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종 칼럼] 북한의 언론 플레이엔 무관심이 최상책

2019-12-29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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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종 숙명여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



북한이 몇 달 동안 호기롭게 공언했던 크리스마스 선물은 결국 오지 않았다. 답보 상태인 북·미 협상과 관련해서 미국이 연말까지 ‘새로운 길’을 밝히지 않으면 한바탕 도발을 하겠다는 의도였는데, 어찌 된 일인지 연말이 다 되도록 아무런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 물론 연초를 기해 미사일이나 아니면 새로운 핵 실험을 감행해서 세상을 다시 놀라게 할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어쨌든 자신들이 최초로 정한 시한은 넘긴 셈이다. 결과적으로 북한의 말을 믿고 뭔가 큰 사건을 전망했던 언론이나 전문가들은 또 한 번 북한의 술수에 놀아난 꼴이 되었다.

이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북한은 수십년 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언론 플레이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알리고 입지를 강화했다. 세계에서 자신들에 대한 관심이 멀어질 때는 대형 언론 이벤트를 통해 관심을 끌어 왔다. 가끔 대규모로 국제 언론인들을 불러들여 선전의 도구로 이용했다. 평양 아리랑 축전을 관람시키고 영변 핵시설 냉각탑 폭파를 전 세계에 방송하도록 했다. 때로는 애매한 메시지를 통해 언론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 결과 북한은 늘 국제 뉴스의 중심에 있었고, 북한 관련 뉴스는 항상 헤드라인을 탔다.

그 배경에는 국제 언론의 맹목적인 북한 따르기도 한몫했다. 지난 2년간은 특히 그러했다. 평창 올림픽 당시 북한 대표단 파견, 판문점 남북 회담, 싱가포르 북·미 정상 회담에 이어 하노이 정상 회담까지 굵직굵직한 뉴스가 계속되는 가운데 국제, 특히 서방 언론은 이를 세기의 뉴스로 과대포장해서 다뤘다. 금방이라도 북핵 문제가 해결되고 남북, 북·미 관계가 정상화되어 한반도에 평화가 올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 이는 섣부른 환상이었음이 드러났다.

국제 언론을 통해 자신의 입지를 국내외에 과시하려는 의도는 북한의 김정은뿐 아니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있었다. 전임자들이 수십년 동안 해결하지 못한 북핵 문제를 자신이 나서서 김정은과 햄버거 한번 먹으며 협상하면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는 자만심으로 트럼프는 여론 몰이에 나섰고, 언론은 이를 충직하게 좇았다. 미궁을 거듭하는 시리아, 이란 문제 등 외교 정책에 있어 별로 내세울 게 없는 트럼프에게 북한은 자신의 치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좋은 대상이었다. 2017년 임기 초 ‘분노와 화염’ 발언으로 일단 판을 흔든 다음 트럼프는 두 번의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언론의 집중적 조명을 받는 데 성공한다. 벌써 내년 선거에 이를 이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국제 언론을 능수능란하게 요리하는 데 있어서는 북한이 한 수 위다. 일단 북한은 자국의 문을 꼭꼭 걸어잠가서 언론의 호기심을 최고조로 자극한다. 현재 평양에는 중국과 러시아 등 공산권의 특파원이 근무하지만 서방 특파원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미국의 AP 통신이 지국을 운영하고 있지만 북한 직원이 상주할 뿐 외국인 기자는 사건이 있을 때만 허락을 받아서 입국 취재한다. 취재할 때에도 철저한 통제를 가해 제한된 내용과 인사에만 접근할 수 있다. 북한에 우호적인 기사만 송고되도록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가끔 북한이 문을 활짝 열고 외국인 기자들의 방북을 허용하는 경우가 있다. 앞서 언급한 냉각탑 폭파 등 자신들에게 유리한 기사를 유도하기 위해 대규모로 서방 기자들을 초청한다. 과거 미국 프로농구 선수 데니스 로드맨을 초청한 경우처럼 이벤트의 흥행을 위해 언론 플레이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이 모든 경우 역시 철저한 통제가 가해지고 언론은 보여주는 것만 보게 되고 허용된 사람만 인터뷰하게 된다. 필자도 과거 외신기자로 일하던 시절 북한 취재를 다녀온 경험이 있었지만 극히 제한된 상황에서 일방적인 조건에서 취재하는 상황을 벗어날 수 없었다.

언론인 개개인의 공명심도 한몫한다. 한반도를 취재하는 국제 언론인들은 북한 관련 특종에 대한 열망이 누구보다 강하다. 사실 그럴 가능성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군사 충돌로 대규모 돌발 사태가 나거나 대화를 통해 진정한 평화가 오거나 둘 중 하나의 가능성이다. 어떤 경우라도 이는 세기의 특종이다. 기자라면 욕심나는 뉴스다. 그래서 가능하면 자신의 임기 중에 어떤 큰 사건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고, 그러다 보면 보도에 있어 자칫 과장된 논조를 보이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다가오는 2020년에는 북한의 또 다른 언론 플레이가 예상된다. 무엇보다 재선에 목말라 있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언론 플레이다. 북한으로서 이는 전혀 새롭지 않다. 과거 한국의 선거가 있을 때 북한이 자주 취했던 행태이다. 실제 영향이 있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러시아가 흑색선전을 통해 2016년 미국 대선에 개입하려 했듯이 북한 역시 그러한 유혹을 느낄 것이다. 먼저 트럼프 재선이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를 판단할 것이고 여기에 따라 행동을 결정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사회나 국제 언론이 북한에 대해 취할 태도는 적당한 무관심이다. 북한의 일거수 일투족을 맹목적으로 보도하는 것은 벌써 북한의 언론 플레이에 당하는 꼴이 된다. 자신에 대한 관심을 유발하기 위해 끊임없이 돌출 행동을 하는 철없는 아이에게 필요 이상의 관심을 보일 필요는 없다. 2020년에는 국내외 각종 언론에서 북한 관련 뉴스가 줄어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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