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완의 월드비전] 미국 대공황과 한국의 소주성

2019-12-01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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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 논설위원]



미국 대공황의 원인은?  

1차 세계대전(1914~1918)을 계기로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던 미국 경제가 1929년 10월 24일 주식시장 대폭락을 시작으로 도미노처럼 무너지기 시작한다. 미국의 대공황은 유럽을 강타하고 곧 세계적인 대공황 사태로 번진다. 승승장구 하던 미국의 자유시장경제가 갑자기 붕괴된 근본적인 원인을 두고 아직도 해석은 분분하다. 케인스학파 경제학자들은 대체적으로 과잉 공급과 유효 수요 위축을 꼽는다. 1차 대전 당시 전쟁 물자와 무기를 유럽에 공급하면서 미국의 제조 기업은 그야말로 폭풍 성장하게 된다. 그러다가 급격한 산업화로 늘어난 공급을 수요가 따라가지 못하게 되자, 기업들이 극심한 가격 경쟁으로 도산하고 실업자가 쏟아지며 美 경제가 깊은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됐다는 것이 그들의 설명이다.

당시 혜성처럼 나타난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1883~1946)는 미 경제 초유의 비상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선 유효 수요가 우선적으로 창출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당시만 해도 각 나라들이 국가의 개입 없는 자유시장경제를 신봉하던 시절이라 케인스의 주장은 가히 혁명에 가까운 것이었다. 1932년 대통령 선거는 3년 전에 비해 국민총생산(GDP)이 거의 반토막나고 실업자가 1300만 명에 이르는 비참한 상황에서 치러진다. 민주당 후보로 나선 프랭클린 루스벨트 뉴욕 주지사는 경제 재건과 빈민 구제를 위한 '뉴딜 정책'을 약속하며 공화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된다. 그는 케인스의 경제학 이론을 받아들여 다목댐 건설 등 대규모 공공사업을 벌여 일자리를 만들고 최저 임금을 도입하여 노동자의 안정된 소득을 확보하는 등 정부 주도의 대규모 부양책을 펼친다. 긴급 은행법을 제정하여 금융공황으로부터 은행을 구출하고 금본위제를 폐지하여 통화에 대한 정부의 규제력을 강화한다. 마비 상태의 경제를 복원하기 위해 미 역사상 유례없는 정책이 잇달아 실험되면서, 미 자본주의는 전통적인 자유방임주의에서 수정 자본주의로 이동하게 된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던 미국 경제를 붙잡아 생산을 다시 대공황 이전 수준으로 거의 회복시키는 데 성공한다. 그야말로 멘붕상태의 국민들에게 약속했던 대로 희망을 안겨주면서 1936년 대선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재선에 성공한다. 그러나 그의 집권 2기가 시작된 1937년 미국은 다시 불황이 찾아왔다. 이대로 국가가 망할 수도 있다는 공포와 절망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케인스주의자들은 '뉴딜'이라는 대규모 경기 진작책을 펼쳤지만 루스벨트가 적자 예산을 우려해 통화·재정 정책을 긴축으로 가져가면서 그 효과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오랜 기간 미국을 괴롭혔던 대공황은 세계 경제뿐 아니라 정치에도 영향을 주어, 독일에서는 나치가, 일본에서는 군국주의가 정권을 장악하는 계기가 된다. 결국 대공황의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한 것은 2차 세계 대전이었다. 미국이 1941년 참전과 함께 뉴딜 정책을 넘어 전시체제로 넘어가고 전쟁 특수를 누리게 된 결과이다.

대공황이라는 말은 영어로 'Great Depression'이다. 해석을 해보자면 엄청난 불경기라는 의미이다. 유효 수요 부족으로 기업이 물건을 만들어 아무리 쌓게 내놓아도 사줄 사람이 부족한 상태이다. 극심한 소비 침체에 공장은 문을 닫고 실업자는 양산된다. 은행은 돈을 맡긴 불안한 고객들의 대규모 예금 인출사태(뱅크런)로 파산한다. 은행에서 돈을 빌린 기업들도 줄이어 도산한다. 이런 끔찍한 악순환을 끊으려면 정부가 적자 예산을 감수하면서 돈을 지속적으로 풀어야 하는데, 루스벨트 행정부는 '건전재정'에 집착을 버리지 못했다. 대공황으로 기업과 가계가 도산하면서도 세금이 제대로 걷히지 않아 재정 적자가 확대되었는데 '재정 균형'을 달성하기 위해 금리 인상과 재정 긴축으로 통화량은 더 감소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다시 경기침체를 불러오고 말았다. 이런 현상을 경제학자들은 '불황 속의 불황'(depression within a depression)으로 부른다.


루스벨트의 긴축재정과 부작용 

재선 직후 루스벨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준방준비제도(Fed)는 은행지준율을 무려 50%나 올린다. 또 인플레이션 상승을 막기 위해 중앙은행이 보유한 금의 방출을 정지 시켰다. 연방 정부의 적자를 2년 안에 모두 없애기 위한 목표아래 정부 지출은 축소되었다. 그 결과, 실질 GDP는 10%, 생산은 32% 감소하고 실업자가 400만명이나 새로 발생하며 실업률이 20%에 달했다.

당시 루스벨트가 성급하게 실시한 긴축 정책의 실패는 이후 미국의 경제정책 입안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크게 미쳤다. 미국은 2008년 리먼 브러더스의 몰락과 함께 닥쳐온 美 금융·경제 위기 여파로 2009년에는 국가의 적자(재정적자)가 무려 GDP의 10%에 달했다. 양적 완화에 나선 美 연준이 적자를 GDP 2% 내로 줄이기 위한 목표를 설정해 긴축으로 돌아선 것은, 2016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경제가 마침내 회복세로 돌아선 것을 확인한 이후였다.

2009년 시작된 미국의 경제 회복세는 완만하지만 그래도 올해 들어 11년째 이어지고 있다. 즉 1937년 루스벨트의 정책 실패가 되풀이 됨을 피한 셈이다. 하지만 연준은 올해 들어 다시 통화정책을 긴축에서 완화로 전환했다. 그리하여 미국의 적자는 다시 늘어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재정적자를 없앨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하지만 그의 취임 이후 적자는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2017년도 단행된 대규모 감세 조치와 지출 확대 영향으로 적자는 GDP의 4% 수준을 훌쩍 넘어섰다. 지난 13일 美 재무부 발표에 따르면 미 정부의 10월 적자는 전년 동기 대비 34% 가까이 늘어난 1340억 달러(약 157조원)에 이르렀다. 이리하여 2019년 회계연도(2018년 10월~2019년 9월) 적자는 9844억 달러로 2012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재무부는 2020년 회계연도 적자가 1조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연준 의장은 지난 달 미 하원 예산결산위원회에서 미국의 재정적자 증가 속도가 미 경제 성장 속도에 비해 지나치게 빠르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이미 저금리 기조인 미국과 세계 경제에 불황이 닥칠 경우 재정 확대를 통한 문제 해결 능력이 크게 악화된다는 것이다.


'경제성과' 의식한 트럼프의 돈풀기와 금리인하 압력 


경기 진작을 통해 경제의 상승 기조를 유지한다는 것은 트럼프의 경제 성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리스크도 만만치 않다. 첫째, 경기 진작은 경제의 구조 개혁을 늦춰 장기적인 성장 가능성을 해칠 수 있다. 오늘날의 미국 경제가 호황이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는데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은 사상 최고치를 보이고 있다. 그런 가운데 정부와 기업, 가계 부채 수준은 걱정할 수준까지 증가하고 있는데 이러한 불균형과 왜곡이 지속된다면 경제 위기가 언제라도 달려올 가능성이 있다.

둘째, 연준이 앞으로 다가올 위협을 제대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한가이다. 기준 금리는 올해 들어 세차례나 인하되어 1.5~1.75%가 되었고 대차대조표는 그동안 일련의 양적 완화 조치로 아직도 확대되고 있다. 셋째, 금리 정책이 벽에 부닥치면 경제 정책 입안자들은 재정 정책의 완화에 더욱 몰두할 가능성이 있다. 최근 2029년까지 미국의 국가 적자가 GDP의 95%에 이를 것이라고 미국 의회예산국(CBO)은 전망하고 있다.  이는 2차 대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미 국민들과 투자가들은 정부의 예산 능력에 대해 신뢰를 버릴 수 있다.

미·중 무역전쟁 여파로 내년 미국 경제에 대한 전망이 불확실한 가운데 대선을 앞둔 트럼프는 탄핵 공개 청문회 등 국내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려있다. 트럼프가 무리하게 '경제성과'로 위기를 돌파하려고 재정 적자 급증에도 불구하고 금리 인하와 확장적 통화정책을 이어나갈 공산이 커지고 있다. '자산 버블'과 부채 증가 등 미국 경제에 나타나는 여러가지 위험 신호에도 불구하고, 경기 확장을 위한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하다가 향후 닥쳐올 위기가 너무 심각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아야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지난 달 18일 트럼프 대통령은 파월 의장을 백악관으로 불러 회동을 했다. 최근 연준의 저금리 기조 등에 힘입어 미국 증시가 최고치 경신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파월 의장에게 추가 금리 인하를 통해 시장에 돈을 더 풀고 경기 둔화 위험을 차단해 줄 것을 부탁하기 위해서다. 파월 의장은 회동 후, 연준의 통화정책은 앞으로도 비정치적(non political) 방식으로 결정될 것이라며 트럼프의 요구를 사실상 거절했다. 정치적인 입장을 떠나, 트럼프와 세계의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는 연준 의장이 향후 미국의 통화.재정 정책에 대해 분명한 시각차를 드러내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현대통화이론


시대마다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앞다투어 복잡한 사회경제 문제에 대한 해법을 내놓지만 그들의 주장이나 이론이 불로장생(不老長生)하긴 어렵다. 1950, 60년대 케인스주의 경제학자들은 정부가 나서 재정ㆍ금융정책으로 미세조정하면 경제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주장은 소위 통화주의자들과 많은 논쟁을 겪었다. 통화론자의 거두 노벨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케인스 이론에 맞서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보다는 시장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1930년대 미국 대공황의 가장 큰 원인에 대해 중앙은행의 지나친 통화공급량 축소로 인한 신용경색이라고 주장했다. 프리드먼은 불황 극복책으로 재정정책은 효과가 없다고 주장했다. 즉, 적자재정지출 확대가 실업문제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고 물가만 오르게 된다는 것이다. 프리드먼의 이론은 1960년대 후반부터 물가와 실업이 동시에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 발생하자 새로운 해결책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세계가 그야말로 저성장, 저물가, 저금리라는 3저(低)시대에 살고 있다. 프리드먼의 이론이 시들해진 반면, 현재 미국 월가에서 재정적자 규모에 얽매이지 말고 달러를 더 찍어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는 소위 현대통화이론(MMT)이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는 재정적자가 특정 수준 이상으로 불어나면 경제성장이 저해될 수 있다는 전통적 경제이론과 배치되는 주장으로, 현재 미국에서 버니 샌더스(민주·버몬트) 상원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민주·뉴욕) 하원의원 등 좌파 성향의 정치인들이 지지하고 있다,

'소주성'의 앞날은? 

'소득주도성장'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은 사면초가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으로 기업과 자영업자들은 허리가 휘고 있다. 생산과 투자 소비 등 소위 '트리플 추락'으로 기업의 이익은 격감하고 세금도 걷히지 않고 있다. 올해 2% 성장률 달성도 불투명한 가운데, 정부는 내년 선거를 의식해 단기 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재정투입에 '올인'하고 있는 것이다. 30~40대 제조업 일자리는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가운데, 인위적으로 만든 노인의 단기 일자리만 늘어나고 있다. 정부가 편성한 초확장적 내년 예산안은 '퍼주기식' 재정 일자리와 미래세대의 부담으로 고스란히 전가 될까봐 걱정이 앞선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저성장·저물가 환경'을 처음으로 공식 언급하며 한국 경제가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아직도 '소주성'(소득주도성장)을 고집하고 있다. 잘못된 처방이라면 지금이라도 버리는 게 우리 경제의 끝없는 추락을 막기 위한 결단이라고 볼 수 있다.  
 
 

홍남기, 2020년 경제정책방향 수립 간담회서 발언 (서울=연합뉴스) 이지은 기자 =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8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서울바이오허브에서 열린 2020년 경제정책방향 수립을 위한 현장 소통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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