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장(名將) 김학범] ② 만학도의 길을 선택한 '비주류' 감독

2020-01-29 14:18
  • 글자크기 설정

생각에 잠긴 김학범 감독 [사진=연합뉴스]


◆ 노력을 마음에 새긴 만학도(晩學徒)

김학범 감독은 축구 지도자의 삶을 선택할 때 남들보다 뛰어나기 위해 ‘노력’을 강조했다. 명지대학교에서 체육교육학 학사를 시작으로 체육학 석사(대학원)를 따낸 그는 2006년 팀을 정상에 올려놓고도 공부에 매진했다. 만학도(晩學徒)의 길을 멈추지 않았다. 논문을 준비하며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고행이 많았다. 노력은 명지대학교 운동생리학 박사 학위라는 결과를 낳았다. 국내 1호 축구 선수 출신 박사가 됐다. 휴식기에는 견문을 넓히기 위해 유럽과 남미 등을 방문했다. 선진 축구를 경험하고 온 그는 끝없이 축구에 대해 연구하고 공부했다.
1998년부터 김 감독의 관심은 영상 분석에 있었다. 팀에 영상 분석 기계를 사달라고 졸라서 전력 분석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의 노력으로 영상 분석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I`m still Hungry”(나는 아직 배가 고프다)라는 말과 함께 대한민국 월드컵 4강 신화를 남긴 거스 히딩크(네덜란드) 감독도 2002년 월드컵 준비 당시 김 감독의 성남FC가 유일하게 전술 축구를 펼친다고 극찬했다.
 

선수들과 함께 골대를 옮기는 김학범 감독 (사진 오른쪽) [사진=연합뉴스]


◆ 경질, 경질, 경질, 경질 그리고 사퇴 '비주류 감독의 설움'

김 감독은 성남에서 2006년 우승에 이어 2007년 K리그 준우승과 AFC 챔피언스리그 4강을 이끌었다. 좋은 성적을 이어갔지만, 2008년 6강 플레이오프 탈락 등 성적 부진이 이어지자 감독직을 내려놓는다. 2010년까지 휴식을 취한 그는 중국으로 넘어갔다. 중국 슈퍼리그 허난 젠예에서 5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성적 부진 이유로 인한 두 번째 경질이었다. 2012년에는 K리그로 복귀한다. 강원FC의 부름을 받고 지휘봉을 맡았다. 2013년 팀 내부 사정과 성적 부진의 이유로 경질됐다. 자의적인 이유보다 타의적인 이유가 많았다. 짧은 기간 동안 수없이 경질된 그는 버티기에 들어갔다.

2014년 대한축구협회의 기술위원이 된 그는 6년 만에 성남FC의 지휘봉을 다시 잡게 된다. 하위권 팀을 진두지휘(陣頭指揮)해 FA컵 우승과 K리그 클래식(現 K리그1) 잔류에 성공한다.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 2015년 역시 5위로 마무리하며 안정적으로 팀을 궤도에 올렸지만, 2016년 성적 부진의 이유로 또다시 경질됐다. 프런트가 야박했다. 4번의 경질 중 한 시즌을 더 지켜본 팀은 없었다. 2017년에는 광주FC 감독으로 부임했다. 강등 직전의 팀을 구하려 '소방수'로 나섰지만, 강등을 막지 못했다. 팀에서는 남기를 원했지만, 3개월 만에 강등된 팀을 뒤로하고 자진해서 하차했다.

축구 지도자의 삶을 살았지만, 비주류 감독으로 분류됐다. 상위 팀에서의 스카우트가 아닌, 강등권 팀의 소방수 역할을 도맡았다. 부임 기간도 짧아 팀을 완성할 시간이 없었다. 노력에 비해 평가는 좋지 않았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