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우리가 받아든 금년도 경제 성적표를 보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주요 경쟁국 대비 수출의 양과 질이 극명하게 떨어진다. 미·중 무역 전쟁이라는 악재가 있었다고 하지만 고래 싸움에 우리가 가장 악영향을 많이 받은 새우가 되었다는 점이 특히 아쉽다. 미국 등 주력 시장에서 누릴 수 있었던 반사이익도 거의 챙기지 못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중국 시장에 대한 수출은 급감하여 수입시장 1위 자리마저 일본과 대만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다. 중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신(新)남방 시장 개척도 지지부진하다. 저가 중국 상품의 파상 공세로 동남아나 인도 시장에서마저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하고 있는 모양새다.
내년에는 수출이 다소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금년에 워낙 감소 폭이 크다보니 내년에는 기저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모두가 예측한다. 그러나 수출이 본격적으로 회복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우선은 주력 시장에 대한 수출 활동이 정상적으로 회복되어야 한다. 중국 시장은 사드 보복 이전의 상태로 복원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부진한 중국 수출을 단번에 만회하긴 어렵지만 경쟁국 상품에 비해 불이익을 받는 것은 최소한 방치하지 말아야 한다. 일본 시장도 원래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 베트남이 일본보다 더 큰 수출시장이 되고 있다고 희희낙락할 일이 아니다. 미국이나 유럽 시장은 강자들의 싸움에서 생겨나는 배후 틈새시장을 효과적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중국과 일본은 제조업 가치사슬 중심 경쟁 치열, 승자 DNA 확보하지 않으면 패퇴 불가피
수출 다음으로 한국 경제가 살아나기 위한 동력 요소로는 제대로 된 혁신의 작동이다. 무늬만 혁신을 한다고 온갖 구호만 요란하지 현실은 이와 정확하게 반대로 굴러간다. 혁신의 아이콘인 젊은이들의 사고와 행동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도무지 혁신에 대한 개념이나 가치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없다. 정부가 이들을 혁신의 현장으로 유도하는 것은 차치하고 돈이나 보태주면서 경제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공무원 시험 준비에 매진하도록 강요한다. 기업이나 인재 혹은 아이디어는 규제에 묶여 출구를 찾지 못하고 해외로 도는 등 남 좋은 일만 시킨다. 전 세계가 스타트업에 열중하고 유니콘을 만들기 위해 분주한데 이런 현장이 눈에 띄지 않는다. 그냥 하루하루 연명하거나 양지만을 찾는 기회주의자만 양산한다.
이런 사회 분위기로 날로 격화되고 있는 글로벌 경제 전쟁에서 이기려고 마음먹는 그 자체가 모순이고 허영이다. 중국은 일본을 추월하는 제조업 중심 국가가 되려고 국가와 기업이 팔을 걷어 부치고 있다. 일본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강점 혹은 장점을 다시 추스르면서 제2의 부흥을 노린다. 미국은 중국, 일본, 유럽 등을 괄목상대하면서 1등자리 고수를 위해 고삐를 당긴다. 기존 지역, 국가, 기업집단 등을 중심으로 엮여져 있는 글로벌 가치사슬이 급격하게 바뀌면서 시장의 붕괴가 가속화되고 있다. 경쟁자의 유사한 전략에서 탈피하려는 ‘디커플링(Decoupling, 탈동조화)' 현상이 점입가경이다. 우리는 어느 지점에 서 있고, 어디로 가고 있나? 경쟁에서 이기는 자는 지는 자와는 다른 승자의 DNA가 분명히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