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 자초하는 이재용 재판부…정준영 부장판사는 왜?

2020-0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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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체제 개선 재판영향 無→준법위 평가 ’말바꾸기’ 논란

삼성측 개선 실효성 의문…재판 장기화로 이재용도 압박

서울 서초동 법원종합청사 내부. [사진=이범종 기자]

[데일리동방] 법원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을 기업체질 개선 계기로 삼으면서 의혹과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정준영 부장판사는 17일 이 부회장에 대한 뇌물죄 파기환송심 재판에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법위) 실효성을 판단할 전문 심리위원을 선정한다고 밝혔다.

정 부장판사는 심리위원 세 명 중 한 명으로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을 지목했다. 재판부가 준법위를 양형 사유로 보려는 움직임에 특검 측이 “재판부는 재벌 체제 혁신·개선은 재판과 무관하다고 했다”며 제동을 걸어 휴정한 지 5분만이었다. 재판 직후 강 전 재판관은 심리위원 수락 의사를 밝혔다.

◆신뢰훼손 우려에도 준법위 평가…‘회복적 사법’ 신념

현행법상 심리위원 구성은 가능하다. 형사소송법 279조의 2에 따르면 법원은 직권으로 검사나 피고인 또는 변호인 신청으로 전문심리위원을 소송 절차에 참여시킬 수 있다.

다만 앞서 법원이 재벌체제 혁신·개선 요구가 재판과 무관하다고 밝혔기에 맥락상 ‘말 바꾸기’라는 비판은 피할 수 없다. 향후 판결이 어떻게 나오든 신뢰도가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정 부장판사는 지난해 10월 25일 첫 파기환송심 공판에서 이 부회장에게 뇌물공여 방지와 이건희 회장 같은 기업혁신을 주문하며 “재판 진행이나 결과와는 무관함을 분명히 해둔다”고 못 박았다.

정 부장판사는 그 못을 네 달만에 스스로 뽑았다. 그는 “지금 말씀드리는 절차가 예정된 절차와 달라서 이런 말씀 하실 수 있다”며 특검을 달랬다.

이번 결정을 계기로 이 부회장 봐주기가 본격화 됐다는 질타가 이어졌다. 특검이 이 부회장 승계를 위한 뇌물공여 증거로 신청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수사 자료가 재판부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아 의혹은 더욱 짙어졌다.

재판부는 대법원에서 유·무죄 판단이 나온 만큼 승계작업 관련 현안과 구체적 대가관계를 특정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를 댔다. 특검에 미리 알려주지 않고 준법위 실효성 평가 계획을 밝힌 점과 대조된다.

그럼에도 정 부장판사가 심리위원회 활동을 강행한 이유는 그의 소신인 ‘회복적 사법’ 때문이라는 게 법조계 평가다. 회복적 사법(restorative justice)은 피해자와 가해자 간 대화를 통해 죄책감을 느낀 가해자가 변화하고 피해자는 정신적 상처를 치유받는다는 의미다. ‘사람은 변한다’는 믿음에서다. 처벌 강도를 높이는 기존 형사사법과 거리가 있다.

정 부장판사가 이런 신념을 보여주는 사례는 익히 알려져있다. 지난해 자식들과 함께 목숨을 끊으려다 살아난 20대 여성 항소심에서 직권으로 보석을 결정하고 치료구금 결정을 내렸다. 이명박 전 대통령 2심 때는 보석을 허가하며 “재판은 현재 피고인이 과거 피고인과 대화하는 과정”이라며 “본인이 기소된 범죄 사실을 하나하나 다시 읽고 과거를 찬찬히 회고하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인 김지형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가 9일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미국 수준 개선 요구···삼성 혼자선 어려워

이 부회장은 여태껏 자신을 가해자가 아닌 수동적 뇌물공여 피해자로 인식해왔다는 점에서 회복적 사법을 적용해선 안 된다는 반론도 나온다. 정 부장판사가 시도하는 삼성 체질 개선도 일회성 결과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설민수 서울남부지법 부장판사는 최근 법원 내부통신망 코트넷에 ‘정준영 부장판사님께’라는 글을 적고 준법위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미국에 연방 양형기준인 컴플라이언스(법규위반방지노력) 프로그램과 독립이사로 구성된 감사위원회가 있지만 현지 대기업 엔론도 내부고발 이전에는 대규모 회계부정이 걸러지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삼성 내부 정보에 대한 준법위 접근성과 사내 비밀유지 의무 등을 고려하면 실제 효과가 낮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준법위는 삼성그룹 핵심인 삼성전자를 비롯해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SDI·삼성전기·삼성SDS·삼성화재 등 7개 계열사와 협약을 맺고 대외후원금과 내부거래, 최고경영진 준법의무 위반 등을 감시할 예정이다. 준법위 위원장을 맡은 대법관 출신 김지형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는 ‘필요한 범위’에서 계열사 준법지원인 등에게 보고와 자료 제출, 조치를 요구할 수 있다고 밝혔다.

특검 주장처럼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 준법위와 함께 작동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정 부장판사가 요구한 미국식 준법감시제도는 검찰의 기소유예 제도를 포함한 관련 장치 없이 삼성 홀로 작동할 수 없다는 지적도 학계에서 제기된다.

정 부장판사가 요구한 미국식 준법감시는 강력한 컴플라이언스를 뜻한다. 미국에서 사내 가이드라인으로 출발한 컴플라이언스는 기업이 준수하면 선처하는 국가 정책과 맞물려 자율규제로 정착됐다.

미 연방 기업범죄 양형 가이드라인은 컴플라이언스 노력을 평가해 형량을 감경하도록 한다. 검찰 역시 기업이 위법 사실을 신속하고 자발적으로 알리고 조사에 협조 등을 하면 기소유예를 할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 상법은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요구하지만 미국처럼 법원과 검찰 등에 구체적인 관련 기준이 없다. 금융감독 당국과 공정거래위원회, 법무부, 법원에 이런 기준이 없다보니 기업은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입증할 방법이 막막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 왼쪽)이 17일 자신의 뇌물죄 파기환송심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고등법원에 들어가고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정준영 판사 기대치만큼 올라갈 이재용 부담감

법원의 이번 결정으로 재판 장기화가 예고되면서 이 부회장이 가질 부담은 점차 커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장기화가 예상되는 이유는 준법위 활동 운영 방식과 성과를 평가하는 데 걸리는 시간 때문이다. 정 부장판사가 요구한 심리위원회 구성은 오랜기간 면밀히 준법위를 살피겠다는 의중을 담고 있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서는 정 부장판사가 이번 재판을 삼성 체질 개선 계기로 활용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정 부장판사가 이 부회장에게 가이드라인을 건넨 셈인데 내 의뢰인도 그런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불만도 나온다.

한편으로는 오히려 이 부회장이 느낄 부담감이 상당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정 부장판사가 마련한 무대에서 기대한 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양형에 불리하다는 압박이 가해질 거란 의미다. 법조계 관계자는 “지금껏 이런 식의 재판은 본 적이 없다”며 “정 부장판사가 큰 그림을 그려놓고 재판에 임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실형과 집행유예 확률이 오히려 비등해졌다는 관전평이 나온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심리 진행을 거칠게 하는 재판장이 피고인에게 최대한 선처해 주는 결론을 내린 경우가 있는가 하면 부드럽게 진행해도 판결은 가차 없는 판사가 있다”며 “재판장이 어떤 생각으로 심리를 진행하는지 알 수 없지만 이번 재판 역시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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