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에 갇힌 호주 경제, 부양책 나오나

2020-01-15 10:17
  • 글자크기 설정

역대급 산불 여파에 호주 경제 1분기 역성장 가능성

호주 안전한 관광지 평판 직격탄...관광산업 휘청

폭염·가뭄에 산불 멈출 기미 없어...자연·세계에 민폐

호주 산불 피해 지역이 대한민국 면적의 70%를 넘었다. 문제는 산불이 넉 달째 이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끝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산불이 즉각적으로 투자나 생산을 끌어내리면서 단기적으로 호주 성장률을 0.2~0.4%포인트 갉아먹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화상 입은 코알라, 잿빛 연기로 덮인 주요 도시, 주요 관광지에 내려진 대피령 등으로 인한 이미지 타격이 호주 경제에 미칠 장기적 파장은 그보다 더 클 것이라는 지적도 이어진다. 
 

호주 산불 현장에서 구조된 코알라의 모습 [사진=AP·연합뉴스]


◆산불 여파에 호주 1분기 역성장 가능성

이번 산불이 역대급 피해를 내면서 호주 경제가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1분기(1~3월)에 호주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골드만삭스는 이번 산불이 민간 투자와 농장 생산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주고 앞으로 몇 달에 걸쳐 관광산업에도 파장을 던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앤드류 보악 골드만삭스 호주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과거에 보지 못한 규모로 산불이 확산하면서 농장 생산에서 관광산업까지 경제에 미치는 역풍이 커지고 있다. 또 산불 연기가 주요 도시를 덮으면서 소비 지출도 짓누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호주 자산도 하방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호주 달러는 달러를 상대로 올해 들어서만 1.8%가량 떨어졌다. 중동 갈등에 따른 불안감에 달러가 오름세를 보인 탓도 있지만, 호주 달러는 다른 통화에 비해서도 낙폭이 컸다. 호주 산불 여파가 환율에 반영됐다는 의미라고 블룸버그는 짚었다.

AMP캐피털인베스터스의 셰인 올리버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안 그래도 "호주 경제가 취약한 상황에 산불이 겹쳤다"면서 "올해 1분기 호주 성장률은 제로(0)나 마이너스로 떨어질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다만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는 기술적 침체는 피할 것으로 봤다. 호주는 28년째 기술적 침체를 피해왔다.

호주 정부는 산불 피해 복구에 지원함으로써 민간 경제활동 둔화 여파를 일부 상쇄한다는 계획이다. 호주 중앙정부는 20억 호주달러(약 1조6000억원) 규모로 산불피해 복구기금을 조성했다. 이와 별도로 산불의 가장 큰 피해를 받은 뉴사우스웨일스주는 기반시설 복구용으로 10억 호주달러 규모의 지원을 약속했다.

호주 중앙은행이 산불로 인한 경기 둔화 압력을 만회하기 위해 2월 4일 정례회의에서 추가 부양책을 내놓을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호주 중앙은행은 경기 둔화를 막기 위해 지난해 6, 7, 10월에 세 차례 금리인하를 단행,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인 0.75%까지 낮춘 상태다.

카트리나 엘 무디스애널리틱스 이코노미스트는 "호주 중앙은행이 내달 회의에서 금리를 더 내릴 것으로 예상됐는데, 산불은 인하 가능성에 무게를 더한다"고 말했다. 시장에선 2월 금리인하와 금리동결 전망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그래픽=호주 분기별 성장률]


◆안전한 관광지 평판 직격탄...관광산업 휘청

전문가들은 관광산업이 특히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호주 관광업은 국내총생산(GDP)에서 3.1%를 차지하고, 고용에 5.2% 기여하는 호주 4대 수출산업이다.

뉴사우스웨일스와 빅토리아 등 남부 지역 국립공원 수백 곳은 산불로 인해 폐쇄됐고, 동남부 해안 관광지에는 대피령이 떨어지기도 했다. 또 TV나 소셜미디어를 통해 번지는 호주 산불 관련 사진들은 호주가 안전한 관광지라는 평판을 깎아내리고 있다.

호주 최대 시중은행인 커먼웰스뱅크(CBA)는 이미 구매관리자지수(PMI)에 "일부 산불 영향이 반영되고 있으며, 호주 숙박검색 같은 선행 지표들이 하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식적으로 관광업 피해 수치가 발표되지 않았지만, 민간 업체들은 실질적 타격을 호소하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호주숙박연합(AAA)은 지난해 12월 호주 최대 도시 시드니의 호텔 이용객이 10%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딘 롱 AAA 회장은 "산불과 연기가 시드니 브랜드와 평판에 먹칠을 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유네스코 자연유산인 유명 관광지 블루마운틴에서도 관광객 감소가 두드러졌다. 블루마운틴 관광시설 시닉월드는 지난해 12월 열차와 케이블카 이용객이 전년 대비 5만명 줄었다고 집계했다. 한 해 전의 반토막 수준이다. 시닉월드 주변 호텔들도 예약보다 취소 문의가 더 많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주 산불과 나쁜 대기질을 거론하면서 호주를 여행하는 자국민에 극도의 주의를 기울이고, 호주 여행 계획이 있다면 뒤로 미룰 것을 고려하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산불 연기가 호주 주요 도시를 뒤덮었다. 사진은 산불 전과 후를 비교한 멜버른 시내 전경. [사진=로이터·연합뉴스]


◆꺼지지 않는 호주 산불...자연·세계에 민폐

현재 호주 전역 수백 곳에서 산불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산불로 인한 사망자도 25명까지 늘었다. 남반구 호주엔 앞으로 몇 달 동안 뜨겁고 건조한 날씨가 이어질 것으로 예측돼 산불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자연 생태계는 산불에 신음하고 있다. 호주 시드니대학은 이번 산불로 인해 야생동물 5억 마리가 희생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호주 명물 코알라는 일부 지역에서 '멸종 위기' 동물로 지정될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움직임이 느린 코알라는 제때 불길을 피하지 못해 피해가 컸다. 이번 산불로 인해 숨진 코알라는 약 8000마리, 전체의 약 30%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산불 연기는 바다 건너 뉴질랜드와 남미까지 건너가며 '민폐'를 끼치고 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호주 산불 연기가 지구 반바퀴를 돌았고, 나머지 반바퀴를 돌아 호주로 되돌아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시기에 호주에서 산불이 발생하는 건 흔한 일이지만 이번 산불이 역대급 피해를 내는 데에는 지구 온난화가 한몫 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호주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봄 강수량이 역대 가장 적었고, 12월에는 기온이 40℃를 넘기면서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결국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이 산불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스콧 모리슨 총리에게 호주 석탄산업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지만, 모리슨 정부는 일자리와 경제를 파괴한다면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산불 대응 실망감에 호주 민심이 돌아서면서 최근 여론조사에서 모리슨 총리의 지지율은 한달 전 45%에서 37%까지 곤두박질쳤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