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이국종 교수가 포기한 ‘외상센터’ 진짜 문제는 이것

2020-01-23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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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감 없는 아주대병원, 수수방관 복지부, 미비한 의료시스템 체계 등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사진=아주경제DB]

“피눈물이 난다…이제 그만 하겠다.”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인 이국종 교수가 결국 사임을 표명하며 포기를 외쳤다. 이국종 교수는 최근 언론을 통해 아주대병원뿐 아니라 국내 의료시스템에도 회의감을 드러내며 다시는 외상센터를 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앞서 이번 사건은 유희석 아주대의료원장이 이국종 교수에게 욕설을 하는 음성파일이 공개되며 시작됐다. 이어 외상센터 운영을 두고 아주대병원과 이국종 교수 간 갈등이 극에 달했다는 언론보도가 쏟아졌다.

이국종 교수는 외상센터 현실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병원의 부족한 지원과 무책임함을 폭로했고, 아주대병원은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책임의식 없는 아주대병원

이국종 교수는 아주대병원이 본원에 병실이 있어도 외상환자에게 내주지 않았고, 정부 지원금에도 불구하고 외상센터 인력을 뽑아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주대병원이 경기남부지역을 관할하는 권역외상센터를 하겠다고 자원했지만, 책임감은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응급의료법에 따르면, 외상센터의 총 책임자는 병원장이다. 아주대병원이 외상센터를 운영하는 만큼 책임 역시 유희석 의료원장에게 있다. 그럼에도 유 원장은 외상센터에 무심했다.

현재 아주대병원에는 소아과와 격리병실 등을 제외하면 총 755개의 병상이 있다. 권역외상센터는 총 100개의 병상이 따로 있는데, 환자수가 이를 넘어서면 병원 본원의 일반병실이 필요하다.

이국종 교수를 비롯한 모든 외상센터 의료진은 본원으로 환자를 보낼 때 늘 부탁하고 사정해야 했다. 정경원 외상센터 과장은 외상센터 의료진 이름으로 본원에 환자를 입원시킬 수 없어 다른과 교수의 이름으로 환자를 입원시키기도 했다.

이를 두고 아주대병원은 병상이 부족했다고 해명했으나, 언론보도에 따르면 아주대병원에 하루 평균 59개 병상이 비어있었다.

결국 지난해 아주대병원 외상센터는 60회 이상의 바이패스(환자를 수용할 수 없어 다른 병원으로 우회)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권역외상센터로 지정되면 정부로부터 80억원의 건립비와 매년 60억원의 지원금을 받는다. 이 중 의료 인력의 경우 의사 1명당 1억4000만원이 지원되며, 간호사는 최대 4000만원의 인건비가 지원된다.

아주대병원은 외상센터 운영으로 적자가 심한 상태라고 했으나 이 교수는 지난해 병원 수익이 500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외상센터 설립 초기에는 운영에 적자가 있었지만 근래 몇 년 간은 적자를 벗어났다고 말했다. 실제로 복지부는 과거 북한 귀순병사 오청성의 이송‧수술 과정에서 중증외상진료현장의 어려움이 수면 위로 드러나자 2018년 3월 외상센터 운영비를 더 지원하는 개선책을 발표했다.

정경원 과장은 “외상센터 적자현황에 대해 정확한 수치를 아주대병원에 오래전부터 요구했으나 지금까지도 알려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헬기 문제 역시 병원은 소음 핑계를 대며 무책임한 모습을 보였다. 이국종 교수는 “헬기 소음만 해도 민원이 그리 심하지 않았는데, 병원이 그걸 핑계로 내세웠다“며 ”상급종합병원 심사에서 떨어지는 문제도 외상센터 때문이라며 비난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아주대병원은 아무런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판 잘못 짠 보건복지부

복지부의 수수방관 태도 역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이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복지부가 아주대병원의 이 같은 행태를 알고 현장점검에 나섰으나, 뒤에서는 아주대병원 기획조정실장과 수시로 연락하며 원만한 해결을 유도했다고 폭로했다. 감사를 통해 복지부가 바로잡아주길 기대했으나 결국 복지부 역시 똑같았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사실상 복지부는 권역외상센터 초기 설립부터 기획을 잘못했다는 평가를 들어왔다. 사단의 발단이 어쩌면 복지부로부터 시작한 것이다.

복지부는 2010~2011년 권역외상센터 기획 당시 전국 6개소에 1000억원의 예산으로 대형 권역외상센터를 마련키로 했으나, 형평성 등을 이유로 결국 17개(당시 16개)까지 확대했다. 여기에는 지역구 의원 등의 로비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퍼져있다.

예산을 나눠먹기 하면서 권역외상센터는 시작부터가 부실했고, 내실화 또한 갖추기 어려웠다. 일부 몇몇 외상센터를 운영하는 병원은 외상센터에서 외래환자를 진료하다 적발되는 등 도덕적 해이를 보였다. 중증응급환자를 최전방에서 치료하겠다고 자원한 병원들이 사실은 지원금만 받아먹는 돈 먹는 병원이 된 것이다.

이 같은 문제로 아주대병원 외상센터에는 늘 환자가 몰렸다. 아주대병원 외상센터는 수원, 화성,용인 등 경기남부권역을 담당하도록 되어있지만, 여기 저기 떠돌 환자를 거부하지 못해 환자가 넘쳐났다. 의료진이 어떻게든 환자를 살려냈지만 아주대병원은 병상을 주지 않아 갈등은 커졌다.

정경원 과장은 “설립 초기 계획처럼 역량을 갖춘 권역외상센터를 만들고, 이들이 환자를 다 받을 수 있도록 지지해주고 도와주면 됐을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복지부는 이번 문제가 이국종 교수와 유희석 원장의 갈등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지난 20일 세종 보건복지부 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감정의 골이 너무 깊어 상대를 돌봐주지 않아 발생한 일"이라고 치부했다.

◆십 수년째 묵은 시스템 부재 문제

다수 외상센터 관계자에 따르면, 응급의료 시스템 문제 역시 이 같은 갈등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 소방청 119구급대는 중증환자가 발생했을 때 ‘중증외상 기준에 해당하는 경우 중증외상진료가 가능한 가까운 지역응급외상센터 이상의 의료기관으로 이송’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하면, 병원들은 응급실 환자 포화, 병동‧전문의 부재 등을 이유로 환자를 전원 보내고 있다. 결국 환자는 여기 저기 병원을 떠돌거나 응급실에서 시간을 보내다 골든아워를 놓쳐 사망하고 있다.

국내 중증응급환자의 전원율은 평균 30~40%다. 질환에 따라 60%까지 올라간다. 아주대병원 외상센터 환자 역시 40%가 전원으로 온 환자들이다.

서울에서 아주대병원 외상센터로 전원 오는 환자도 꽤 많다. 최근 서울 빅5병원 중 한 병원의 응급실로 실려 온 환자(팔 절단)는 결국 6시간 만에 아주대병원 외상센터로 이송됐다.

아주대병원 외상센터 관계자는 “시스템 없이 외상센터만 덜컥 지어졌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서울 모 대학병원에서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로 이송된 환자를 의료진이 처치하고 있다. [사진=황재희 기자]

정경원 과장도 “예방가능사망률(외상으로 인해 사망한 환자 중 적절한 시간 내에 적절한 병원으로 이송돼 적절한 치료를 받았다면 생존할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사망자의 비율)을 낮추기 위해서는 중증환자를 잘 선별해 외상센터로 이송시켜 치료받도록 해야 한다”며 “미국 샌디에이고 지역에서는 환자 발생 시 어느 병원으로 데려갈지 등 모든 것이 정리돼있다. 그렇다보니 최근 몇 년 동안 예방가능사망률이 거의 제로(0%)에 가깝다”고 말했다.

권역외상센터 기획자 중 한명이었던 김윤 서울대 교수는 “현장에서 119구급대가 중증환자를 판단할 수 있는 도구가 있지만 제대로 활용되지 않고 있다”며 “제대로 개선되지 않으면 앞으로도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부는 지난 17일 ▲응급의료 체계 구축과 ▲중증도에 따른 합리적 응급의료서비스 이용체계 마련을 위한 3대 분야 11개 개선과제 등을 포함한 ‘응급의료체계 개선 방향’을 부랴부랴 발표했다.

김 교수는 “복지부가 발표한 개선안은 핵심적인 내용이 빠진, 이전에 나왔던 이야기들”이라며 “이것이 얼마나 소용이 있을까 싶다. 중증응급환자 이송지침 표준모델을 만들고, 소방이 이를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끔 복지부가 나서서 설득해야 하는데도 의지가 없어 보인다”고 일침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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