고 중심지라는 점이다. 광둥성은 1980년에 시작된 중국경제의 빠른 발전을 선도해온 전자·정보통신 산업의 중심지이고, 우한은 마오쩌둥(毛澤東)이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수립 이후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로 육성해온 사통팔달 교통의 요지이다. 우한은 장강(長江·양자강) 중류 한복판에 위치해 있어, 위(魏)의 조조(曹操)와 오(吳)의 손권(孫權)이 천하 패권을 놓고 적벽대전(赤壁大戰) 한 판을 벌인 곳이다.
사스는 광둥성을 중심으로 ‘세계의 공장’을 건설한 중국에 과도한 산업화와 도시화를 경고하는 의미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전통적으로 바둑판 모양으로 조각조각 분리돼 있던 중국의 지역들을 ‘7종7횡(七縱七橫)’의 사통팔달 고속철과 고속도로를 뚫어 연결한 교통망을 타고 발생한 판데믹이라는 점에서 변종 바이러스가 던지는 경고 의미를 읽어야 한다. 거기에다가 시진핑(習近平)을 핵심으로 하는 중국공산당 지도부가 강력하게 추진 중인 ‘New Silkroad Initiative(새로운 실크로드 전략)’에 따른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 또한 보다 과학적이고 환경 친화적인 정책 수립을 요구한다는 점을 중국 지도자들은 깨달아야 한다.
물론 희망은 있다. 사향고양이를 숙주로 해서 출현한 사스는 2002~2003년 겨울에 시작해서 겨울과 봄 사이의 환절기에 창궐하다가 기온이 높아진 6월 말 초여름에 소멸됐다. 중국정부는 2003년 6월 24일 사스 발생 종결을 선언했다. WHO는 그해 7월 5일 사스가 완전 통제됐음을 선포했다. 사망률은 11% 정도였다. 메르스는 가장 심각한 피해를 남긴 우리나라에서 2015년 5월부터 12월까지 7개월 정도 높은 기온 환경에서 확산돼다가 기온이 떨어지자 빠르게 통제됐다. 사망률은 20% 정도를 기록했다. 그렇다면, 사스·메르스와 비슷한 유형의 2019-nCoV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도 겨울에 출현했으니, 한국과 중국의 평균기온이 높아지는 6~7월이 되면 통제 가능해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조심스럽게 품어본다.
문제는 변종 바이러스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 하는 한국과 중국, 일본의 정치와 관료 시스템이다. 한·중·일은 칭하이(靑海)성과 티베트를 연결하는 칭짱(靑藏)고원에서 흐름이 시작되는 공기를 함께 호흡해야 하는 ‘호흡 공동체’이다. 한·중·일 3개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올해 서울에서 개최될 예정인 3개국 정상회의에서 ‘호흡 공동체’임을 자각하는 선언을 하면 어떨까. 그 선언을 통해 다시는 동아시아에서 변종 바이러스에 의한 급성 호흡기증후군이 출현하지 않도록 공조하는 한·중일 협조기구를 만든다고 밝히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